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약 파이프라인을 총망라한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인 ‘K-스페이스 플랫폼’(왼쪽)과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탄생한 첫 국산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제공]
화이자 코로나19 백신 대표 성공 사례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이 지난해 12월 5일 ‘제약바이오산업의 성공 지름길 오픈 이노베이션’을 주제로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제공]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은 외부에서 특정 기술과 정보를 도입하는 동시에 기업 내부 자원이나 기술을 외부와 공유하며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가는 전략이다. 통상적으로 신약은 개발후보물질 선정(5년), 전 임상시험(1.5년), 임상시험(6년), 허가 검토 및 승인(2년) 등 기나긴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하지만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바이오벤처 등 외부와 협력하면 신약 개발 성공률을 높이고 개발 기간도 대폭 줄일 수 있다. 대형 제약사는 원천기술과 후보물질을 발굴해 신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바이오벤처는 자금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어서다. 실제로 국내 많은 제약바이오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생존 전략으로 삼아 신약 개발은 물론, 신산업 확장이나 글로벌 시장 진출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미국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대표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성공 사례다. 일반적으로 백신은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화이자는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기술 제휴, 백신 개발 전 선구매를 약속한 미국 정부의 결단 등에 힘입어 9개월 만에 백신 개발을 이뤄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의 초기 지원과 선구매, 미국 워싱턴대의 후보물질 발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과 감염병혁신연합(CEPI)의 자금 지원, 국제백신연구소(IVI)의 설계 및 개발·분석 지원 등을 통해 단기간 내 개발에 성공하며 한국의 백신주권 확보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공지능 기술로 신약 개발 시간 단축
오픈 이노베이션은 전략적 제휴, 라이센싱 이전, 아웃소싱, 조인트벤처 등 형태로 이뤄지며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에서도 다양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유한양행은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으로 가장 주목받는 성과를 거둔 기업이다. 2015년 국내 바이오벤처 오스코텍의 미국 자회사 제노스코로부터 폐암 치료 신약 후보물질을 도입해 발전시켜 2018년 글로벌 제약기업 얀센과 1조4000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또 2021년에는 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로 31호 국산 신약 허가를 받았으며 올해는 얀센과 함께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추진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2015년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도입해 이후 8년 동안 지아이이노베이션, 에이프릴바이오, 에스엘백시젠, 지엔티파마 등 50여 개사에 수천억 원을 투자한 결과 10개에 못 미치던 파이프라인을 현재 30여 개로 확대했다. 또 올해 들어 각각 투자 관리, 사업 개발을 담당하는 사업화전략팀과 글로벌AM팀을 신설해 좀 더 체계적이고 활발한 오픈 이노베이션 추진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한미약품은 지난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개발한 ‘롤론티스’(미국 제품명 롤베돈)를 미국 스펙트럼에 기술수출하고, 국내 항암 분야 신약으로는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국내 제약사 녹십자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전 과정 사업협력에 나섰고, 미국 바이오기업 페인스와는 이중-다중항체 공동개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종근당은 지난해 미국 바이오벤처 카라테라퓨틱스의 요독성 소양증 치료제 ‘CR-845’가 미국 FDA 승인을 받으면서 오픈 이노베이션 투자에 결실을 봤다. 종근당은 2012년 카라테라퓨틱스와 CR-845의 국내 독점 개발 및 판매 계약을 체결하고 의약품 개발에 참여해왔다.
대웅제약은 국내외 대학, 정부출연기관, 병원, 벤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에 나서고 있다. 2020년에는 영국 아박타와 조인트벤처 아피셀테라퓨틱스를 합작 설립해 차세대 세포치료제를 개발 중이며, 2021년에는 자회사 한올바이오파마와 함께 미국 뉴론사의 시리즈A투자에 참여했다. 또한 엑소스템텍, 핀테라퓨틱스, KB바이오메드, 유씨아이테라퓨틱스 등 각 분야 전문 벤처기업과 협약을 체결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확대하고 있다.
또 JW중외제약은 에스엔이바이오, 디어젠,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 온코크로스 등과 신약 개발 협력을 진행 중이며, 삼진제약은 지난해 인세리브로, 온코빅스, 아리바이오, 심플렉스 등과 제휴를 맺었다. SK케미칼은 지난해 태스크포스(TF)로 운영하던 오픈 R&D TF를 정규 조직인 오픈이노베이션팀으로 확대 개편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국내외 제약바이오기업 간 결합뿐 아니라, 제약바이오와 인공지능(AI) 및 디지털 등 이종기술의 융합 형태로도 진행된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신약 개발에 AI 기술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19년 홍콩 바이오기업 인실리코메디슨과 캐나다 토론토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이 AI 플랫폼으로 섬유증 치료제 후보물질을 46일 만에 도출해냈다고 국제학술지에 발표하면서다. 일반적으로는 치료 후보물질을 찾는 데만 4~5년 이상 걸리지만 AI 기술을 활용하면 짧은 기간 내 후보물질을 찾아낼 수 있다. 신약 개발 패러다임이 바뀌는 셈이다.
국내 기업도 적극적이다. 한미약품은 AI 기반의 신약 개발 전문기업 스탠다임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신약 개발 초기 연구 단계에서 AI를 활용해 항암,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등 다양한 혁신신약 후보물질을 찾아 상용화할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대웅제약은 중국 히트젠과 포괄적 협력 계약을 맺고 히트젠의 ‘DNA 암호화 라이브러리 스크리닝 기술 플랫폼’을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기로 했다. 또 에이조스바이오와는 AI를 통한 합성치사 항암 신약 연구개발 계획을 체결했다. JW중외제약, 삼진제약 등도 국내외 AI 신약 개발 기업들과 공동연구 협약을 맺었다.
국내 신약 파이프라인 총망라 ‘K-스페이스 플랫폼’
오픈 이노베이션의 성공을 위한 생태계는 이미 조성돼 있다. 2020년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59개 제약바이오기업이 공동출연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최초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인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을 출범한 것이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계의 개별적인 자원과 역량을 결집한 공동투자 및 공동개발 오픈 이노베이션 거점으로,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감염병 공동 대응을 위한 시설투자, 혁신 신약 중개연구(기초과학의 연구 결과를 임상과학에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연계해주는 연구) 개발,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 백신 원부자재 생산 고도화 기술개발 등을 진행하고 있다.특히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보유한 신약 개발 기술의 사업화를 지원하는 ‘K-스페이스 플랫폼’을 지난해 12월 공개하며 국내 대표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227개사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총망라한 K-스페이스는 1200여 개 질환·유형·단계별 정보를 제공한다. 협회는 지속적인 파이프라인 등재와 온라인 파트너링 매칭, 우수 파이프라인 선정 경연대회 등을 통해 신약 개발 협력을 가속화한다는 계획이다. 협회 관계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질병이 너무 많아 글로벌 빅파마라 해도 그것을 다 커버할 수는 없다”며 “현 상황에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신약 개발이라는 종착지까지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강조했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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