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였다. 800㎞ 순례길에서 일기를 써 매일 한 편씩 인터넷 여행 카페에 올릴 계획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버킷리스트를 바꿔야 했다. 그 대안으로 생각한 일이 매일 20㎞를 걷듯, 매일 경제 일기 한 편을 써 올리는 것이었다. 2020년 9월 30일 퇴사한 그는 다음 날부터 매일 한 편씩 51일간 부동산 카페에 글을 올렸다. 베스트셀러 ‘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는 그렇게 탄생했다.
3월 말 출간된 책은 한 달여 만에 4만 권 넘게 판매됐다. ‘50억 부자 아빠의 현실 경제 수업’이라는 부제가 달렸지만 실상은 재테크 서적이 아니라 돈과 경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에 가깝다. 책을 쓴 이는 25년간 유통업계에 종사하다 롯데마트 가정간편식 부문장(상무)을 끝으로 인생 1막을 마무리한 정선용(53 · 사진) 씨다.
[지호영 기자]
형의 죽음에도 작동했을 돈과 경제라는 기제
그는 회사에 다니던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특진도 두 번이나 해 이른 나이에 상무 자리에 올랐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수천 번 던진 질문이 있었다. “25년 동안 쉬지 않고 일했는데, 왜 아직도 이렇게 살기가 힘든가.” 그저 무능에 의한 업보라고 생각했던 그는 코로나19 사태 한복판에서 소속을 잃고서야 경제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무지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깨달았다. 정작 50억 원 자산을 일군 이는 경영학 석사를 거쳐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가 아닌, 그의 아내였다. 그가 벌어들인 근로소득 6억 원을 종잣돈 삼아 재테크를 한 아내 덕분에 그의 가족은 3주택자가 될 수 있었고, 돈에 쪼들리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아내의 경제감각이 뛰어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눈앞이 깜깜하다”고 고백한다.돈과 삶은 어떻게 연결되나.
“그 이야기를 조금 깊게 하자면 어릴 때 겪은 일을 먼저 말해야 한다. 1981년 서울대 치의예과에 다니던 형이 한라산 등반 도중 사망했다. 가난한 집안의 5남 1녀 중 장남이던 형은 원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치대에 진학했는데, 학과에 적응하지 못하다 보니 산악회에 들어가 자주 산을 찾았고 조난사고를 당했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어린 나이에도 사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고등학교도 그만뒀다. 그러다 군대를 다녀와 뒤늦게 대학(경희대 식품생명공학과)을 마친 뒤 직장에 들어가 열심히 일했는데, 그만둬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면서 ‘왜 또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 과정들이 우리가 외면해온 현실, 돈과 경제에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형이 그 사고까지 가는 과정에도 돈과 경제라는 기제가 작동했다고 생각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글을 쓰게 됐나.
“준비된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내가 진짜 문제라고 봤던 돈과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루 한 편씩 쓰기로 작정하고 생활패턴을 바꿨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9시까지 4시간 동안 그날 올릴 글을 집중적으로 쓰고 나머지 시간은 그냥 산책하면서 놀다시피 했다. 그 대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키워드로 써놓았다가 다음 날 글로 쓰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경제지식과 재테크는 어떻게 다른가.
“경제지식은 학문적인 내용이 너무 많고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다. 내 머릿속에는 마케팅 이론, 경제 이론 등이 들어 있지만 이것이 현실의 부로 연결이 안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열심히 일해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지, 근로소득을 어떻게 모아 불릴 것인지에 관한 지식은 전혀 없었다. 반면 본능적으로 그런 지식을 갖고 있던 아내는 지출을 아끼고 저축해 종잣돈을 만들었고 그 돈으로 집과 땅을 샀다. 생각해보면 인류 역사상 돈은 휴지 조각이 된 적이 많지만 땅과 집은 그 가치가 계속 상승해왔다. 요즘 사회 분위기가 부동산 투자를 투기라며 폄하하지만 농경문화 시대는 물론, 산업혁명 이후에도 인류에게 땅과 집은 모든 것의 근간이었다. 돈을 아껴야 하고 종잣돈을 모아야 하며 건물주가 돼야 한다.”
돈 공부는 왜 해야 하나.
“돈은 삶의 토대다. 부정하고 외면할수록 점점 가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금융자본주의 시대다. 돈의 토대 위에 우리 삶이 놓여 있다. 돈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해야 한다.”
가장 하고 싶은 말 “돈 공부를 해야 한다”
아들에게 “직원으로 시작해라, 그러나 직원으로 살지 마라”고 조언한다.“사회생활을 하려면 배워야 할 것이 굉장히 많다. 그런 점에서 직장을 ‘돈 받고 다니는 학교’라고 표현하고 싶다. 회사에서 기본적인 경제지식을 습득해 몸과 마음을 최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근로자의 삶을 살면 ‘우물 안 전문가’가 되고 그 안에 매몰된다. 예전처럼 평균 수명이 60대라면 50 넘어 퇴사해 남은 삶을 마무리하면 되지만, 지금은 평균 수명이 늘어나 고정소득 없이 50여 년을 더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40대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일을 시작해 사업소득을 거둬야 하고, 65세 이후에는 돈이 돈을 벌어주는 자본소득 시대로 들어가야 한다. 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3주택자가 되기까지 이사도 많이 했을 것 같다.
“지금까지 27번 이사했다. 결혼 전 부모를 따라 12번, 1997년 결혼 후 3000만 원짜리 반지하 전셋집을 시작으로 15번 했다. 우리가 살았던 집은 모두 구축이었다. 구축은 일단 싸고, 나중에 재건축되면 확실한 자산 증식 수단이 된다. 사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신축 아파트에 살아보지 못해 로망이 있지만, 미래의 행복을 위해 모든 걸 유보하는 게 맞다고 본다.”
책에는 두 아들이 부의 사다리를 오르는 데 필요한 조언들이 담겨 있다. 그는 ‘당신의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당신의 지갑에 언제나 한두 개의 동전이 남아 있기를, 당신의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어머니 대지의 신에게 기도합니다’라는 인디언 켈트족의 기도문을 가장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꼽았다. 모든 글을 ‘사랑하는 아들아’로 마무리하는 그다운 선택이었다.
※ 매거진동아 유튜브 채널에서 정선용 씨의 돈과 현실의 상관관계, 재테크 방법에 관한 인터뷰 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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