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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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죽었다고 달라집니까”

세월호 유가족들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미적 모두 못마땅”

  • 맹서현 인턴기자·이화여대 국어국문과 졸업 email@address

    입력2014-07-28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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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언 죽었다고 달라집니까”

    7월 20일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는 실종자 10명의 가족 20여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만 먹은 지 열흘째,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경기 안산시 단원고 학생 현섭 군의 아버지는 피부가 푸석하고 눈가는 움푹 꺼져 있었다. 7월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그는 다른 유가족과 함께 단식 농성 중이었다. 현섭 군의 아버지는 힘겹게 운을 뗐다.

    “뭐든 일이 확실히 진행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부 대응도, 국회 일 처리도 지금까지 제대로 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유병언 죽음의 진실도 알 수가 없고요. 모두 못마땅할 뿐이에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정부의 거듭된 공언에도 사건 수사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이야말로 유가족들이 가장 유감스러워하는 부분. 당국과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은 터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죽음도 쉽게 믿지 못하겠다는 토로였다. 유가족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기획, 조작된 사건 아니냐”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유 전 회장의 죽음이 확인된 후에도 별다른 동요가 없는 듯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 위원회 김은진 위원장의 말이다.

    “물론 세월호 사건의 책임이 유병언에게도 있는 것은 맞지만, 그가 핵심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진상을 제대로 조사하는 것이 서명운동의 기본 목표입니다. 유병언을 잡으려고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난리를 떨었던 건 정부와 언론이지, 애초에 가족들은 별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 유병언이 죽었다고 해서 세월호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은 7월 하순 현재 400만 명을 돌파했다. 법안 통과를 위해 안산에서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진행된 도보행진이 벌써 두 번째. 그들은 특별법에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사건 발생 100일째인 7월 24일까지는 여야 정치권이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게 이들의 목소리였다.



    “오로지 실종자 얼른 찾고 싶을 뿐”

    “오늘도 성과가 없어요. 가방 2개랑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몇 가지 나왔다던데, 멀리서 눈으로만 봤습니다. 잠수 방식도 바꾸고 해서 많이 기대했는데…. 내일까지 소조기이긴 하지만 풍랑이 다시 세진다고 하니 내일 오전에 수색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네요.”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99일째였던 7월 23일 권오복(59) 씨는 동생 재근 씨를 찾으려고 오늘도 바지선에 몸을 실었다. 꼬박 하루 반나절을 바지선 위에서 수색 작업을 지켜보는 중. 권씨는 22일 새벽 5시 TV를 통해 유 전 회장 추정 시신 발견 소식을 접했을 때 코미디 한 편을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18일 만에 80% 백골화라니, 말이 됩니까.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아요.”

    자신을 포함해 전남 진도 현장에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 대부분은 22일 오전까지도 유 전 회장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는 게 권씨의 설명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감식 결과 발견된 시신과 유병원의 DNA가 100%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온 후에도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한마디로 ‘그런가 보다’였다. 권씨는 “정확한 사인이 나온 뒤에나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착잡한 말끝을 이었다.

    “우리는 유병언이 자살했는지 타살됐는지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요. 세월호 진상규명 여부는 유가족들이 힘써주시고 있고요. 우리는 오로지 실종자를 찾아 얼른 여기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7월 22일과 23일 신문과 방송은 대부분 유 전 회장의 시신 발견 소식을 톱뉴스로 다뤘다. 그러나 정작 사고 피해자들에게 그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의 죽음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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