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미국 뉴욕에 문 연 루시드 모터스의 쇼룸 루시드 스튜디오. [사진 제공 · 루시드 모터스, 강지남]
세계 1위 전기차 메이커이자 코로나19 사태 이후 ‘저 세상 주식’으로 등극한 테슬라는 이제 GM(제너럴 모터스), 포드와 함께 미국의 ‘새로운 빅3’ 자동차 제조사로 불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이 16% 감소했지만 전기차 판매는 40% 증가했다. 테슬라가 불 지핀 전기차로 전환은 이제 대세다. 세계 상위 20개 자동차 제조사 중 18개사가 전기차 생산을 빠르게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IEA는 2030년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12%가 전기차일 것으로 전망한다.
‘제2 테슬라’에 도전하는 전기차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는 것도 테슬라 효과 중 하나다. 최근 미국에서는 전기차 스타트업이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 합병으로 주식시장에 ‘우회 상장’해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이 새로운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다. 창업자가 사기 혐의로 기소된 수소전기차 제조사 니콜라(Nikola)가 대표적 예다.
루시드도 처칠캐피털스팩과 합병을 통해 7월 26일 나스닥에 상장했다. 2월 합병을 발표할 당시 260억 달러(약 30조 원)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상장 첫날 종가는 26.83달러로, 하루 전 주가 대비 11% 상승했다.
포스트 럭셔리 전략
루시드 모터스의 첫 양산 모델 세단 ‘루시드 에어’. [사진 제공 · 루시드 모터스]
루시드에는 테슬라 출신이 다수 포진해 있다. 롤린슨을 포함해 주요 임원 20명 중 8명이 테슬라에서 건너왔다. 이 밖에도 부사장으로 포드 출신 마이클 스머츠(재무 담당), 아우디 출신 데렉 젠킨스(디자인 담당), 애플 출신 마이클 벨(디지털 담당) 등 일등기업 출신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현대차 출신 이진우(영어명 유진 리) 박사도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담당 시니어 디렉터로 루시드의 자율주행 기술을 총괄하고 있다.
아직 단 한 대의 차도 도로에 올려놓지 못한 루시드지만, 포지셔닝 전략은 야심만만하게도 ‘포스트 럭셔리’다. 아우디, 벤츠, BMW 등 기존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와 같은 선에 자사를 배치하고, 요즘 MZ세대가 선호하는 경험과 지속가능성을 녹여낸 새로운 럭셔리 전기차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다. 테슬라에 대해서는 “혁신적이지만 럭셔리하진 않다”고 못 박는다.
첫 양산 모델은 세단 ‘루시드 에어(Lucid Air)’다. 한 번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517마일(약 832㎞)이고 최고 속력은 168mph(약 270㎞/h)로 테슬라의 모델S(각각 412마일, 155mph)보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게 루시드 측 주장이다. 킬로와트(kW)당 4.5마일 이상 배터리 효율성을 갖췄으며(모델S는 4마일 이상), 직류(DC) 고속 충전 네트워크에서 분당 최대 20마일 속도로 충전할 수 있는, 가장 빠르게 충전되는 전기차라고도 한다. 가격은 최저 사양 모델이 7만7400달러(약 8900만 원), 최고 사양 모델이 13만9000달러(1억6000만 원)에서 시작한다.
루시드는 지난해 말 애리조나주 카사그랜드에서 1단계 공장 준공을 마쳤다. 현재 최대 3만 대인 연간 생산량을 4단계 준공을 거쳐 2028년까지 40만 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루시드는 미국과 유럽에서 1만 건 이상 사전 예약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올해 초부터 고객에게 차량을 인도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정이 다소 늦춰졌다. 루시드 스튜디오에서 만난 직원은 “연말에 고급 사양 차량을 먼저 출고할 계획”이라며 “조만간 예약 고객 우선으로 시운전 이벤트도 열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애리조나주 카사그랜드에 자리한 루시드 모터스 제조 공장. [사진 제공 · 루시드 모터스]
제휴 네트워크 충전 통할까
니콜라와 달리 루시드는 투자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롱런할 수 있을까. 경쟁 구도가 만만치 않고, 충전 편의성 또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우선 ‘테슬라 지망생’은 루시드 외에도 많다. 아마존이 7억 달러(약 8000억 원)를 투자하고 10만 대를 구매하기로 한 리비안(Rivian)은 픽업트럭과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지난해 10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피스커(Fisker)는 프리미엄 중형 SUV 개발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논란의 니콜라도 수소전기 세미트럭 사업에 매진 중이다. 여기에 더해 BMW, 메르세데스벤츠, 포드, 볼보, 현대자동차 등 기존 강자도 전기차 모델 다양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을 감안해도 6만 달러(약 6800만 원)가 훌쩍 넘지만 소비자 평가가 전무한 신생 전기차에 과연 얼마나 많은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 출시 이후 기술 및 서비스에서 강점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슈퍼차저’라는 고속 충전 네트워크에 대한 막대한 투자는 ‘테슬라 돌풍’의 주요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루시드는 직접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대신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Electrify America) 같은 전기차 충전 전문회사와 제휴하기로 했다. “충전 네트워크 대신 전기차 자체의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후발 주자가 갖는 장점”이라는 게 루시드 측 주장이다.
루시드는 이번 기업공개로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공장 확장 및 차세대 모델 개발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3년까지 설비 투자에 3억5000만 달러(약 4000억 원)를 집행하고, 2023년 하반기 두 번째 모델로 프리미엄급 SUV ‘루시드 그래비티(Lucid Gravity)’를 출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