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먼저 계약할게요”… 2030, 한 집 두고 ‘패닉 바잉’ 경쟁 

“살 수 있는 집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조바심에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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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5-12-06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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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송파구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단지. 뉴스1

    서울 송파구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단지. 뉴스1

    “집을 구해서 다행이지만 한 달에 둘이갚아야 할 돈만 300만 원이에요. 그래도 집을 구하는 동안 계속 값이 올라 모든 가능한 대출을 당겨서 베팅한다는 생각으로 집을 샀죠.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잖아요.”

    11월 9일 경기 용인 기흥역 인근에 자리한 아파트를 최근 매입한 박모 씨(32)는 대출금 상환을 걱정하면서도 ‘내 집’을 샀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정부의 초강력 부동산 규제가 담긴 10·15 대책이 나오고 두 달 가까이 지나는 동안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수요를 견인한 것은 ‘내 집 마련’이 절실한 2030세대다. 이들은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대책이 오히려 ‘패닉 바잉’을 부추긴다”고 입을 모았다.

    내년 5월 결혼을 앞둔 박 씨는 결혼을 마음먹은 지난해부터 ‘서울 입성’을 목표로 봉천동, 상도동 일대 위주로 24평형 아파트 매물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가격이 계속 오르기 시작하자 불안감이 커졌다. 박 씨는 “시세를 확인할 때마다 7억 원대 아파트가 8억 원, 8억5000만 원으로 뛰는 걸 보고 최대한 빨리 사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결국 서울은 포기하고 부모님이 있는 용인으로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 ‘영끌’ 베팅” 

    치솟는 시세만 보고 부동산 매매 현장으로 뛰어든 이들은 더 큰 ‘패닉 상황’과 마주한다. 10·15 대책 이후 집값 상승을 염두에 둔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인 탓이다. 박 씨는 “주말마다 경기 안양 인덕원과 기흥역 인근을 돌아다녔는데 매물이 적어 집을 확인하려는 신혼부부가 말 그대로 줄을 서 있었다”고 전했다.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서울도 집주인이 현장에서 바로 5000만~1억 원 호가를 올리거나, 다른 매입자와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10월 중순 은평구 20평형대 아파트를 계약한 A 씨(31)도 10·15 대책이 발표되자마자 서둘러 부동산을 찾았다. A 씨는 “살 집을 결정하고 부동산중개사와 가격 협의를 하는 사이 다른 신혼부부가 먼저 계약하겠다고 해서 정말 패닉 상태가 됐다”며 “내가 살 수 있는 집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생겨 당장 매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A 씨는 “막상 속전속결로 해치우고 나니 과연 내가 적절한 가격에 구입했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고 2030세대가 느끼는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을 감당하려면 은행 대출은 물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자가 가구의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배수(Price Income Ratio·PIR)는 중간값 기준 13.9배, 경기는 6.9배로 집계됐다. PIR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을 경우 집을 살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올해 인상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약 14년간 월급을 온전히 저축해야 하는 셈이다.

    박 씨는 8억3000만 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려고 은행 대출(5억8000만 원)과 예비 배우자 명의의 사내대출 1억8000만 원을 받기로 했다. 박 씨는 “평생 살 집이라고 생각하면 후회는 없지만 은행 대출이자 250만 원에 사내 대출이자를 합치면 한 사람 월급이 사라진다”며 “투자 목적도 아니고 실거주용으로 집을 사는 건데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실이 SGI서울보증으로부터 받은 사내대출 보증 현황에 따르면 올해 1∼

    10월 사내대출 보증은 11조970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11조745억 원) 대비 225억 원가량 증가했다. 

    부모 도움까지 ‘영끌’하는 경우도 다수다. 최근 12억 원(24평형)에 서울 마포구 아파트를 계약한 김모 씨(34)는 “생애최초 구입은 LTV(담보인정비율) 70%까지 가능하다고 해도 규제지역은 6억 원 대출 제한이 걸려 있어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집을 구하면서 생전 처음 겪는 기분과 마주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박 씨는 “항상 선거에서 진보 진영을 찍었는데 올해 부동산대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이 오르는 상황을 직접 접하고 배신감을 느꼈다”면서 “이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입장에서 다른 이유로 민주당을 찍을 것 같다”며 웃었다. A 씨는 “집을 구하기 전에는 부동산 투자에 매몰된 사람을 볼 때마다 좀 비판적인 마음을 가졌으나, 지금은 그들의 마음이 이해된다”며 “집값이 너무 기형적으로 올라서는 안 되겠지만 집값이 떨어지는 게 더 걱정된다”고 밝혔다.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대책이 매입 부추겨”

    이재명 정부는 6월 27일을 시작으로 3번의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여전히 상승 추세다. KB부동산의 11월 전국 주택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1.72% 올라 2020년 9월(2.00%) 이후 5년 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상승폭은 올해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지난달(1.46%)보다도 컸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공급이 없는 상황에서 ‘똘똘한 한 채’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은 우상향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실수요자에게 인기 있는 지역과 대장주 위주로 가격 상승이 진행되고 있지만 수요를 분산할 수 있는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상승 추세가 서울 전역으로 퍼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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