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이 있는 곳을 찾기보다 편의점이 없는 곳을 찾기가 더 힘들 지경이다. 2015년 12월 기준으로 CU 9409개, GS25 9283개, 세븐일레븐 8000개가 성업 중이다. 이 밖에도 미니스톱, 홈플러스의 365플러스나 신세계의 위드미 같은 후발주자에 개인 편의점까지 합하면 전국 편의점 수는 약 3만 개에 이른다. 편의점업계 선두인 CU와 GS25는 올해 안에 각각 점포 1만 개 돌파를 목표로 내걸 만큼 편의점 사업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 연말 안에 3만3000여 개 편의점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기업들의 야심찬 계획에 대해 정작 점주들 반응은 부정적이다. 편의점이 늘어날수록 각 점포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은 불문가지. 업계 추정치에 따르면 국내 편의점당 인구수는 2015년을 기준으로 약 1700명. 편의점 강국인 일본(2015년 기준 약 2500명당 1개 업소)보다 편의점이 더 빽빽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본사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점주들에게 인센티브나 매장 리모델링 같은 보상을 약속하지만 이마저도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모범거래기준안에 따라 편의점은 도보거리 250m 이내 출점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이 무색하게 동일 상권 내 편의점 난립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5년째 편의점을 운영하는 허모(62) 씨는 “길만 건너면 편의점이 하나씩 있다. 편의점 입구에서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눈에 보이는 편의점이 4곳”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경기가 나빠 매출이 좋지 않은데 주위에 계속 편의점이 생기면서 요즘은 생활비도 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편의점보다 담배 소매점 규정이 유리
250m 이내 출점 제한은 같은 브랜드에만 해당된다. 즉 GS25가 있는 곳에서 250m 내 CU나 세븐일레븐 등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이 들어서도 막을 방법이 없다. 허씨는 “같은 편의점이 250m 이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허씨는 “도보거리 250m이지 직선거리 250m를 제한한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맞은편이라도 횡단보도나 지하보도가 있으면 출점이 가능하다. 직선거리로는 50m도 채 되지 않는 범위 안에 있지만 지하보도를 통해 걸어가면 250m가 넘는다는 이유로 같은 회사 편의점이 들어왔다”며 답답해했다.편의점의 경쟁 상대는 근처 다른 편의점만은 아니었다. 서울 성동구 도선동에서 10년째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56) 씨는 “매출 하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대형마트의 배달 서비스”라고 주장했다. “대형마트 온라인 마켓에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물건을 배달 주문하는 것과 편의점까지 걸어와 비싼 값에 물건을 사는 것 가운데 소비자가 어느 쪽을 선호하겠나. 나날이 늘어가는 편의점도 큰 문제지만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의 배달 서비스가 현장에서는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업계 상황을 설명했다.
점주들은 입을 모아 “편의점 간 거리를 늘리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김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담배 소매점 간 거리 규제로 편의점 입점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대형마트에 밀린 편의점은 대부분 생필품보다 담배나 즉석식품 판매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 모객상품인 담배의 소매점 거리를 늘리면 자연히 상호가 다른 편의점이라도 입점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편의점업계에서는 사업자등록증 다음으로 꼭 필요한 것이 담배판매허가증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담배는 편의점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모객상품이다. 현재 담배사업법상 각 담배 소매점이 지켜야 할 거리는 최소 50m. 그나마 100m2 이상인 매장은 구내소매점으로 분류돼 이와 같은 규제에서 예외로 빠져 있다. 따라서 250m 이내 입점 제한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해도 대형매장을 제외하면 50m 내에는 다른 편의점이 입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점주들의 주장은 예외 규정을 삭제하고 담배 소매점 간 허용 거리를 늘리면 자연히 편의점 간 거리도 벌어져 과당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2015년 국내 편의점의 총매출액은 17조5000억 원으로, 전년 13조8000억 원보다 약 27% 성장했다. 총매출액을 점포별(2015년 기준 전국 3만 개) 연매출로 단순 계산하면 약 5억8000만 원이 된다. 이에 비해 2014년 점포별(전국 2만7000개) 연매출 추산액은 약 5억9000만 원. 편의점업체는 돈을 벌었지만 점주들의 매출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편의점 점주들은 매출도 줄고 수익도 떨어졌다고 아우성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본사에서는 점포 개설 시 점주의 순이익을 월 250만 원 이상으로 예측한다. 그러나 점주 순이익이 월 250만 원은 점주가 매일 8시간씩 근무하고 나머지는 최저임금(시급 6030원)으로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썼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주말 없이 일해야 중소기업 대리급 보수를 버는 수준. 게다가 매장 내 재고 상품의 경우 업체에 따라 최소 50%에서 최대 100%까지 점주가 떠안아야 한다. 분기별 평균 10만~20만 원의 상품 분실까지 감안하면 실제 점주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많지 않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 답답한 점주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발주자 편의점업체들은 추가 인센티브, 매장 리모델링 등을 구두 약속하며 점주들을 유혹한다. 문제는 이 구두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황원선 365플러스 가맹점주협의회 회장은 “365플러스를 운영하는 홈플러스가 당초 점주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판매장려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홈플러스는 365플러스 설립 당시 업계 후발주자라는 취약점을 보완하고자 점주들에게 영업지원 목적으로 매출액의 3%를 판매장려금으로 제공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2013년까지는 계약을 지켰지만 2014년에는 당초 약속한 금액의 60%, 2015년에는 30%만 지급해 점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현재 홈플러스와 가맹점주협의회는 이와 관련해 협상을 진행 중이다.
업체 측이 구두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답답한 것은 365플러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해온 양모(53) 씨는 2011년 GS25를 개점했다. 양씨는 “계약한 매장에 처음 가봤는데 내부가 너무 낡아 있었다. 업체 측에 불만을 제기하자 성수기가 지나면 곧 내부 공사를 해주겠다고 구두 약속을 했다. 그러나 약속했던 기한이 한참 지나도 내부 공사 이야기가 없었다. 결국 재차 내부 공사를 요구했지만 업체 측에서는 그제야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양씨는 리모델링이 안 되면 직접 매장을 임차해 마진율을 높일 계획을 세웠다. 편의점 계약은 크게 위탁 가맹 계약과 완전 가맹 계약으로 나뉜다. 위탁 가맹 계약은 업체가 매장을 임차하기 때문에 마진율이 60%에 그치지만, 완전 가맹 계약은 점주가 직접 임대차 계약을 맺는 형식으로 마진율이 70%로 오른다. 그러나 매장 임차 계획은 그저 계획으로 끝났다. 위탁 가맹 계약서에 점주 본인은 물론, 배우자와 친인척까지 매장 임대차 계약을 맺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GS25 관계자는 “매장 임차 문제는 회사가 최적의 매출을 올리고자 회사 자원을 이용해 매장을 개발 및 임차한 만큼 계약서에 점주 임차 금지 조항이 있는 것이고, 이마저도 2014년 이후 계약서에서 삭제됐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