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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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서울여행 | 마지막 회

삶과 기억의 복원…응답하라! ‘참한 도시’

  •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jerome363@uos.ac.kr

    입력2016-01-12 16: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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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방학을 맞아 가장 먼저 한 일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다시 보기였다. 일찍 퇴근한 날 식구들이 ‘본방’을 볼 때 잠깐씩 스치듯 본 적은 있지만 제대로 집중해서 본 게 한 회도 없어 처음부터 다시 볼 작정을 했다. 한 달 동안 프로그램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정액권을 아예 끊고 새해 첫날 1회를 시작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봤다. 마음 같아선 날밤을 꼬박 새워 지금까지 방영된 분량을 다 보고 싶었지만 한 회 분량이 1시간 40분이나 돼 포기했다.
    ‘응답하라 1988’은 참 잘 만든 프로그램이다. 먼저 재미있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슬프고 애잔하다. 학원과 스마트폰에 빠져 각각 따로 사는 요즘 아이들과 달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드라마 속 아이들 모습을 보며 “그래, 그래. 아이들은 저렇게 친구들과 어울려야지” 고개를 끄덕인다. 공부 잘하는 아이뿐 아니라 특공대(특별히 공부를 못하는 대가리)라는 별명을 가진 주인공 ‘덕선’이도 기죽지 않고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사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그래, 그래” 고개를 끄덕인다. 공부 대신 바둑이든축구든 뭔가에 쏘옥 빠져 ‘덕후’(마니아)로 사는 아이까지 누구도 따돌리지 않고 섞여 살아간다. 공부는 포기했다는 또 다른 주인공 ‘도롱뇽’은 정작 모르는 게 없이 온갖 것에 해박하고, 삐친 아빠와 엄마 마음을 풀어줄 방법을 몰라 쩔쩔매는 친구에게 지혜를 건네준다. 카운슬러가 따로 없다.
    드라마에 나오는 서울 쌍문동 봉황당 골목길 풍경도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택이 아빠’의 비질 소리가 새벽을 연다. 출근과 등교로 정신없는 아침이 지나고 나면 엄마 삼총사가 골목 평상 위에 모여 앉는다. 찬거리를 다듬고 남편 흉을 보고 때로는 낮술도 나누면서 친자매처럼 살갑게 살아간다. 아빠들도 어울려 살아간다. 복권에 당첨돼 부자가 된 집이나 빚보증 잘못 서 반지하 셋방살이를 하는 집이나 서로 주고받으며 섞여 산다. 누구에게든 뭔 일이 생기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다 제 일처럼 챙겨준다. 넉넉히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고, 받은 집은 빈 그릇에 뭔가를 또 담아 돌려준다. 지금은 보기 드물어졌지만 그렇다고 아주 오래전 일도 아닌, 얼마 전 우리네 삶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것 같아 드라마를 보는 내내 몸이 가만히 있지 않고 반응한다. 눈꺼풀이 떨리고 겨드랑이가 가려워진다. 목이 뻐근해지고 어깨가 들썩인다. 주먹이 쥐어진다.



    서울을 이루는 알맹이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으로 응답해야 할까를 생각한다. 30년도 안 된 지난 시간들을 거쳐 지금 여기에 와 있는 우리는 ‘쌍팔년’ 이야기와 풍경을 보면서 무어라 응답해야 할까. 이대로 좋은가. 이렇게 계속 가도 좋겠는가. 이렇게 다시 10년, 20년, 30년이 지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지금을 기억할까. 모처럼 만난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는 각자 또 함께 응답해야 한다. 나에게, 내 가족에게, 이웃에게. 또 우리 마을과 도시에게.  
    ‘참 좋은 도시는 참 좋은 시민들만 가질 수 있다’고 믿는 나에게, ‘참한 마을들이 참한 도시를 만든다’고 믿는 나에게 ‘응답하라 1988’은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교재와도 같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본다.  


    쌍문동 골목은 이제 더는 남아 있지 않을까. ‘응답하라 1988’은 먼 옛날 일이고 오직 드라마 속 이야기뿐일까. 그렇지 않다. 현재진행형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서울 강북과 강남에는 아파트로 바뀌지 않은 옛 동네가 그래도 많이 남아 있다. 골목동네뿐 아니라 아파트단지에서도 주민이 서로 친밀하게 함께 살아가려는 ‘마을공동체’ 운동이 서울 및 여러 도시에서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3년간 에너지절약운동을 해 아낀 돈 4억 원으로 아파트 경비원의 임금을 15% 인상해준 서울 성북구 석관동 두산위브아파트에서, 또 경비원 수를 줄이지 말자며 엘리베이터에 소자보를 붙인 초등학생의 목소리가 물결처럼 번져가 경비원 감축을 막은 경기 고양시 호수마을 4단지 아파트에서 여전히 진행형인 ‘응답하라 1988’을 목격한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가한 마을이 4만 개이고, 참여주민 수는 12만 명에 이른다. 드라마 속 덕선엄마, 선우엄마, 정봉엄마도 그 안에 계실 것이다.     
    문제는 재개발, 재건축이다. 골목과 집을 통째로 지워가는 재개발과 재건축이 계속된다면 ‘응답하라 1988’은 지속되기 힘들 터이다. 제발 골목을 없애지 마라. 골목에 포도송이처럼 달린 집들이 곧 마을이다.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차곡차곡 쌓인 곳, 그것이 마을이고 그것이 서울을 이루는 알맹이다.
    ‘응답하라 1988’ 4화였나. 덕선이도 외우는 영어 숙어 ‘can’t help ~ing’에 나오던 마지막 멘트는 도시를 공부하는 내게 선생님 같았다. 서울은 빌딩이 아니다. 서울은 아파트가 아니다. 서울은 고가도로나 고속도로가 아니다. 골목길이 서울이다. 사람들이 서울이다. 마을이 서울이다.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사람들, 나를 지켜주는 사람들, 그들이 내 서울이다.   
    “오래된 것만큼 지겹고 초라한 것도 없다. 하지만 지겨움과 초라함의 다른 말은 익숙함과 편안함일 수도 있다. 오랜 시간이 만들어준 익숙한 내 것과 편안한 내 사람들만이 진심으로 나를 알아주고 안아주고 토닥여줄 수 있다. 지겹고 초라해 때로는 꼴도 보기 싫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내 사람들뿐이다. 익숙하고 편안한 오랜 내 사람들.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We can’t help loving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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