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최저임금안을 놓고 노사 간 릴레이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최저임금 논란은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특히 올해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시간당 1만 원’(최저임금 1만 원) 공약과 맞물려 노동계와 경제계의 입장 차가 더욱 극명하다.
현행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 즉,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고 위원회가 심의, 의결한 최저임금안에 따라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위원회는 심의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심의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법정 심의 기한은 6월 29일까지다. 다만 이의 제기 등에 소요되는 기간을 고시 전 20일로 정하고 있어 최종 합의 기한은 7월 16일이고, 효력은 내년 1월부터 발생된다. 지난해에는 기한을 넘긴 7월 17일에 2017년도 최저임금이 6470원으로 결정됐다. 정부 계획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까지 올리려면 정부는 매년 최저임금을 15.7%씩 인상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계는 당장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구생계비’를 기준으로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상당수가 가구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주 40시간을 일하면 기본급은 월 112만3968원, 주휴수당을 합하면 135만2230원이다. 근로기준법 제56조에 따르면 한 주 개근한 노동자에게는 하루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 이를 주휴수당이라고 한다.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라면 매주 하루치 일당을 추가로 지급받는다. 이 경우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가족 한 명을 부양하기조차 힘든 것이 현실이다. 올해 기준 2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168만8669원. 최저임금 노동자의 월급여보다 높다.
그렇기에 노동계는 1인 가구 남성노동자의 표준 생계비(월 219만 원)를 바탕으로 최저임금이 1만 원이어야 주 40시간 근로 기준으로 월급여 209만 원이 돼 기본 생계가 겨우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이야말로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소득주도성장’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핵심 정책이라는 논리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경제계는 최저임금을 급인상하면 고용주와 기업의 부담이 커져 결국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 하락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다. 특히 영세기업 등 소상공인이 떠안게 될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위원회에 경영계 측 대표로 참여 중인 김대준 한국컴퓨터소프트웨어판매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소상공인을 대기업과 같은 급의 ‘고용주’로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내수경기 침체로 소상공인의 가처분소득이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오르면 소상공인은 더는 버틸 힘이 없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 정부가 시행해온 산업정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련 정책, 그리고 노동정책으로 양분화돼 있었다. 그 사이에 낀 소상공인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소상공인 간 경쟁이 날로 심해지는 상황에서 최저임금마저 2배 가까이 오르면 더는 살아남을 재간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주체의 60% 이상이 소상공인인데, 이들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중소기업처럼 어딘가에 인건비를 전가할 수 있는 상황도 못 된다. 인건비가 오르는 만큼 수익은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원 월급 올려주느라 내 주머니는 텅텅”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700만 명에 육박하는 국내 자영업자 가운데 300만 명은 월수입이 100만 원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건비를 아끼려고 혼자 일하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치솟는 임대료와 재료비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인건비라도 아껴 근근이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분을 전적으로 고용주가 부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김 이사장은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을 어느 정도 보전해줘야 최저임금 1만 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대기업의 갑질 근절, 카드 수수료 인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임금 상승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가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소상공인 대다수가 근로자 없이 일하고 있어 임금 상승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프랜차이즈업계는 인건비보다 가맹비나 수수료 등 본사에 지불하는 부담이 더 크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동시에 정부가 나서 대기업의 횡포를 근절한다면 근로자도, 소상공인도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웃으며 맞을 수 있다”고 밝혔다. 통계청의 ‘자영업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자영업자 479만221명 가운데 근로자를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사업자는 392만8365명(82%)이었다.
그러나 최저임금 근로자가 반드시 저소득층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 영향권 근로자 가운데 소득이 가장 적은 1분위 가구에 분포된 사람은 8%에 불과하다. 중산층인 4~7분위에 44%가 몰려 있다. 결국 최저임금을 올리면 그 혜택이 취약 계층에게 전부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이들의 고용 불안이 높아질 여지가 크다. 이 통계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1% 올릴 때 근로자 가운데 청년층은 0.29%, 고령층은 0.33%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0.2%, 근속 3년 이하 근로자는 0.25% 줄어 충격이 더 크다.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올라 이를 맞출 수 없을 때 사업자가 불가피하게 근로자를 해고하기 때문이다. 김대준 이사장은 “최저임금을 올리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소상공인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은 터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고용구조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병태 KAIST(한국과학기술원) 경영대학 교수는 “우리나라의 고용구조는 선진국형이 아닌 라틴형, 그리스형에 가깝다”고 말한다. 지난해 8월 기준 300인 이상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 비율이 전체의 13%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반면 미국은 노동자의 60%(2013년 기준)가 5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영국과 독일은 50%가량이 중견기업 이상 양질의 일자리에서 근무하고 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은 OECD 회원국 가운데 8위에 그치는 게 사실이지만, 이를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졌을 때는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심지어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인상되면 GDP 대비 최고 수준으로 치솟게 된다. 이는 지난해 기준 미국(7.2달러), 일본(7.4달러). 영국(8.4달러)보다 높을 뿐 아니라 프랑스(11.2달러), 호주(11.1달러), 룩셈부르크(11달러) 등과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결국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2~3배인 나라보다 최저임금이 더 높아지는 셈이다.
물론 절대적 수준에서 최저임금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역시 통계의 오류가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나라마다 최저임금으로 인정하는 범위가 다르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으로 기본급과 고정수당만 인정한다.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 성과급은 포함하지 않는 것. 만약 이를 다 포함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현재도 1만 원이 넘는다.
수당·상여 포함된 시간당 임금, 이미 1만 원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1만2076원이고, 가장 열악하다는 용역 근로자 역시 시간당 임금이 9064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기에 직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하거나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비정규직에 한해 별도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편 영국은 상여금이나 숙박비 등을 포함해 최저임금을 계산하고, 프랑스 역시 휴가비와 연말 보너스 등이 포함된다.이병태 교수는 오히려 지금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유럽의 환자’라고 조롱받던 독일이 현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도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구한 ‘하르츠 개혁’ 덕분이다. 그 기간 독일은 노동생산성이 향상됐지만 인건비가 따라 오르지는 않았다. 그것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시행된 하르츠 개혁은 파견 상한 기간을 폐지하고 반복적인 근로계약 체결을 허용하는 한편, 신규 창업은 최장 4년간 임시직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한 법안이다. 52세 이상 노동자는 자유로운 근로계약 체결이 가능하도록 해 고령자 취업 지원을 용이하게 했다. 이를 계기로 독일 노동시장은 경직된 고비용 구조에서 유연한 구조로 전환됐다. 그 결과 2005년 65.5%였던 독일 고용률은 지난해 일사분기 74.1%까지 상승했고, 같은 기간 실업률은 11.2%에서 역대 최저치인 4.8%로 떨어져 완전고용 상태에 근접했다. 특히 여성, 고령자 등 취약계층에서 임금 근로자가 확대됐다.
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 많은 걸 달성하고자 하는 열의는 좋지만, 경제 문제만큼은 조급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경제가 부진해 고전 중인 프랑스 신정부도 노동시장 유연성을 시도하고 있지 않나. 심지어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실질임금이 30%나 하락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최저임금 1만 원은 쉽게 쓸 카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미 일부 기업은 최저임금 상승이 현실화할 것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인건비 억제정책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최근 만난 한 유통 대기업 총수는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오르면 고용을 40% 줄여야 한다고 하더라. 정부 정책이 애꿎은 실업자를 양산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질적으로 저소득 가구를 도우려면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근로 의욕을 북돋을 수 있도록 근로장려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EITC)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EITC는 저소득 근로자 가구에 근로장려금을 세금 환급 형태로 지급하는 제도다. 1975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된 이래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선진국으로 확대됐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세특례제한법의 ‘근로 장려를 위한 조세특례’에 따라 2009년부터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장려금 규모를 늘려 최저임금 인상 없이도 저소득 가구의 생계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수출 경쟁력 떨어지면 국가 경쟁력 추락
또한 제조업은 제품 단가가 올라 가격 경쟁력을 잃을 공산이 크다. 국내 4대 대기업에 근무 중인 임원 A씨는 “대기업 직원과 최저임금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하청업체들이 문제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여러 단계의 하청 구조로 얽혀 있는데, 아래 단계에 있는 하청업체의 근로자 대부분이 최저임금 대상자이기 때문에 인건비가 올라가면 납품 원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고, 그럼 소비자가격까지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A씨는 “경제의 8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물품가격이 오르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기업은 살아남으려고 제조공장을 미얀마, 베트남 등 제3세계로 이동시키거나 너나없이 자동화를 도입할 게 뻔하다. 그럼 국내 일자리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가뜩이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한국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기업 및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의 행복과 기업의 운명을 동시에 결정짓는 최저임금이 필요 이상 분란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국가의 명확한 경제원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병태 교수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들은 경제 관련 의사결정에 원칙이란 게 있다. 북유럽 국가는 이익집단들이 합의해가는 조정시장경제, 영미 계통 국가는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노선을 한 가지로 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현재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경제민주화는 극단의 북유럽 국가로 가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먼저 사회 전반적으로 신뢰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1만 원에 대한 긍정론 “현 최저임금으로 당신이 한번 살아보시오”
문재인 정부에서 주창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이 바로 이를 위한 것인데,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빈곤계층의 지출은 다른 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늘어나게 된다. 이는 곧 국민소득 증대, 나아가 경제성장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 또한 최저임금이 오르면 해당 산업의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과 달리 노동계에서는 거시적으로 생산과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점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6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최저임금 1만원·비정규직 철폐 공동행동’(만원행동)은 문재인 정부에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당장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6월 17일 만원행동 회원들은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극단적 소득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는 해법은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임금소득을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장은 자영업자가 어려운 이유는 임금보다 재벌 대기업의 시장 파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인 회장은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한 대형유통매장의 수탈, 가맹점주에 대한 프랜차이즈 기업의 수탈이 중소상인의 목을 옥죄고 있다”며 “노동자와 더불어 사는 여건이 필요한 상황에서 오히려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해 임금을 올리지 말자는 주장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만원행동은 최근 1000여 명이 참여한 ‘최저임금 1만 원 요구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해당 서명에는 109개 청년단체 소속 회원을 포함해 청년 및 대학생 1064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최저임금 1만원 선언문’에서 ‘실질 청년실업률 39%, 29세 이하 비정규직 월평균 급여 106만 원으로 청년과 대학생은 최악의 시대를 살고 있다’며 ‘최저임금이 실질임금인 청년과 대학생에게 현재 최저임금 6470원은 생활을 영위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결정은 경제학적 접근이나 정책적 평가에 앞서 사회적 합의가 우선시돼야 하는 영역임이 분명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자들을 향해 “현 최저임금으로 당신이 한번 살아보시오”라고 일갈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