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네.
1972년 가수 남진이 발표한 노래 ‘님과 함께’ 가운데 일부다. 요즘 이 노래처럼 도시에 집을 갖고 있으면서 시골의 농가주택을 매입해 그림 같은 집으로 탈바꿈시키는 ‘투하우스족’이 늘고 있다.
50대 초반인 김철호 씨 부부는 지난해 오랫동안 비어 있던 경기 파주시 탄현면 소재의 허름한 농가주택 한 채를 매입했다. 임진강 건너 북한 황해도 개풍군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은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 시절 조성된 ‘선전마을’로,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폐가나 마찬가지였다. 경기 고양시 고층아파트에 거주하는 김씨 부부는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농가주택을 매입한 뒤 몇 달간 틈나는 대로 찾아와 정성껏 집을 꾸몄다. 김씨 부부가 구매한 농가주택은 2000년대 초 웰빙 바람을 타고 돈 있는 도시 사람이 시골 외딴곳에 큰돈을 들여 지었던 ‘전원주택’과는 차이가 있다. 전원주택이 아름다운 외관과 아파트의 편리함을 갖춰 비교적 고가인 데 반해, 김씨 부부가 구매한 주택은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허름한 집으로 위아래 이웃해 살고 있는 주민과 허물없이 교류하며 일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다.
조은빠 & 조은맘 하우스
김씨 부부는 농가주택 매입 후 나지막한 나무 울타리를 집 주변에 두르고 길가에는 꽃을 심어 꽃 울타리도 만들었다. 앞마당에는 피크닉용 벤치를 갖다 놓고 햇볕을 가릴 수 있는 그늘막도 쳤다. 폐가나 다름없던 집은 김씨 부부의 정성 덕에 몇 달 사이 사람 숨결이 느껴지는 ‘깔끔한 집’으로 재탄생했다. 집 옆 공터에는 고추와 가지, 토마토 등을 심어 ‘주말농장’으로 가꿨다. 초봄에 모종을 사다 심은 덕에 이제는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과 나눠 먹을 만큼 충분히 자랐다.6월 25일 일요일 오전, 김씨 부부와 커피잔을 앞에 놓고 그늘막이 드리워진 피크닉용 벤치에 마주 앉았다. 김씨 부부는 문패 대신 집 앞에 ‘조은빠 & 조은맘’이란 팻말을 세웠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의 표현으로 읽혔다.
▼도심 고층아파트에 살면서 시골에 집을 따로 마련한 이유가 있나.
“이웃 가운데 강원 홍천에 세컨드하우스를 갖고 있는 이가 있다. 가끔 (홍천으로) 함께 놀러가곤 했는데, 도회지 삶과는 다른 멋이 느껴지더라. 우리도 그런 집을 하나 갖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고, 마침 마땅한 집이 나왔기에 매입했다.”
▼오랫동안 방치된 집을 고쳐 꾸미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엔 돈을 들여 집을 번듯하게 고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힘으로 조금씩 고쳐가는 재미가 있더라. 성취감도 느낄 수 있고…. 여기에 갖다 놓은 물건 가운데 피크닉용 벤치 빼고는 돈 주고 산 것이 거의 없다. 아파트 재활용센터에 나온 물건 중에서 쓸 만한 것을 골라 가져온 것들이다.”
건물 외벽에 걸어놓은 시계, 파라솔, 긴 의자, 그리고 집 앞에 옹기종기 모아놓은 화분들도 아파트 재활용센터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밀폐된 공간인 아파트에서 생활과 달리, 시골집의 넉넉한 공간 덕에 여기저기 물건을 가져다 놓는 것만으로도 인테리어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집을 손수 고치려면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게 들 것 같다.
“여기에 올 때는 한두 시간 잠깐 머물다 가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막상 이것저것 손대다 보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다행히 회사 일을 동생이 함께 봐주고 있어 짬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
김씨 부부는 ‘집’을 꾸미면서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것에 더 큰 만족을 느끼고 있다.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해 직접 기른 상추로 고기를 구워 싸 먹는 즐거움은 덤이다. 김씨 부부는 쌈채 등을 씻어 먹으려고 수도를 끌어왔고, 지금은 간이화장실 설치를 고민하고 있다.
멋진 풍경, 그리고 클래식 음악
“잠시 있다 갈 때는 굳이 화장실이 필요 없었지만, 더 자주 와 머무르려면 화장실이 꼭 있어야 할 것 같다. 집 한쪽에 간이화장실을 설치할까 고민 중이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궁리하면서 자신들만의 집을 만들어가는 김씨 부부는 말 그대로 행복한 고민에 빠져 지내고 있는 듯했다.
외국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 A씨 부부는 경기도 가평에 아담한 집을 한 채 지었다. 답답한 아파트 서재가 아닌,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맘껏 책을 읽고 싶다는 로망을 현실화하기 위해서였다. 앞뒤로 바람 길이 통하도록 만든 툇마루의 좌우공간은 서재로 꾸며 책을 빽빽이 채워 넣었다. A씨 부부의 집들이에 다녀온 한 지인은 “도심 속 답답한 아파트 서재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는 그곳에서라면 저절로 책을 집어 들고 싶겠더라. 자연과 함께 하고픈 50대의 로망과 문학박사 부부의 지적인 모습이 거실 서재에 투영돼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서울 명문대 교수로 재직 중인 B씨는 서울과 제주에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중에는 서울 아파트에서 출퇴근하고, 금요일부터 주말까지는 제주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것.
주중과 주말로 나눠 도시와 전원의 삶을 만끽하는 B씨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만큼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B씨가 제주에 주택을 마련한 것은 몇 년 남지 않은 퇴직 후 삶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답답한 아파트를 벗어나 탁 트인 공간에서 산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에 정착하겠다는 은퇴 후 삶의 구상을 일찌감치 실행에 옮긴 것이다.
비행기로 서울과 제주를 매주 왕복해 교통비가 들긴 하지만, 아침 일찍이나 저녁 늦게 운항하는 비행편을 골라 일찌감치 예매하면 큰 부담이 없다고 한다. 제주에서 서울 근무지까지 출퇴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2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고. 물론 B씨가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삶을 사는 것은 스스로 시간을 조절해가며 일할 수 있는 B씨 직업의 특수성 덕에 가능했다.
투하우스족 중에는 도심 속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해 즐기는 이도 있다. 50대 중반인 전문직 종사자 C씨가 그런 경우다. C씨는 평일 저녁 밤늦은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자신만의 ‘덴(DEN)’에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덴은 곰이나 사자가 사는 ‘굴’을 뜻하지만, 편안히 쉴 수 있는 방이나 은신처를 의미하기도 한다. 클래식 애호가인 C씨는 위아랫집은 물론 옆집까지 신경 써야 하는 자신의 서울 아파트에서는 취미를 즐기기가 여의치 않아, 몇 해 전 서울 광진구에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오피스텔 한 채를 장만했다. 오피스텔의 특성상 퇴근시간이 지난 밤 늦은 때나 주말에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맘껏 음악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
시간과 돈, 그리고 열정
C씨는 “나만의 공간에서 볼륨을 높여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듣고, 한적하게 책을 읽으며 스트레스를 푼다”면서 “가끔은 친구들을 오피스텔로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C씨 부부가 함께 오피스텔에 가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거나 독서로 소일한다고.나이가 들수록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에 거주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2017 서울 서베이에 따르면, ‘10년 후에 어떤 주택에서 살고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나이가 많을수록 미래 주거 형태로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단독주택’에 살 것 같다는 응답이 30대는 10.3%에 머물렀지만 40대 18.6%, 50대 28.7%로 점차 늘었고 60대는 41.8%로 크게 높았다. 60대의 경우 아파트에 거주할 것이란 응답은 단독주택보다 더 적은 37.9%에 그쳤다.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마당과 조그만 텃밭이 있는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과 수요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거주하는 주택 외 또 다른 나만의 공간을 구한 뒤 직접 꾸미는 투하우스족은 노년의 소망을 일찌감치 현실화한 선구자라 할 만하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투하우스족이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시간은 물론, 무엇보다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등 대도시에 비해 저렴하겠지만, 그래도 농가주택을 구매하려면 최소 몇천만 원 이상 매입비용을 감안해야 한다. 더욱이 B씨처럼 제주에 세컨드하우스를 두고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생활을 하려면 일할 시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갖춰야 한다. 결국 시간과 돈, 그리고 열정이 뒷받침돼야 투하우스족으로서 여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셈이다.
“로망 뒤에는 고생덩어리 있다”
서울 등 대도시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시골에 주택을 하나 더 구매해 ‘두 집 살림’을 꿈꾸는 이라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선택에 따른 의무는 순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 여의도 아파트에 거주하는 회사원 H씨는 몇 해 전 경기 양평에 한옥 한 채를 구매했다. 시골 출신으로 자연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던 터에 한적한 시골에 잘 지은 한옥이 매물로 나온 것. H씨는 “월급쟁이가 시골에 집 한 채를 더 갖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당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조금 있어 평소 꿈꾸던 시골집에 대한 로망을 현실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H씨 부부는 주말마다 서울 아파트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양평 한옥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색다른 재미에 부지런히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양평 집에서 밥을 먹는데 천장에서 지네가 떨어져 기겁한 일이 있었다. 또 언젠가는 마당에서 뱀이 나와 깜짝 놀라기도 하고…. 집 주변에 계곡이 있는데, 그 때문인지 뱀이 많았다. 한 달에 한두 번 시골에 가서 고기 구워 먹고 술 한잔하는 낭만만 꿈꾸며 집을 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H씨는 시골집을 구매하고 초기에는 집 주변에 있는 산에도 자주 오르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겠다는 계획을 세웠단다. 인척이 선물해준 고급 오디오 시스템을 집 한쪽에 구비하고, 책도 수백 권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현실은 H씨가 하고픈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6년을 오갔는데 음악 한 곡 맘 편히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책은 진짜 한 줄도 못 읽은 것 같다. 시골집에 가자마자 풀부터 뽑아야 했으니까. 갈 때마다 손이 새까매지도록 풀을 뽑았다. 일주일 사이에도 풀이 얼마나 무섭게 자라던지…. 로망을 꿈꾸며 산 집이었는데, 나중에는 고생덩어리로 느껴지더라.”
H씨는 6년을 보유한 양평 한옥을 지난해 경제적 이유로 처분했다. 지나고 보면 고생도 모두 추억처럼 느껴진다고 했던가. H씨는 시골집에 얽힌 어려움을 한참 얘기하다가도 문득 도회지에서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감동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불편하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자고 나면 아침에 산에서 내려오는 맑고 상쾌한 공기는 잊을 수 없다. 도회지 삶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맛이 있다. 그렇지만 그 낭만 뒤에 반드시 고생이 함께 온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