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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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끝나 여행 수요 급증하는데 대한항공 안전성 B등급 추락

아시아나 ‘문 열림 사고’에 국민 불안 가중… 1997년 ‘괌 추락 사고’ 기억 재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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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입력2023-06-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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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3일(현지 시간) 필리핀 막탄세부국제공항에 착륙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오버런(overrun)하면서 동체가 심하게 파손되고 승객 및 승무원 173명이 비상 탈출했다. [트위터 캡처]

    지난해 10월 23일(현지 시간) 필리핀 막탄세부국제공항에 착륙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오버런(overrun)하면서 동체가 심하게 파손되고 승객 및 승무원 173명이 비상 탈출했다. [트위터 캡처]

    ‘B, A, A, A, B.’

    2018~2022년 5년간 대한항공이 국토교통부(국토부) ‘항공교통서비스 평가’ 안전성 부문에서 받은 등급이다(표 참조). 국토부가 이 평가를 매년 실시하기 시작한 2018년 대한항공은 안전성 B등급을 받았지만 이후로는 3년 연속 A등급을 유지했다. 그러다 5월 24일 발표된 2022년 평가 결과에서 다시 B등급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번 평가에서 B등급 이하를 받은 항공사는 국내 항공사를 통틀어 대한항공, 플라이강원, 에어로케이 3곳뿐이다. 대한항공을 제외한 나머지 2개 항공사는 저비용항공사(LCC)다.

    연이은 항공기 사고로 감점

    대한항공의 하향된 안전성 등급은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의 ‘문 열림 사고’ 직후 발표돼 소비자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하고 있다. 국적기이자 국내 1위 항공사인 대한항공의 안전성마저 담보할 수 없게 되면서 소비자 사이에서는 “믿고 이용할 항공사가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와 합병에 골몰하는 사이 안전 문제를 소홀히 한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대한항공의 안전성에 크고 작은 구멍이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내 항공사들의 안전성은 2018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개선됐다. 그에 반해 대한항공은 오히려 안전성 등급이 하락해 걱정을 키우고 있다. 5년 전에는 대한항공을 포함한 항공사 대부분이 B등급 이하 평가를 받았다. 에어부산과 티웨이항공(A등급)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B~C등급이었다. 당시 국토부의 항공교통서비스 평가가 처음 시행된 만큼 거의 모든 항공사의 안전성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평가 결과에서는 3곳 항공사를 뺀 모든 항공사가 A등급을 받았다. 2018년 C등급이던 아시아나와 에어서울, B등급이던 제주항공과 진에어가 A등급으로 상향됐다.

    대한항공의 안전성 등급이 떨어진 건 지난해 연이어 발생한 안전사고 때문이다. 안전성 등급은 △항공기 사고 및 준사고 발생률(30점) △안전규정 위반 관련 과징금 등 행정처분(30점) △자체 안전관리(40점) 등 3개 부문 점수를 합산해 도출한다. 이 중 대한항공은 항공기 사고 및 준사고 발생률 부문에서 큰 폭으로 감점됐다. 지난해 9~10월 영국 런던 히드로공항과 필리핀 막탄세부공항에서 일어난 두 사고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자는 이륙 준비 중이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착륙하던 아이슬란드항공 여객기와 충돌한 사고였다. 후자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오버런(overrun)하면서 동체가 심하게 파손되고 승객 및 승무원 173명이 비상 탈출했다.




    노후 A330 18대 중 6대만 퇴역

    또 지난해 7월에는 튀르키예 이스탄불국제공항에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이륙 1시간 50분 만에 엔진 결함으로 아제르바이잔 바쿠 헤이다르 알리예프 국제공항에 비상 착륙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같은 해 10월 인천을 떠나 호주 시드니로 가던 대한항공 여객기는 엔진 이상이 감지돼 회항했고, 12월 미국 시애틀~인천 노선을 운항 중이던 여객기는 엔진 결함으로 엔진 하나를 끈 채 비상 착륙하기도 했다.

    이들 사고는 대부분 대표적인 노후 기종으로 꼽히는 A330 항공기에서 발생했다. 5월 31일 국토부 항공기술정보시스템(ATIS)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항공기 연령(기령)이 20년 이상인 노후 항공기를 32대 보유하고 있다. 이 중 A330 항공기는 총 18대다(표 참조). 지난해 A330 항공기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11월 2일 국토부 주재 ‘항공안전 비상대책점검회의’에 참석해 “보유한 A330 항공기 30대 중 6대를 우선 퇴역시키고 나머지는 5대씩 나눠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 운항 중인 대한항공 A330 항공기에서도 운항 지연 등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는 A330 기종이 배정된 노선의 항공권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다른 기종의 여객기로 바꿔줄 수 없느냐”고 요구하고 있다. 6월 14일 시드니 출국을 앞두고 있는 이 모 씨(25)는 “항공기 편명이 ‘KE401’이라고 해서 확인해봤더니 A330 여객기가 맞았다”며 “지난해 시드니로 가다 회항해 돌아온 기종과 동일하기에 대한항공 측에 더 안전한 여객기를 탈 방법이 없느냐고 문의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아시아나 문 열림 사고까지 더해지면서 과거 대한항공의 대형 안전사고 기억까지 재소환되고 있다. 대한항공이 마지막으로 사망자를 낸 사고는 1997년 8월 발생한 ‘괌 추락 사고’다. 당시 대한항공 여객기는 도착지인 미국령 괌 아가나국제공항(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에 접근하던 중 산악지대 언덕으로 추락해 탑승 중이던 전체 승객 및 승무원 254명 중 228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형사고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여러 차례 그 징후가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에 따라 지난해부터 계속되는 대한항공 사고가 향후에 사망자를 낳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현장 안전 매뉴얼 작동 안 해”

    대한항공 경영진이 안전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와 합병에 모든 관심을 쏟으면서 상대적으로 안전 문제를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인수금으로 약 1조 원을 지출했다. 또 지난달 대한항공은 “아시아나와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위해 2020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내외 로펌 및 자문사에 1000억 원 넘는 비용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현재 대한항공은 노후한 A330 항공기 18대 중 6대만 퇴역시킨 상황인데, A330 항공기 1대를 교체할 수 있는 비용(약 3000억 원)의 3분의 1을 법률 자문료로 지출했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는 것이다. LCC의 경우 리스(임차) 계약 때문에 노후 기종을 곧바로 교체하지 못하지만 대한항공 A330 항공기는 모두 대한항공 소유라 자금만 투입하면 빠른 교체가 가능하다. 이에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대한항공 측 해명이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에도 미흡함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유경인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국내 모든 항공사가 대한항공의 안전 매뉴얼을 받아 쓸 정도로 대한항공의 항공안전체계나 시스템은 잘 갖춰진 편”이라면서도 “외형은 완성됐을지 모르나 현장 위험 식별, 상부 보고 등 실무 내용 면에서는 지속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3월 10일에는 필리핀 마닐라행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실탄이 나와 이륙 직전 회항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여객기에 탑승한 승객들은 실탄을 발견하고 승무원에게 전달했으나 기장에게 즉각 보고되지 않는 등 안전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메가 캐리어(초대형항공사)로 거듭나고자 하는 대한항공의 안전성은 완벽에 가까워야 한다”며 “지난해 연이은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대한항공이 안전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한 만큼, 수년 내에 투자가 반영된 결과물로써 지금보다 높은 안전성을 소비자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이 지난해 11월 2일 국토교통부 주재 ‘항공안전 비상대책점검회의’에서 노후한 A330 항공기 6대를 우선 퇴역시키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이 지난해 11월 2일 국토교통부 주재 ‘항공안전 비상대책점검회의’에서 노후한 A330 항공기 6대를 우선 퇴역시키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 “작은 위험 요소까지 세밀히 관리해야”

    대한항공은 지난해 공언한 안전 투자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우기홍 사장은 국토부 비상대책회의 당시 노후한 A330 항공기 6대를 퇴역시키는 것과 더불어, 2028년까지 신형 항공기 90대를 도입한 뒤 순차적으로 노후 기종을 퇴역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올 한 해 항공기 현대화 및 엔진 교체에 1조5000억 원, 정비 부문에 4000억 원가량을 투자하고 2025년까지 약 5000억 원을 투자해 인천 영종도에 5만㎡(약 1만5000평) 규모의 신규 엔진 공장도 짓기로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올해 안에 보잉 787 항공기 6대와 A321neo 항공기 10대를 도입할 예정인데, 현재까지 A321neo 3대 도입을 완료했다”며 “영종도의 신규 엔진 공장은 올해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퇴역한 A330 항공기 6대는 특정 엔진에 결함이 있었던 것인지 기령과는 관계가 없다”면서 “기종과 기령을 일반화해 사고 원인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최근 국토부 평가 결과 안전성 등급이 하향 조정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향후 안전 운항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진국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여행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빈번한 사고는 소비자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며 “(대한항공이) 안전과 관련된 작은 위험 요소까지 세밀히 관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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