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은 단 한 번도 표를 나눠준 적이 없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뤄진 1987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호남은 이른바 전략투표를 통해 야당의 버팀목을 자처했다. 다만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열린우리당은 광주 7석, 전북 11석을 석권하고 전남에서도 7석을 확보했다. 새천년민주당은 전남에서 5석에 그쳤으며 무소속은 1석이었다. 당시 민심은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야당이 대체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몰아주기 투표가 바뀐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이번 총선도 2004년 데자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국민의당 지지층이 결집해 정당 지지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전체 8석인 광주는 국민의당 석권을 점치는 의견이 갈수록 늘고 있다. 각각 10석이 걸린 전남과 전북도 국민의당 후보들이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을 밀어내고 있다. 2004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국 차원이 아닌, 호남에 한정된 야당 교체라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사상 처음으로 정당 선택의 기회를 맞은 호남은 가(假)흥분 상태다. 국민의당에 몰표를 던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48.91%를 얻어 이회창 후보(46.58%)를 가까스로 제쳤다. 호남 몰표에 진보가 총망라하고 영남 개혁세력이 가세했다. 게다가 정몽준 후보가 선거일 전날 야권 단일화를 드라마틱하게 파기하면서 젊은 층이 대거 투표장으로 몰렸다. 진보진영의 대선 승리방정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통적인 영호남 대결 구도에서 호남 중심의 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번 총선의 유권자는 총 4200만여 명이다. 이 중 영남권 유권자는 1086만 명으로 충청권, 호남권, 강원·제주권 유권자를 모두 더해도 당해낼 수가 없다. 더욱이 충남북, 강원 지역의 보수화가 두드러지면서 최근 선거에서는 야당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보수성향의 중고령층 유권자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총선에서 50대 이상 유권자는 1821만 명으로 전체의 43.3%를 차지한다. 세대별 투표율을 고려하면 50대 이상 투표자의 비중은 더욱 높아져 50% 전후를 기록할 수도 있다. 호남 중심의 야당으로 정권 창출이 불가능한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는 왜 호남에 뿌리를 내리게 됐는가. 그 중심에는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가 있다.
김욱 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책 ‘아주 낯선 상식’에서 천정배의 ‘호남정치’를 분석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호남정치는 ‘차별과 낙후를 해결할 수 있는 호남의 이익을 위한 정치’다. 지금까지 호남은 자기희생을 전제로 민주주의 발전과 대선 승리를 추구해왔다. 이제는 대의(大義)보다 ‘호남지역’으로 회귀하자는 것이다. 정동영 전 대선후보도 국민의당에 합류하면서 “전북정치를 복원하고 호남정치를 부활하겠다”고 선언했다.
안철수 공동대표의 창당 목적은 정권교체다. 안 대표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더민주당을 비판한 것은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천정배 공동대표가 국민의당에 합류한 것은 창당 후 정당 지지율이 하락을 거듭하던 1월 말, 정동영 전 의원은 2월 중순이었다. 정권교체를 목적으로 창당된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결국 대의를 거세한 호남정치와 전격 결합한 것이다.
물론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호남의 요구는 강하게 분출돼왔다. ‘내일신문’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2015년 10월 ‘유권자 지도-세대 2차 조사’에 따르면 광주·전라의 신당 요구는 67.2%로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같은 해 4월 광주 서구을 재·보궐선거에서 신당 창당을 내세운 천정배 후보가 무소속으로 당선한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호남만으로는 정권교체가 불능한 여건에서 안철수가 천정배의 호남정치와 결합한 것은 총선을 목전에 둔 불가피성을 감안하더라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민주화가 이뤄진 1987년 이후 대통령은 모두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삶 자체가 신화다. 갖은 옥고 속에 민주화를 이끌었고 결국 대통령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고졸 출신 비주류 대통령으로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현대건설을 일구고 서울시장과 대통령에 당선돼 샐러리맨 신화를 썼다. 박근혜 대통령도 삶 자체에 신화적 요소가 차고 넘친다. 전·현직 대통령은 검증되고 안정감 있는 리더십을 가졌다는 점도 비슷하다. 대통령의 조건은 신화(스토리)와 리더십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독자세력으로 여의도에 데뷔하게 된 안철수의 신화와 리더십은 무엇인가. 아마도 백신 무료 배포와 수천억 원을 기부한 사회공익활동에 더해 20년 만에 이뤄진 제3당 탄생의 주역이라는 신화가 추가될 것이다. 그러나 야권분열과 지역정당 출현의 장본인이라는 굴레는 두고두고 스토리의 신비감을 지울 것이다.
안철수 대표에게는 이제 두 가지 중요한 과제가 남았다. 먼저 안철수의 대선 승리 방정식을 내놓고 국민에게 동의를 구하는 일이다. 김대중의 지역연합과 노무현의 호남 몰표+영남 개혁세력+진보를 창조적으로 뛰어넘는 대선 승리 방안이 있어야 한다. 또한 ‘안철수의 생각’이 아닌, 실천과 행동의 리더십을 확립하는 것이다.
3월 4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밝힌 국민의당 창당 목적은 변화와 미래, 낡은 양당체제 극복으로 요약된다. 왜 국민의당이 미래인지,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지 낱낱이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번 총선도 2004년 데자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국민의당 지지층이 결집해 정당 지지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전체 8석인 광주는 국민의당 석권을 점치는 의견이 갈수록 늘고 있다. 각각 10석이 걸린 전남과 전북도 국민의당 후보들이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을 밀어내고 있다. 2004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국 차원이 아닌, 호남에 한정된 야당 교체라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사상 처음으로 정당 선택의 기회를 맞은 호남은 가(假)흥분 상태다. 국민의당에 몰표를 던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약무호남 시무야당(若無湖南 是無野黨)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호남과 충청을 묶는 DJP(김대중-김종필)연합으로 40.3%를 득표해 당선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38.7%를 얻었다. 3위는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로 19.2%였다. 이 후보는 부산에서 30%, 경남에서 31%를 득표했다. 이는 여당 지지층의 분산으로 연결됐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은 호남-충청지역 연합과 여권 표의 분산에 힘입어 당선된 셈이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48.91%를 얻어 이회창 후보(46.58%)를 가까스로 제쳤다. 호남 몰표에 진보가 총망라하고 영남 개혁세력이 가세했다. 게다가 정몽준 후보가 선거일 전날 야권 단일화를 드라마틱하게 파기하면서 젊은 층이 대거 투표장으로 몰렸다. 진보진영의 대선 승리방정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통적인 영호남 대결 구도에서 호남 중심의 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번 총선의 유권자는 총 4200만여 명이다. 이 중 영남권 유권자는 1086만 명으로 충청권, 호남권, 강원·제주권 유권자를 모두 더해도 당해낼 수가 없다. 더욱이 충남북, 강원 지역의 보수화가 두드러지면서 최근 선거에서는 야당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보수성향의 중고령층 유권자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총선에서 50대 이상 유권자는 1821만 명으로 전체의 43.3%를 차지한다. 세대별 투표율을 고려하면 50대 이상 투표자의 비중은 더욱 높아져 50% 전후를 기록할 수도 있다. 호남 중심의 야당으로 정권 창출이 불가능한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는 왜 호남에 뿌리를 내리게 됐는가. 그 중심에는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가 있다.
김욱 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책 ‘아주 낯선 상식’에서 천정배의 ‘호남정치’를 분석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호남정치는 ‘차별과 낙후를 해결할 수 있는 호남의 이익을 위한 정치’다. 지금까지 호남은 자기희생을 전제로 민주주의 발전과 대선 승리를 추구해왔다. 이제는 대의(大義)보다 ‘호남지역’으로 회귀하자는 것이다. 정동영 전 대선후보도 국민의당에 합류하면서 “전북정치를 복원하고 호남정치를 부활하겠다”고 선언했다.
안철수 공동대표의 창당 목적은 정권교체다. 안 대표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더민주당을 비판한 것은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천정배 공동대표가 국민의당에 합류한 것은 창당 후 정당 지지율이 하락을 거듭하던 1월 말, 정동영 전 의원은 2월 중순이었다. 정권교체를 목적으로 창당된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결국 대의를 거세한 호남정치와 전격 결합한 것이다.
물론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호남의 요구는 강하게 분출돼왔다. ‘내일신문’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2015년 10월 ‘유권자 지도-세대 2차 조사’에 따르면 광주·전라의 신당 요구는 67.2%로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같은 해 4월 광주 서구을 재·보궐선거에서 신당 창당을 내세운 천정배 후보가 무소속으로 당선한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호남만으로는 정권교체가 불능한 여건에서 안철수가 천정배의 호남정치와 결합한 것은 총선을 목전에 둔 불가피성을 감안하더라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두 가지 중요한 과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 남긴 교훈이다. 400여 년이 흘러 ‘약무호남 시무야당(若無湖南 是無野黨)’이 됐다. ‘호남이 없다면 야당도 없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호남 구애에 나서며 오래된 경구를 앞다퉈 베껴 썼다. 그러나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호남을 석권한다 해도 대선 승리의 비중은 세월 무게만큼 반비례로 줄어들고 있다. 나아가 호남 결집은 역으로 영남 결집을 불러올 수 있다. 코너에 몰린 친노(친노무현)가 영남 개혁세력을 앞세우고, 서울의 박원순과 충청의 안희정을 묶어 호남 고립에 나설 수도 있다. 내부 경쟁으로 진보진영의 정치적 자산이 고갈되는 사이 영남권 중심의 보수는 전열을 가다듬고 차기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할 것이다.
민주화가 이뤄진 1987년 이후 대통령은 모두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삶 자체가 신화다. 갖은 옥고 속에 민주화를 이끌었고 결국 대통령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고졸 출신 비주류 대통령으로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현대건설을 일구고 서울시장과 대통령에 당선돼 샐러리맨 신화를 썼다. 박근혜 대통령도 삶 자체에 신화적 요소가 차고 넘친다. 전·현직 대통령은 검증되고 안정감 있는 리더십을 가졌다는 점도 비슷하다. 대통령의 조건은 신화(스토리)와 리더십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독자세력으로 여의도에 데뷔하게 된 안철수의 신화와 리더십은 무엇인가. 아마도 백신 무료 배포와 수천억 원을 기부한 사회공익활동에 더해 20년 만에 이뤄진 제3당 탄생의 주역이라는 신화가 추가될 것이다. 그러나 야권분열과 지역정당 출현의 장본인이라는 굴레는 두고두고 스토리의 신비감을 지울 것이다.
안철수 대표에게는 이제 두 가지 중요한 과제가 남았다. 먼저 안철수의 대선 승리 방정식을 내놓고 국민에게 동의를 구하는 일이다. 김대중의 지역연합과 노무현의 호남 몰표+영남 개혁세력+진보를 창조적으로 뛰어넘는 대선 승리 방안이 있어야 한다. 또한 ‘안철수의 생각’이 아닌, 실천과 행동의 리더십을 확립하는 것이다.
3월 4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밝힌 국민의당 창당 목적은 변화와 미래, 낡은 양당체제 극복으로 요약된다. 왜 국민의당이 미래인지,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지 낱낱이 보여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