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1월 1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의 작심 발언으로 금융권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2월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 고금리로 국민 고통이 크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틀 후 “금융·통신 분야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정부 특허에 의해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고 거듭 지적하면서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격차) 축소와 취약차주 보호를 강조했다. 금융감독원(금감원)과 금융위 역시 은행들에 연이어 경고를 보내면서 업계에서는 정부 당국이 은행업 문턱을 낮추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성과급 15억 받은 임원도 있어
5대 시중은행 중 지난해 임원 성과급이 가장 높았던 곳은 KB국민은행이다. KB국민은행의 임원 평균 성과급은 2억1600만 원이며, 가장 많은 성과급을 받은 임원은 15억7800만 원을 수령했다. 해당 임원이 지난해 퇴임하면서 그간 이월된 장단기 성과급을 동시에 지급받으면서 10억 원 넘는 성과급을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 인당 평균 성과급이 가장 높은 곳은 NH농협은행(3900만 원)이었고, 우리은행의 한 직원이 1억7200만 원 성과급을 받으면서 5대 시중은행 직원 중 가장 많은 성과급을 수령했다.
금융권에서는 올해 시중은행 성과급이 역대 최고치를 찍을 것으로 전망한다. 통상적으로 이듬해 성과 평가 후 직전년도 성과급이 확정되는데, 지난해 5대 금융그룹의 당기순이익은 17조5688억 원으로 최고 실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역대급 유동성이 풀렸고, 이후 각국 중앙은행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정책으로 시중금리가 급등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NH농협금융지주의 경우 유가증권 운용이익 감소로 5대 금융지주 중 유일하게 역성장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NH농협은행은 순이익이 증가했다.
“성과보수 체계 점검하겠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성과보수 체계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취지와 원칙에 부합해 운영되는지를 점검하겠다”고 경고했다. 그간 금감원과 금융위 등 금융당국은 금융권에 경고 목소리를 낼 때마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수용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 금감원장은 1월 10일 “금리상승기 은행이 과도하게 대출금리를 올리지 않도록 점검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도 말했다. 전국은행연합회는 다음 날 예대마진 확대에 대해 “예금과 대출의 만기 구조 차이로 빚어진 단기적 현상”이라는 입장을 냈고 당시 6%대에 달했던 대출금리가 점차 떨어졌다.국내 은행이 이자수익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비판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각 금융그룹이 발표한 지난해 실적 자료에 따르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4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은 모두 영업이익 중 90% 이상이 이자이익으로 이뤄진 반면, 대표적인 글로벌 은행인 미국 시티은행의 경우 지난해 총 영업이익에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65% 수준이었다. 국내 은행들의 수익 다변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중은행 그간 사회적책임 져왔는데…”
금융당국은 5대 시중은행이 사실상 과점 시장을 형성하다 보니 예대마진을 높게 잡을 수 있었다고 본다. 경쟁 업체가 적어 예대마진을 높게 잡을 수 있었고 이에 수익 다변화 노력도 게을리했다는 시각이다. 1998년 외환위기 전까지 32개였던 은행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거치면서 합병이 이어졌고, 결국 5개 시중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로 귀결됐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의 역할을 확대하거나 금융업 문턱을 낮추는 방식으로 은행 간 경쟁을 촉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시중은행들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당시 외화 자본 유출 이슈가 있었을 때 시중은행은 각종 안정기금 출연에 참여하는 등 사회적책임을 져왔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성과급이 높다고 개인에 대한 보상 부분을 건드리면 추후에 다른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성과 부분에까지 정부 입김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칫 관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금융지주와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 모두 관료 출신 인사인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과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각각 내정, 취임하면서 관치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은행권은 윤 대통령의 문책이 나온 당일 취약차주 긴급 생계비 지원, 서민금융상품 공급 확대 등 자발적으로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특히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마저 이른바 ‘횡재세’ 도입을 준비하면서 시중은행은 사면초가에 처했다. 민주당은 은행의 초과이익분에 대해 별도의 법인세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그간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민주당 이재명 대표 역시 2월 15일 “(시중은행의 공공성) 문제에 대해 민주당과 정부의 인식, 대통령의 인식이 동일하기 때문에 대응도 쉽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협력 의사를 내비쳤다.
전문가들은 시중은행의 독과점 구조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시중은행이 IMF 사태 이후 형성된 독과점 체제로 ‘리스크 대비 수익이 높다’는 측면을 지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이미 벌어들인 수익을 배분하는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이는 독과점 구조와 별개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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