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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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없는 ‘잡음 드라마’

조직 동원·모바일 시스템 오류 논란 속에 국민은 없어

  • 손영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2-09-07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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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동 없는 ‘잡음 드라마’
    “앗!” “휴!” “와!”

    8월 25일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대통령선거(이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첫 경선 결과가 발표되자 각 후보 진영의 희비는 극명히 엇갈렸다.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후보가 팽팽히 맞서리라는 예측과 달리, 문 후보가 60%에 가까운 득표로 압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승리한 문 후보 측에선 함성이 터져 나온 반면, 비문(비문재인) 진영은 예상치 못한 대패에 할 말을 잊었다.

    민주당은 애초 제주에선 2만 명 안팎의 선거인단을 예상했다. 하지만 모바일투표 선거인단에 3만2984명이 몰리는 등 총 3만6028명이 선거인단으로 등록했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흥행 대박 조짐이라는 긍정적 견해가 있는가 하면, 첫 경선지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각 후보가 조직을 총동원해 선거인단 모집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라는 부정적 견해도 나왔다. 비문 진영 한 관계자는 “선거인단 등록 마감을 하루 앞두고 1만여 명의 선거인단이 무더기로 등록한 것은 조직 동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문 對 비문’ 예상 못한 결과

    제주 경선을 실시하기 전까지 민주당 안팎에서는 제주 경선 전체 판세에서 문 후보가 다소 밀린다는 분석이 많았다. 문 후보 스스로도 여러 차례 “제주에서는 약간 불리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문 후보의 압승이었다. 승리 원동력은 모바일투표였다. 제주 경선 투표자 2만102명 가운데 모바일투표자는 1만9345명(96.2%)에 달했다. 문 의원은 그중 1만1701표를 가져가 전체 모바일투표의 60.5%를 득표했다. 투표소 투표(49.5%)나 현장 대의원 투표(14.1%)보다 월등히 높은 비율이었다.



    경선이 끝난 직후 비문 진영 캠프 관계자들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당 지도부와 모바일투표의 불공정성에 대해 강한 어조로 성토했다. 특히 모바일투표 과정에서 ARS를 듣고 투표하는 유권자들이 1, 2, 3, 4번 후보를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찍은 뒤 전화를 끊으면 표결이 인정되지 않는 점을 문제 삼았다. 김두관 캠프 이호웅 상임경선대책본부장은 “지도부가 상식에 어긋난 룰을 정했다”며 “통합진보당의 대리 투표나 무더기 투표랑 뭐가 다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동안 참아왔던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도 한꺼번에 폭발했다. 비문 진영에선 지도부가 문 의원을 대선 후보로 만들려고 보이지 않게 편을 든다고 의심해왔다. 제주 경선을 하루 앞둔 8월 24일 밤 모바일투표 개표 과정에선 집계상 오류가 발생해 개표 작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각 후보 캠프에서 개표 프로그램 설정을 수정한 후 개표에 들어가고, 차후에 검표하는 데 합의하면서 문제를 봉합했지만 출발부터 개운치 않았다. 제주 경선에서 문 후보와 손 후보가 연설하는 와중에 마이크가 1분 먼저 꺼지는 등 운영상의 미숙함도 드러났다. 비문 진영 캠프 관계자는 제주 경선 결과를 두고 “그동안 울고 싶은 데 뺨을 때려준 격”이라고 털어났다.

    손 후보와 김 후보 측 관계자들은 제주 경선 직후 모여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울산 경선 당일에도 각 후보 측은 경선 참여 여부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최고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도 잇따라 회의를 열어 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각 캠프에선 이대로는 경선에 참여할 수 없다는 강경 기류가 대세를 이루면서 끝내 울산 경선에 비문 후보들이 참여하지 않았고, 다음 날 충북 토론회마저 취소되는 등 파행으로 얼룩졌다.

    감동 없는 ‘잡음 드라마’

    8월 29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이해찬 대표(가운데) 등 지도부가 경선 파행, 공천 헌금 등의 문제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경선 룰 정할 때부터 논란

    우여곡절 끝에 비문 진영 후보들은 강원 경선부터 다시 복귀했지만 경선을 둘러싼 잡음은 계속됐다. 8월 27일 손 후보 측은 “문 의원 측이 ‘전화투표 독려팀’을 운영하며 지지를 호소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국민의 참여를 확대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각 후보 측에서 얘기하기를 꺼렸던 조직 동원의 실상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올랐다.

    비문 진영은 모바일표심과 당심이 다른 이유는 조직 동원의 결과라고 주장하면서 문 후보와 지도부를 강하게 몰아세웠다. 손 후보는 9월 3일 광주·전남 지역 방송토론회에서 “정체 모를 모바일 세력의 작전 속에 민심이 짓밟히고 있다”며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에 직격탄을 날렸다. 비문 진영 일각에선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군구 의원이나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지도부 눈치를 보느라 특정 후보를 밀어준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제기됐다. 비문 진영 캠프 관계자는 “현장에서 가장 강력하게 조직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시군구 의원이나 기초자치단체장뿐”이라며 “후보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이들이 어느 순간 무슨 이유에선지 특정 후보로 쏠림현상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에 당권파나 문 후보 측에선 모바일표심은 민심을 반영하는 것일 뿐 조직 동원과는 관련 없다고 반박했다. 윤호중 사무총장은 9월 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의원의 표심은 대체적으로 조직 선거의 양상을 보이지만, 투표소투표나 모바일투표 같은 일반 선거인단의 표심은 일반 국민의 여론조사에 수렴한다”고 말했다. 문 후보 역시 “지금까지 1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선거인단에 참여했는데 그런 말은 참여하는 국민의 성원과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모으자는 뜻을 폄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후보 측의 조직 동원을 비판하는 다른 후보들 역시 조직 동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각 후보 캠프는 팬클럽과 외곽 지지단체 등 조직을 총동원하는 것은 물론, 이색 마케팅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선거인단 모집에 사활을 걸었다. 20만여 명의 회원을 둔 정봉주 전 의원의 팬클럽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과 문성근 상임고문이 이끌던 ‘백만민란’ 같은 대규모 친야권 조직의 지지를 이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조합원 수십만 명을 거느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환심을 사려고 각 후보는 앞다퉈 산별노조 및 노동현장을 찾았다. 트위터 폴로가 140만 명인 소설가 이외수 씨를 찾아가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이는 경선 룰이 정해질 때부터 예상되는 부분이었다. 민주당은 경선 룰을 정하는 논의 과정에서 완전국민경선제 기조 아래 유권자들의 투표 편의성을 돕기 위해 모바일투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선거인단을 200만 명 이상 모집해 새누리당의 ‘박근혜 추대식’과는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경선 룰 결정 때부터 부정선거 시비 논란과 당원, 대의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비문 진영에선 “문 의원에게만 유리한 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지도부가 결선투표제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봉합했다.

    국민 관심 급속히 식어

    일반 국민이든, 당원 및 대의원이든 표의 가중치 보정 없이 모두 1인 1표로 적용돼 처음부터 얼마나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경선 결과가 판가름 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비문 진영 캠프 관계자는 “결선투표를 받지 않고 모바일투표 가중치 조정을 끝까지 주장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지금의 사태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각 후보 진영의 갈등은 책임론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당의 내홍을 가져왔다. 지도부 사이에 책임론 공방이 벌어졌고, 후보들은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을 주고받았다. 인천 경선에선 이해찬 대표에 대한 비문 진영 지지자들의 야유가 쏟아졌는가 하면, 각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9월 3일 저녁 김한길 최고위원 모친 상가에선 비주류 측 김태랑 전 의원이 박지원 원내대표와 말다툼을 벌이다 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비문 진영에서 당권파가 문 의원을 편파적으로 지지한다며 불만을 품어온 상황에서 터져 나온 불미스러운 소동이었다.

    가뜩이나 경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적은 상황에서 경선을 둘러싼 잡음이 잇따라 터지자 경선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장외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라는 유력 대선주자가 있는 탓에 민주당 경선은 안 원장과의 단일화를 위한 후보를 뽑는 ‘2부 리그’라는 인식이 강했다. 민주당은 역동성 있는 경선 과정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면 지지도가 오르고 안 원장과도 대등하게 맞설 수 있으리라 자신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 국민적 관심이 떨어지면서 경선에 참여하는 투표율도 떨어지고 있다. 제주(55.33%)를 시작으로 울산(64.25%), 강원(61.25%), 청주(56.31%)까지 네 차례 경선 동안 단 한 번도 50% 아래로 내려간 적 없던 투표율이 9월 1일 전북 지역 경선에선 45.51%까지 떨어졌다. 당 관계자는 “정치 ‘16부작 드라마’라고 불리던 2002년 민주당의 지역별 순회경선은 국민의 폭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이회창 대세론을 무너뜨리는 단초를 마련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 대선 경선은 잡음이 끊이지 않아 흥행은커녕 중단 없이 완주만 해도 다행인 처지가 돼버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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