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 유통시장의 최강자는 바로 편의점이다. 나날이 하향세를 걷는 대형마트와 백화점, SSM(기업형 슈퍼마켓)과 달리 2015년 국내 편의점 총매출액은 약 17조5000억 원으로 전년 13조8000억 원보다 3조7000억 원가량 증가해 약 26.5% 성장했다. 특히 업계 ‘빅3’로 꼽는 GS리테일의 GS25, BGF리테일의 CU, 롯데그룹 코리아세븐의 세븐일레븐 매출 증가액은 2조8000억 원으로 전체 증가액의 75.5%에 달한다.
그 배경으로는 편의점 PB(자체 브랜드)상품의 매출 증가와 도시락이 포함된 신선식품(Fresh Food·F/F) 부문 매출 증가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편의점 ‘도시락 전쟁’은 날로 뜨거워져, 지난해 3000억 원 규모였던 편의점 도시락시장이 올해는 50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신규 출점 거리 기준 명확해야
이들 3사는 실적뿐 아니라 외형 불리기에도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2015년 12월 기준 편의점 점포 수는 CU 9409개, GS25 9285개, 세븐일레븐 8000개에 달한다. 지난 한 해만 따져봐도 CU는 1001개가 늘었고, GS25는 995개가 새로 생겨났다. 외형상 편의점업계는 그야말로 호황이다. 더욱이 1인 가구 증가로 소량 구매가 가능한 편의점이 대형마트보다 승산이 있으리라는 전망과 함께 향후 몇 년 내 ‘편의점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산업구조를 따라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그렇다면 편의점을 직접 운영하는 점주의 사정은 어떨까. 본사 매출 증대에 힘입어 점주의 주머니도 두둑해졌을까. 안타깝게도 정답은 ‘아니다’이다. 꾸준한 성장세에 함박웃음을 짓는 업체들과 달리 편의점 점주들의 시름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출혈 경쟁 때문이다. 점포 수가 많이 늘어났다는 건 그만큼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뜻이다. 현재 국내 편의점 점포당 인구수는 2011년 2300명 수준에서 지난해에는 2057명까지 줄어들어 편의점 밀도로만 보면 세계 최고다. 이 때문에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치킨집보다 많은 게 커피숍이고, 커피숍보다 많은 게 편의점”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현재 편의점은 대부분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모범거래기준안에 따라 250m 이내 신규 출점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편의점 점주들은 좀 더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산에서 A브랜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얼마 전 “거리제한을 위반했다”며 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사건의 경우 본사가 측정한 거리는 문과 문 사이로 251.5m인 데 비해, 김씨가 측정한 거리는 벽과 벽 사이로 242m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전국편의점가맹점사업자단체협의회 한 관계자는 “만약 도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새로운 편의점이 들어온다고 했을 때 본사는 현 편의점에서 횡단보도로 돌아서 가는 거리까지 규제 거리에 포함하지만, 무단횡단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주차장이 끼여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본사는 주차장은 사람이 걸어 다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인근 보도를 기준으로 거리를 재지만 주차장을 통과해서 다니는 사람도 분명 있다”고 항변했다.
최근 편의점 본사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음에도 점주들의 이익이 동반 상승하지 못하는 결정적 원인은 낮은 마진율에 있다. 대표적으로 편의점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담배를 들 수 있다. 담배는 편의점에 없어서는 안 되는 효자상품이다.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도 편의점이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담뱃값이 2배 가까이 오른 덕분이다. 정부가 국민 건강을 위해 지난해 1월부터 담뱃값을 인상했지만 결과적으로 최대 수혜자는 편의점 본사였다고 볼 수 있다. 편의점 점주들의 이윤도 높아졌으리라 생각하지만 점주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유는 담뱃값 인상 후 편의점 점주들이 챙기는 마진율이 10%에서 9%로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과거 2500원일 때는 현금으로 구매하던 소비자들이 4500원으로 인상된 후 대부분 신용카드로 결제함에 따라 평균 2.2%에 해당하는 카드수수료도 마진에서 공제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본사 측에 지급하는 로열티까지 떼고 나면 담배 한 갑 팔아 남는 마진율은 3%도 안 된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담배는 일종의 미끼상품으로, 보통 담배를 사러 들어왔다 음료수나 과자 등 다른 물건을 추가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담뱃값 인상 이후 이러한 추가 구매가 많이 줄었다고 주장한다.
많이 팔아도 재미 못 보는 담배와 커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한 편의점 주인은 “담배를 제외한 일반 과자나 음료수, 식료품의 마진율은 평균 30%에 달한다. 예전에는 손님이 1만 원을 들고 와 2500원으로 담배를 사고 남은 7500원으로 과자나 음료수를 샀지만, 이제는 4500원으로 담배를 사고 남은 5500원으로 다른 제품을 구매한다. 결국 점주는 마진율이 높은 품목의 매출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담뱃값 인상 이후 담배 판매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정부 예측과 달리 판매율은 큰 변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편의점 주인은 “처음 3개월 정도 판매가 주춤했지만 이후부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한편 담배를 진열하면서 담배업체로부터 받는 일종의 광고비가 본사와 제대로 배분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현재 담배제조사는 편의점에 담배가 한 갑씩 진열될 때마다 1만 원에 해당하는 광고비를 편의점 본사에 지급하는데, 원칙대로 따지면 이 또한 편의점 점주들과 로열티를 나눠야 한다. 하지만 이를 정확히 밝히는 업체는 거의 없다. 한 편의점 점주는 “KT&G의 경우 담배 진열 케이스가 10개고, 한 달 동안 발생하는 광고비가 100만 원이다. 본사와 점주의 로열티 배분이 35 대 65인 점을 감안하면 내가 받아야 하는 돈은 65만 원이지만 매달 본사로부터 받는 광고비는 20만 원이 채 안 된다. 담배 판매량과 상권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고 하지만 정확히 어떤 조건이 적용되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근 편의점 내 최고 히트상품인 저가 원두커피도 마진율로 따지면 제 몫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 편의점 대부분에서 500~1000원대 원두커피를 판매하고 있는데, 담배와 마찬가지로 모객상품으로 취급받는 분위기다. 하루 100잔 넘게 원두커피를 판매한다는 한 편의점 점주는 “남는 게 거의 없다. 커피기기 청소를 자주 해야 하고 ‘커피 맛이 싱겁다, 진하다’ 등 고객들 항의도 이어져 오히려 힘만 든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빵과 유제품, 도시락 등 신선식품 재고 부담도 고스란히 점주가 져야 하는 상황이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때 판매하는 포장 선물도 점주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본사에서 직접 진행하는 행사인 만큼 발주를 넣긴 하지만 상품이 다 팔리지 않을 경우 재고는 점주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편의점 본사 관계자는 “억지로 발주를 넣으라고 강요하는 일은 결코 없다”면서도 “행사 후 남은 상품에 대한 본사 측의 보전은 따로 없다”고 밝혔다.
‘위약금’이라는 무서운 족쇄
현재 편의점 가맹 유형은 총 3가지다. 먼저 점주가 점포임차비용과 내부 시설 및 인테리어, 개점 투자비를 다 부담하는 유형과 점포임차비용을 본사와 점주가 반반씩 부담하는 유형, 마지막으로 점포임차를 본사에서 부담하고 점주에게 편의점 운영을 위탁하는 유형이다. 이에 따라 로열티 배분도 35 대 65, 50 대 50, 65 대 35로 나뉜다. 점주가 직접 점포를 임차해 운영하는 경우는 그나마 로열티 배분에서 우위를 차지하지만, 2000만~3000만 원의 소자본을 투자하는 위탁형 사업의 경우 생계유지조차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전국편의점가맹점사업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한 달 수입이 100만~150만 원도 채 안 되는 점포가 많다”고 밝히면서 “경상비를 줄이고자 아르바이트를 고용하지 않고 심야근무를 직접 서는 점주가 전체 70%에 달한다”고 말했다. 심야시간 매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음에도 본사와의 가맹계약에 따라 울며 겨자 먹기로 24시간 영업하는 점포가 대다수다.
물론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 편의점 가맹법 개정에 따라 심야시간에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점포의 경우 본사와 협의해 심야영업을 중단할 수 있게 됐지만, 이럴 경우 매달 본사로부터 지원받던 30만~50만 원을 받지 못한다. 전국편의점가맹점사업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편의점 사업이 3D 업종으로 취급받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심야영업 때문이다.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편의점은 현금이 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강도 등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도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아르바이트생 관리도 만만치 않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여사장은 “편의점을 운영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태껏 6개월 이상 출근한 아르바이트생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여사장은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보니 아르바이트생에게 문제가 있어도 쉽게 ‘그만 나오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얼마 전에는 점포에 술 냄새가 진동해 전날 밤 폐쇄회로(CC)TV를 돌려봤더니 아르바이트생이 친구들을 불러 매장에 있는 술과 음식들로 파티를 벌였더라. 어이가 없었지만 그 아이가 아니면 당장 대안이 없어 문제 삼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점주가 직접 건물을 임차한 경우는 본사와 수익 배분에서 우위를 차지하지만, 해마다 오르는 건물 임차료와 인건비도 점주들의 숨통을 죈다. 급기야 아르바이트생보다 월급이 적은 점주도 속출하고 있다. 이럴 바에야 그만두는 게 낫겠다 싶지만, 이 또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로 위약금 때문이다. 물론 지난해 11월부터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편의점 표준가맹계약서에 따라 편의점 점주가 매출이 부진해 가맹점 계약을 중도 해지할 경우 운영 기간에 따라 위약금도 차등 지급하게 했지만, 실효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바뀐 조항에 따르면 편의점을 운영한 지 3년 미만인 경우는 본사에 위약금으로 가맹수수료율 6개월 치를 내야 하고, 개점 3~4년은 4개월 치, 4년 초과는 2개월 치를 내게 돼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점주 처지에서 족쇄이긴 마찬가지다. 한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3년 이상 운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당장 그만두고 싶지만 위약금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는 점주가 한둘이 아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편의점 창업과 관련해 진정한 해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창업컨설팅 전문가는 대부분 현재로서는 편의점 창업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이미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이다. 김상훈 스타트비즈니스 소장은 수익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동원해 1년 내내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본사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조정되지 않고서는 점주들의 수익 확대는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굳이 편의점을 생각한다면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아닌 자체적인 독립 편의점을 추천하고 싶다. 대형 편의점의 기계적인 서비스가 아닌 ‘인정·감성 마케팅’을 펼친다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