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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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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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개살구 해외취업…“설익은 정책 거두고 장기 전략 세워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4-11 09:5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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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제가 ‘2등 시민’이라는 점이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건강의료보험이 있고 치안도 보장됐는데, 호주의 사회보장제도는 자국민을 위한 거잖아요. ‘여기서 나를 지킬 사람은 나뿐이구나’라는, 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감정에 눌려 살았어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정진아 씨의 말이다.  

    최근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경험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을 돌파할 방법으로 해외취업을 고려하는 젊은이도 많아졌다. 2월 우리나라 15~29세(청년) 실업률은 12.5%.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다. 여기에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자발적 비정규직 청년(45만8000명, 2015년 8월 통계청 발표 경제활동 부가조사 기준)과 현재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19만8000명, 2015년 8월 통계청 발표 경제활동 부가조사 기준)까지 더하면 청년 체감 실업률은 30%가 넘는다.



    ‘청년수출’의 현주소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청년들에게 해외로 눈을 돌릴 것을 권하고 있다. 청년층의 해외 경험 확대를 위해 해외인턴제도를 운영하고, 워킹홀리데이 협약 국가도 늘려가는 추세다. 지난해 2903명이던 해외취업자 수를 2017년 1만 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문제는 해외로 나간 청년 가운데 상당수가 낮은 연봉과 부당한 처우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국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 열악한 근로조건 등에 충격을 받고 돌아오는 청년이 적잖다. 이에 대해 해외취업 알선업체 관계자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건 국내 취업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청년실업률을 낮추려고 ‘밀어내기’식 해외취업 정책을 추진하는 게 문제”라며 “각종 해외취업 설명회에 나오는 강연자들은 해외에만 나가면 돈도 벌고 영어 실력도 느는 것처럼 얘기한다. 각 대학도 취업 실적을 높이려고 더 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해외취업을 권한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정부와 학교의 장밋빛 홍보만 믿고 준비 없이 해외에 나간 청년 상당수가 현지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때로는 한국에 마음대로 돌아오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인턴생활을 했다는 한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학교 측 알선으로 현지 한인업체에 취업했는데 도착하니 업주가 바로 내 여권을 가져갔다. 전에 취업한 학생들이 종종 야반도주해 생긴 제도라더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대학 해외인턴사업에 선발돼 외국에 다녀온 한 학생은 “여권은 내가 갖고 있었지만 중도에 귀국할 경우 항공료 등 인턴 선발 시 지원받은 금액을 전부 되갚아야 하고, 학교에서도 괴롭힘을 당할 것 같아 돌아오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인턴 선발 때부터 교수님이 계속 ‘네가 정말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라며 ‘잘하고 와야 후배들에게 또 기회가 생긴다’고 했다”는 것이다.

    현지 당국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진아 씨는 “호주 한 업체에서 일할 때 조사관이 나온 적이 있다. 비좁은 공간에서 힘들게 일하는 게 빤히 보일 때라 뭔가 조치를 취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위생검사만 할 뿐 우리의 노동 여건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않더라”고 밝혔다. 이에 충격을 받아 농장으로 일자리를 옮겼지만, 거기서도 ‘법의 보호’ 밖에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때 경험으로 ‘돈 없고 힘없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법의 보호’라는 사실을 깨달은 정씨는 귀국해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당시 경험을 담아 ‘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라는 책도 펴냈다. 정씨는 “호주에서 한국 청년이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의 질이 날로 하락하고 인권침해도 잦아지는 것 같다. 우리 정부가 현지 경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청년수출에만 신경 쓰기 때문”이라며 “국내 취업이 어렵다고 단순히 청년을 ‘외국으로 보내자’는 식의 정책을 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문제가 반복되자 정부도 해외취업 지원책의 틀을 새로 짜는 분위기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청년 해외취업 촉진 대책’의 골자는 ‘구직자를 국내에서 제대로 교육시켜 좋은 일자리를 얻게 하겠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지난해 6개월 이상 해외취업 교육을 받은 청년은 평균연봉 3400만 원을 받는 일자리에 취업한 반면, 6개월 미만 단기 과정을 이수한 청년이 취업한 일자리는 평균연봉 2100만 원 수준이었다. 이에 따라 올해 새로 도입한 ‘청해진(청년해외진출) 대학’ 프로그램은 해외 취업 지망자를 최대 2년간 교육한다. 역시 해외취업 교육과정인 ‘케이무브(K-MOVE) 스쿨’도 교육기간을 과거 3~4개월에서 6~12개월로 재편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14년 국제노동기구가 발표한 세계 청년실업률은 13% 수준. 유럽연합(EU) 상당수 국가는 20%를 상회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15〜24세를 기준으로 한 실업률이 프랑스 23.9%, 이탈리아 40.0% 수준이다. 노동문제 전문가 피터 보겔이 ‘청년실업 미래보고서’에서 ‘이대로 가면 현 세대는 역사에 ‘실업세대’로 기록될 것’이라고 우려한 이유가 여기 있다.



    개발도상국 취업이 대안 될까

    이런 상황에서 해외 각국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좋은 일자리’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분위기다. 미국이 전문직 취업비자(H-1B)를 미국 내 대학에서 과학기술 분야를 전공해 석사학위 이상을 받은 이에게 먼저 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이 한 사례다. 이 정책이 도입되면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이 미국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이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대책 발표 당시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 한국인을 위한 별도의 전문직 비자쿼터를 확보하고자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효성 있는 방법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 대신 정부는 청년들에게 취업목표 지역을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옮길 것을 권하는 분위기다. 청년이 해외취업에 성공할 경우 지급하는 ‘해외취업성공장려금’을 올해부터 차등화해 선진국 취업자에게는 200만 원, 동남아·중남미·중동 등 이른바 신흥국 취업자에게는 4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여전히 취업의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해외취업 알선업체 (주)이솔의 박창규 대표는 “더 많은 청년이 해외에 나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우리 청년들이 원하는 곳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 아니냐”며 “대다수 청년이 선진국 취업을 꿈꾸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취업 분야를 연구해온 권경득 선문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학생들이 취업하기를 원하는 국가는 선진국인 반면, 일자리가 있는 국가는 개발도상국인 경우가 많다. 이 ‘미스매치’를 해결하려면 학생들이 개발도상국에서도 미래 전망을 가진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며 “국가별 특징과 취업 가능한 직종에 대한 치밀한 연구 분석이 선행돼야 우리나라의 해외취업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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