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예부터 농한기면 왕은 물론, 평민까지 매사냥을 즐겼습니다.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등 나이와 쓰임에 따라 다양한 매 이름이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요. 매는 야생성이 강해 길들이기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개 사냥 능력은 갖췄으나 야생성은 적은 생후 1년 내외 매를 붙잡아 길들였습니다. 매를 굶겨 처음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닭고기를 먹게 하고, 차츰 경계를 풀며 사람 손을 타게 합니다. 그런 다음 굶긴 매를 밖에 나가 풀어주고 다시 손에 든 먹이로 유혹하는 등 오랜 기간 밀고 당기기를 해야 비로소 사냥매가 완성됩니다.
이제 꿩사냥을 나갑니다. 몰이꾼이 여기저기 수풀을 헤치면 꿩이 날아오릅니다. 그러면 팔뚝을 휘둘러 매를 날려 보내지요. 이것을 ‘매를 후린다’고 합니다. 고기 맛이 일품이라는 꿩은 몸이 무거워 빨리 날지 못합니다. 그러니 매에게는 쉬운 표적입니다. 매가 공중에서 꿩을 낚아챈 뒤 땅으로 떨어집니다. 매의 꽁지깃에 매단 매방울이 떨렁이는 소리를 듣고 떨어진 곳을 찾아갑니다. 수풀을 여기저기 뒤지다 보면 방울과 함께 매단 길고 하얀 거위 깃털이 눈에 띕니다. 그러면 배고픈 매가 뜯어먹기 전 얼른 꿩을 낚아채고 대신 닭고기를 줍니다. 여기서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이 나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것이 매사냥 방법입니다.
그런데 가끔 매사냥을 하다 매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매가 낯선 곳에서 방향을 잃고 주인에게 돌아오지 못하거나, 꿩을 배불리 뜯어먹은 뒤 멀리 날아가버린 경우입니다. 그래도 길들여진 매라 배가 고프면 다시 주인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가끔 옆 마을 엉뚱한 집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요. 그럴 때에 대비해 달아놓는 것이 있습니다. 희고 긴 거위 깃털에 방울과 소유자 이름을 새긴 쇠뿔입니다. 이 셋을 함께 매의 꽁지깃 사이에 매단 것이 바로 ‘시치미’입니다. 잘 보이게, 잘 들리게, 잘 찾게 말입니다.
잘 훈련된 매 한 마리의 가격이 당시 말 한 필과 맞먹었다 하니 지금으로 치면 차 한 대 값입니다. 그래서 다른 마을, 다른 집의 귀한 사냥매가 날아들었을 때 이것이 탐이 나 남의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시치미를 슬쩍 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행여나 주인이 찾으러 오면 뻔뻔하게 바꿔 단 시치미를 보여주며 자기 매라고 잡아뗄 요량이지요. 오랜 시간 같이 먹고 자며 길들인 매라 딱 보면 아는데 “이 시치미를 보라”면서 자기 매라고 우깁니다. 분명 다 아는데 빤한 수작으로 아닌 척, 모르는 척한다는 의미의 ‘시치미를 떼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요즘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치미를 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빤히 다 아는데 ‘모른다, 만난 적 없다, 그런 보고를 받은 적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합니다. 확증이 없는데 심증만으로 어쩌겠느냐는 뻔뻔함이지요. 그러면서 “죄가 있다면 벌을 받겠다”고 합니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이 ‘죄가 있다면’은 범죄자의 심리가 반영된 말로, 실은 ‘내 죄가 들통나면’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리저리 증거를 인멸해놓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위증죄를 피하려고 ‘제 기억에는’이라든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같은 발뺌거리도 만들어둡니다.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잘못 알고 있었다’며 시치미를 뗄 수 있게끔 말입니다. 하지만 매를 다시 날려 누구 팔뚝으로 돌아오는지 보면 알 수 있듯, 숨겨둔 사람이나 폐기한 증거는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더는 빼도 박도 못 하게 말입니다.
김승용은 국어학과 고전문학을 즐기며, 특히 전통문화 탐구와 그 가치의 현대적 재발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속담이 우리 언어문화 속에서 더욱 살찌고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10년간 자료 수집과 집필 끝에 2016년 ‘우리말 절대지식’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