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과거로 여행을 나선다. 페달 굴리는 소리와 이야기로 가득한 거리 위를 풍경을 감상하며 느긋한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살갗에 직접 닿는 바람은 어느 때나 자유롭고 훈훈하다. 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페달을 굴려 제법 먼 시간 달려가본다. 자전거 타기의 신체성. 이 때문에 현대 도시인에게 자전거는 레저 장비다. 자전거는 더는 거리를 가득 채우는 교통수단도 아니다. 그럼에도 엉뚱한 상상을 하며 과거로 달려가 특이하게 생긴 자전거 한 대를 찾아오려 한다.
핸들을 꺾어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이곳은 언제쯤일까. 1975년 서울. 사람들은 짐자전차에 위태롭게 쌓아올린 짐과 흔들거리는 삶을 싣고 달린다. 짐받이가 큰 짐자전차는 기름때와 붉은 쇳녹이 절묘하게 타협한 빛깔과 탄탄한 구조에 충실하다. 사과상자, 생선상자, 과일상자, 병우유, 잡화, 동대문시장에 납품할 물건 등을 싣고 휘청휘청 굴러가는 짐자전차. 그것은 가난한 서민에게 화물차나 마찬가지다. 이들뿐이 아니다. 우편집배원과 신문 배달부는 자전거 뒤에 온갖 사연과 이야기를 싣고 골목을 누볐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자전거를 달려본다. 1817년 독일 바론 카를 폰 드라이스(Baron Karl von Drais) 대공이 인간동력 실행기계(Laufmachine)로 ‘하비 호스(Hobby Horse)’라 부르는 자전거를 발명했다. 그 후 자전거에 페달과 체인이 장착되고 19세기 말 지금과 같은 자전거 모델이 완성됐다. 불행히도 20세기 초 북미에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자전거는 꽤 오랫동안 아이들과 여자를 위한 장난감으로 치부됐다. 그럼에도 당시 자전거 판매를 위한 상업 포스터를 보면 여인에게 자전거는 교외로 달려갈 수 있는 자유와 낭만을 상징했다. 동시에 권리와 평등을 요구하며 싸우던 여인의 전투적 이미지가 자전거 홍보에 사용됐다.
무엇보다 자동차를 살 수 없었던 가난한 이들에게 자전거는 20세기 벽두부터 여전히 상인과 장인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자 도구였다. 생선 장수, 칼 가는 장인, 솜사탕 아저씨, 우유 배달부, 신문 배달부, 우편집배원도 자전거를 이용했다. 이동 정육점은 수레가 달린 자전거를 활용했다.
기술의 과거를 찾아보다 이탈리아 칼갈이 자전거 도면을 발견했다. 칼갈이 자전거는 자전거 페달로 연마 휠을 돌릴 수 있다. 이동할 때 뒷바퀴에 거는 체인과 별도로 연마석에 거는 작업용 체인과 기어세트가 있다. 작업할 때는 뒷바퀴 체인을 페달에서 빼내 거치대에 걸어둔다. 원형 연마석은 자전거 중앙 프레임에 얹어 볼트로 고정하거나 아예 용접해서 부착한다. 연마휠은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교체해 사용할 수 있다. 요즘은 기본 연마석을 그대로 두고 끼워 사용할 수 있는 연마재들이 다양하다. 교체할 수 있는 원형띠 사포, 광택용 버프(일명 빠우), 다양한 원형 숯돌, 마무리용 융 버프 등등. 연마석 위에는 냉각수를 담는 통이 달려 있다. 칼을 갈다 보면 마찰열 때문에 칼이 물러지기 쉬워 종종 냉각할 필요가 있다. 연마석 둘레에는 물이 튀지 않도록 물받이 틀이 붙어 있다. 그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이 빠지는 배수관이 지면까지 내려와 있다. 연마석 앞에는 작은 모루가 고정된 작업대가 놓여 있다.
자전거 앞뒤에는 판매하는 칼과 가위를 진열할 상자나 각종 공구와 소모품을 담는 상자를 싣는다. 자전거를 안전하게 세워두려고 측면이나 뒷바퀴에는 안테나처럼 조절할 수 있는 지지대와 삼각받침을 달아놓았다. 안장은 오랜 작업에 적합하게 편리하고 푹신하게 만들어져 있다.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사업 중인 맞춤형 자전거 제작공방 윈터 바이시클스(Winter Bicycles)는 1940년대 유행하던 라로티노(L’Arrotino)라 부르는 로만 스타일의 칼갈이 자전거(그림 참조)를 참조해 현대적 칼갈이 자전거를 만들었다. 그들이 칼갈이 자전거를 주문받아 완성한 때는 먼 과거가 아닌 2011년이다. 칼을 갈아주는 남편과 장인들이 사라진 골목에서 다시 길거리 비즈니스로 부활하고 있다.
여러 사람의 날붙이를 갈려면 인상이 서글서글야겠고 말재주도 좋아야 한다. 정릉시장 청년들이 자전거 칼갈이사업단을 만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 청년들은 또 어떤 인상과 말재주를 가지게 될까. 언젠가 그들의 칼 가는 재주가 어느 정도인지 살피러 가야겠다. 칼을 갈러 나온 아주머니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또 어떨까. 어쩌면 그곳에 가기 전 다른 골목길을 지나며 “칼 갈아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누군가 필자처럼 기술의 과거를 헤매는 이를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옛 도구가 만드는 삶의 풍경을 살펴보고 예기치 못했던 내일을 다시 만들어가려는 엉뚱한 꿈을 꾸는 젊은이들 말이다.
핸들을 꺾어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이곳은 언제쯤일까. 1975년 서울. 사람들은 짐자전차에 위태롭게 쌓아올린 짐과 흔들거리는 삶을 싣고 달린다. 짐받이가 큰 짐자전차는 기름때와 붉은 쇳녹이 절묘하게 타협한 빛깔과 탄탄한 구조에 충실하다. 사과상자, 생선상자, 과일상자, 병우유, 잡화, 동대문시장에 납품할 물건 등을 싣고 휘청휘청 굴러가는 짐자전차. 그것은 가난한 서민에게 화물차나 마찬가지다. 이들뿐이 아니다. 우편집배원과 신문 배달부는 자전거 뒤에 온갖 사연과 이야기를 싣고 골목을 누볐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자전거를 달려본다. 1817년 독일 바론 카를 폰 드라이스(Baron Karl von Drais) 대공이 인간동력 실행기계(Laufmachine)로 ‘하비 호스(Hobby Horse)’라 부르는 자전거를 발명했다. 그 후 자전거에 페달과 체인이 장착되고 19세기 말 지금과 같은 자전거 모델이 완성됐다. 불행히도 20세기 초 북미에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자전거는 꽤 오랫동안 아이들과 여자를 위한 장난감으로 치부됐다. 그럼에도 당시 자전거 판매를 위한 상업 포스터를 보면 여인에게 자전거는 교외로 달려갈 수 있는 자유와 낭만을 상징했다. 동시에 권리와 평등을 요구하며 싸우던 여인의 전투적 이미지가 자전거 홍보에 사용됐다.
무엇보다 자동차를 살 수 없었던 가난한 이들에게 자전거는 20세기 벽두부터 여전히 상인과 장인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자 도구였다. 생선 장수, 칼 가는 장인, 솜사탕 아저씨, 우유 배달부, 신문 배달부, 우편집배원도 자전거를 이용했다. 이동 정육점은 수레가 달린 자전거를 활용했다.
이탈리아 자전거 라로티노
이탈리아 갈릴레오 박물관에 전시된 자전거들을 살펴보니 소방관, 길거리 이발사, 우산 수리공, 굴뚝 청소부도 자전거를 이용했다. 동남아에서 자전거는 여전히 길거리 장인과 상인들이 생계를 이어가는 주요한 도구다. 이런 자전거를 요즘 필요와 상황에 맞게 개조한다면 수공예 장인과 소박한 상인의 거리나 골목을 다시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기술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 삶을 담고 있다.
기술의 과거를 찾아보다 이탈리아 칼갈이 자전거 도면을 발견했다. 칼갈이 자전거는 자전거 페달로 연마 휠을 돌릴 수 있다. 이동할 때 뒷바퀴에 거는 체인과 별도로 연마석에 거는 작업용 체인과 기어세트가 있다. 작업할 때는 뒷바퀴 체인을 페달에서 빼내 거치대에 걸어둔다. 원형 연마석은 자전거 중앙 프레임에 얹어 볼트로 고정하거나 아예 용접해서 부착한다. 연마휠은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교체해 사용할 수 있다. 요즘은 기본 연마석을 그대로 두고 끼워 사용할 수 있는 연마재들이 다양하다. 교체할 수 있는 원형띠 사포, 광택용 버프(일명 빠우), 다양한 원형 숯돌, 마무리용 융 버프 등등. 연마석 위에는 냉각수를 담는 통이 달려 있다. 칼을 갈다 보면 마찰열 때문에 칼이 물러지기 쉬워 종종 냉각할 필요가 있다. 연마석 둘레에는 물이 튀지 않도록 물받이 틀이 붙어 있다. 그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이 빠지는 배수관이 지면까지 내려와 있다. 연마석 앞에는 작은 모루가 고정된 작업대가 놓여 있다.
자전거 앞뒤에는 판매하는 칼과 가위를 진열할 상자나 각종 공구와 소모품을 담는 상자를 싣는다. 자전거를 안전하게 세워두려고 측면이나 뒷바퀴에는 안테나처럼 조절할 수 있는 지지대와 삼각받침을 달아놓았다. 안장은 오랜 작업에 적합하게 편리하고 푹신하게 만들어져 있다.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사업 중인 맞춤형 자전거 제작공방 윈터 바이시클스(Winter Bicycles)는 1940년대 유행하던 라로티노(L’Arrotino)라 부르는 로만 스타일의 칼갈이 자전거(그림 참조)를 참조해 현대적 칼갈이 자전거를 만들었다. 그들이 칼갈이 자전거를 주문받아 완성한 때는 먼 과거가 아닌 2011년이다. 칼을 갈아주는 남편과 장인들이 사라진 골목에서 다시 길거리 비즈니스로 부활하고 있다.
칼 가는 기술과 재료
칼을 가는 일은 보기와 달리 제법 숙련과 기술이 필요하다. 적당히 냉각시키지 않으면 쇠가 물러질 수 있다. 가열 후 지나치게 냉각시키면 날이 깨지기 쉽다. 연마도 건식과 습식으로 나뉜다. 날을 가는 앞뒤 각도가 중요하고, 쇠붙이 종류에 따라 연마하거나 광택을 내는 방법도 다르다. 거친 연마재에서 시작해 서서히 고운 연마재로 바꿔가며 날을 세우고 광택을 내야 한다. 부엌칼이나 회칼 가는 법이 다르고, 가윗날 세우는 법이 다르다. 미용실 가위가 다르고 재단 가위가 다르다. 날을 제대로 세울 줄 알면 좋은 칼, 좋은 가위를 보는 안목도 늘게 된다. 각종 연마광택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연마재를 파는 곳을 찾아보니 천일연마상사(paperchunil.com), 한국물산(www.grindingdisc.co.kr), 대원연마(dwco.co.kr) 등 몇 곳이 나온다.여러 사람의 날붙이를 갈려면 인상이 서글서글야겠고 말재주도 좋아야 한다. 정릉시장 청년들이 자전거 칼갈이사업단을 만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 청년들은 또 어떤 인상과 말재주를 가지게 될까. 언젠가 그들의 칼 가는 재주가 어느 정도인지 살피러 가야겠다. 칼을 갈러 나온 아주머니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또 어떨까. 어쩌면 그곳에 가기 전 다른 골목길을 지나며 “칼 갈아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누군가 필자처럼 기술의 과거를 헤매는 이를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옛 도구가 만드는 삶의 풍경을 살펴보고 예기치 못했던 내일을 다시 만들어가려는 엉뚱한 꿈을 꾸는 젊은이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