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경기 수원 한 아파트에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사용을 금지하도록 주차 규정을 개정했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독자 제공]
전기차 화재 공포가 여전한 가운데 전기차 지하주차를 금지하는 관리규약이나 규정을 만드는 아파트와 회사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아파트 입주민 간, 또는 회사원과 회사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관리규약 개정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주민 재산권 행사를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는 만큼 법적 분쟁 시 법원에서 무효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아파트 올 때마다 방화범 된 기분”
아파트, 회사, 병원을 가리지 않고 전기차 지하주차를 금지하는 곳이 늘고 있다. 인천의 한 회사에 다니는 전기차 소유주 B 씨는 9월쯤 여느 때와 같이 회사 건물 지하주차장에 들어가려 했다. 평소에는 B 씨의 차량번호를 잘 인식해 열리던 주차장 차단기가 그날은 열리지 않았다. 9월 1일부터 회사가 회사 건물 지하주차장에 등록된 차량 30여 개의 등록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B 씨는 “전기차는 지하주차장 출입이 아예 불가하고 200~300대가량 주차가 가능한 야외 주차장을 이용하라고 하는데, 야외 주차장은 아침 8시 40~50분이면 만차가 된다”며 “야외 주차장이 가득 차면 회사에서 걸어서 10~15분 거리에 있는 주차장에 차을 대야 한다”고 말했다.10월 25일 경기 성남 한 호텔 지하주차장에 주차했던 전기차에 부착된 안내문. [독자 제공]
강원 춘천의 한 아파트에 사는 전기차 소유주 D 씨는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가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 제한을 위해 관리규약을 개정하기로 의결한 상태인데, 지금까지 입대의가 전기차 소유주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의결 결과만 통지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D 씨는 “지역사회가 좁고, 최근 다른 입주민이 소유한 전기차 와이퍼에 누군가 빨간 글씨로 ‘전기차 주차 금지’라고 적힌 A4 용지를 끼워둔 적도 있어 전기차 소유주를 주도적으로 모아 입대의에 건의하기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테슬라 전기차를 타는 A 씨는 “‘전기차는 지하주차장에 주차하지 말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아파트에 걸려 있는데, 현수막에 하필 테슬라가 그려져 있어 아파트에 들어올 때마다 방화범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민사소송서 관리규약 ‘무효’ 될 수도
주차요금을 내는 부설주차장은 주차장법에 따라 전기차의 지하주차를 막을 수 없다. 주차장법에 “부설주차장의 관리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그 이용을 거절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부설주차장 관리자가 이륜차 주차를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유료 부설주차장을 운영하는 건물 소유주가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이용 금지에 대한 관리규약을 만드는 것은 주차장법을 초월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문제는 아파트 주차장에는 주차장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파트 주차장은 아파트 입주민에게만 사용이 허락될 뿐 유료주차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차장에 관한 문제는 공동주택관리법이나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집합건물법)에 근거해 처리된다. 법조계와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공동주택관리법과 집합건물법 적용을 받는 아파트 관리규약이 전기차의 지하주차를 금지할 경우 이 관리규약이 유효한지, 무효한지는 개별 사안마다 민사소송을 통해 법원 판단을 받아야 결정될 수 있다. 전기차의 지하주차를 금지하는 관리규약이 법적 분쟁 소지가 있다는 의미다.
하희봉 로피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전기차 지하주차를 제한하는 관리규약의 유효성에 대해 “아파트 관리규약 개정으로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을 금지해 전기차 소유주가 사실상 주차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다면 주민의 재산권 행사를 심각하게 막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며 “이러한 경우 법원은 관리규약 개정이 무효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지하주차 제한과 관련된 분명한 판결은 아직 없지만, 특정 높이를 넘어서는 차량의 주차장 출입을 금지하는 관리규약이 유효하다는 판결은 있다”며 “차량 규격에 따라 주차를 제한한 사례는 주차장 면적 등을 고려할 때 주차 제한의 합리성이 있었지만, 단순히 최근 발생한 화재 때문에 모든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합리성이 결여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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