5월 22일 발매된 엔하이픈(ENHYPEN)의 네 번째 미니앨범 ‘DARK BLOOD’는 ‘Bite Me’가 타이틀곡이다. 조금 특이한 게 있다면 곡이 크게 두 덩어리로 나뉜다는 점이다. 현대 전형적인 팝송은 1절과 2절, 그리고 브리지를 거쳐 후렴을 다시 반복하는 3절 등 세 덩어리로 구성된다. 그러나 ‘Bite Me’는 인트로에서 반 토막의 후렴이 미리 등장할 뿐, 1절과 2절 두 번만 후렴을 들려준다. 그리고 K팝 기준에서는 조금 긴 8마디의 아웃트로가 덧붙어 있다.

‘나를 깨물라(Bite Me)’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뱀파이어 콘셉트를 취하고 있다. K팝 콘셉트나 세계관을 이야기할 때 다소간 농담을 섞어 대표적 예시로 등장하곤 하는 그것이다. 다만 K팝 콘셉트 속 인물형이 대개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특유의 서사구조, 즉 예외적이고도 격정적인 심경을 강렬하게 호소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에 비해 ‘Bite Me’는 이 콘셉트를 음악적으로 좀 더 녹여내려 한다. 화끈한 기승전결보다 한 장면을 툭 떼어낸 스냅숏 같은, 그리고 그 안에서 기복은 있으나 연속성과 일관성이 강조되는 모습이다. 일례로 후렴의 멜로디는 사실 언제까지고 계속 순환하는 형태다.

웹툰과 세계관 공유

수백 년을 산다는 뱀파이어가 필멸자인 인간과 동일한 시간축에서 감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게 이 곡의 플레잉타임인 2분 38초는 인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길이다. 또한 뱀파이어 이미지는 (날카롭게 폭주하는 액션도 충분히 허용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싸늘하게 육감적이고 은밀하다. 폭발적인 고음이나 호소력 짙은 서정의 브리지는 이 콘셉트에 어울리지 않는다. 퍼포먼스는 아웃트로가 일종의 댄스브레이크처럼 설정되기는 했지만, 은근하고 차분하게 워킹하며 대형이 꿈틀거리는 장면으로 구성됐다. 여성 댄서들과 조합으로 일으켜지고 기대며 비틀거리는 안무 역시 묵직한 액체의 출렁임 같은 퇴폐미를 근사하게 선보인다.

곡의 또 한 가지 특징은 16비트로 흐르는 퍼쿠션이다. 음정과 질감, 셈여림이 섬세하게 변하면서 기묘하고도 강박적인 느낌을 내는 이 사운드는 거의 플레잉타임 내내 들려온다. 분당 400번 정도 울리니 심장박동을 표현한 것이라기엔 빨라도 너무 빠르기는 하지만, 긴박하게 흐르는 혈류를 연상케 한다. 4마디씩 2번 등장하는 삽입구만이 이 사운드가 빠져 있다. 여기서는 매우 규칙적인 8비트 베이스가 템포를 정확히 절반으로 떨어뜨리고, 이후 다시 16비트로 복귀한다. 이로써 곡 전체가 균질한 박동 위에서 흐르며 섬세한 긴장감을 낳는다.

‘DARK BLOOD’는 엔하이픈과 연동된 웹툰 ‘DARK MOON: 달의 제단’을 소재로 삼고 있기도 하다. K팝 아티스트의 IP(지식저작권)를 웹툰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지만 대표적인 성공작을 꼽기는 아직 이른 게 사실이다. 웹툰이 종종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설명하거나 스핀오프로 작용하는 역할에 그쳤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이 미니앨범과 웹툰을 나란히 놓고 보면 반드시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반영하거나 구현하고 있다기보다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별개의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K팝-웹툰의 조합에 설득력과 매력을 가져올 방법론일까. 고정관념을 벗어나 콘셉트를 구현한 ‘Bite Me’가 조금은 희망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