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황새가 물어다 주는 거라는 서양 부모들의 둘러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새가 아기를 물고 올 수 있지?’ 그때는 황새를 잘 몰랐습니다. 백로는 참새나 까치에 비하면 무척 큰 새입니다. 그런데 황새는 그 백로보다도 몇 배나 더 큽니다. 웬만한 백구 누렁이는 날갯짓 한 번으로 쫓아버릴 만큼 크고 위압적이죠. 황새라는 이름은 ‘큰 새’라는 순우리말 ‘한새’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작은 새로 통하는 새는 무엇일까요. 바로 참새보다 1cm 더 작은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입니다. 뻐꾸기의 탁란 피해자로 잘 알려진 새죠.
이쯤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눈치 챘을 겁니다. 바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속담입니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자기 분수나 격에 맞는 것을 바라야 한다는 뜻이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갈잎을 먹으면 떨어진다)’라는 속담과 함께 분수를 모르고 허황된 것을 좇을 때 많이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속담에서 왜 하필 황새와 뱁새가 같이 나오는 걸까요. 뱁새는 참으로 요상한 새입니다. 모둠발로 종종거리는 참새나 까치와 달리 뱁새는 ‘걷고 뛰는’ 새니까 말입니다. 맞습니다. 뱁새는 닭처럼 걷고 타조처럼 뜁니다(날카롭고 긴 발톱이 있어 나무도 수직으로 ‘뛰어’ 올라갑니다). 위험이 느껴지면 참새는 후루룩 날아갔다 호로로 오지만, 뱁새는 후다닥 뛰어갔다 타다닥 다시 옵니다. 뛰는 게 나는 것만큼 빠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걷는 큰 새 황새와 걷고 뛰는 작은 새 뱁새가 짝을 이뤄 속담에 등장하는 겁니다. 이 속담이 생겨날 당시 아마도 황새는 느긋한 양반을, 뱁새는 줄달음치는 상것을 뜻했을 겁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뱁새가 황새걸음을 하면 가랑이 찢어진다’가 있습니다. ‘황새걸음’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걸음.’ 아주 긴 다리로 ‘컴퍼스 넓게’ 걷는 황새를 과연 짧은 다리 뱁새가 따라갈 수 있을까요. 아마 많은 사람이 ‘불가능해. 그러니 이런 속담이 생겼지’ 생각하겠죠. 그런데 아닙니다. 뱁새는 황새걸음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아니, 더 빠릅니다. 단, 뛴다면 말이죠.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는 속담은 자기 능력에 맞는 낮은 나무부터 타라는 것이지, 아예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허세 부리며 높은 나무를 타다간 중간에 힘이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는 경계의 말일 뿐입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속담 역시 결코 체념하거나 단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잘난 이를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 처지와 능력을 정확히 알고 그에 맞춰 힘껏 노력하면 된다는 뜻이죠.
같은 각도에서 다리 짧은 컴퍼스는 다리 긴 컴퍼스보다 따지고 잴 수 있는 것이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컴퍼스를 벌리면 결국 가랑이만 쭉 찢어지겠죠. ‘단점을 신경 쓸 시간에 장점을 계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뱁새는 자신이 타고난 뜀박질 선수란 사실을 알기에 인간처럼 황새걸음을 어리석게 따라 하지 않습니다. ‘숏다리’ 뱁새가 ‘롱다리’ 황새를 따라잡자면 뛰어야 합니다. 보폭이 좁으면 더 빨리 걸으면 될 뿐입니다. 황새걸음 쫓아 걷지 말고 뛰어서 추월합시다.
김승용은 국어학과 고전문학을 즐기며, 특히 전통문화 탐구와 그 가치의 현대적 재발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속담이 우리 언어문화 속에서 더욱 살찌고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10년간 자료 수집과 집필 끝에 2016년 ‘우리말 절대지식’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