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네소타주의 최대도시 미니애폴리스, 아우크스부르크 대학에서 대학생 유권자들이 사전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GettyImage]
이번 대선은 주요 언론에서 사실상 ‘코로나19 대선’이라고 불려왔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할 것이란 예상이 나왔지만, 투표함의 뚜껑을 열어본 결과 두 후보는 막상막하의 박빙승부를 벌였다. 미국은 코로나19사태로 900만여 명의 확진자와 23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국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국 대선에선 승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되지 않았다.
코로나보다는 일자리 문제에 민감
바이든 후보가 델라웨어 윌밍턴에서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Biden Camp]
트럼프 대통령이 선전한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ABC, CBS, NBC, CNN 등 4개 방송사가 여론조사 기관인 에디슨 리서치에 의뢰해 1만5590명을 대상으로 공동으로 조사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35%는 투표할 때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경제’를 꼽았다. 4년 전보다 상황이 나아졌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4명꼴로, 나빠졌다는 응답자(10명 중 2명꼴)보다 많았다. 또 응답자 중 20%는 인종차별을, 17%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투표할 때 가장 많이 고려했다고 각각 답변했다. 보건정책과 범죄·폭력을 꼽은 유권자는 각각 11%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출구조사가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의 투표 대결이 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이 수개월간 코로나19와 경기침체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코로나19 급증세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바이든 후보에게 투표했고 경제 재개를 원하는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고 분석했다. 지지하는 후보에 따라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평가도 극명하게 갈렸다. 바이든 후보 지지자 중 80%는 정부 대응이 형편없었다고 답변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중 10%만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현장 유세에서 강조한 선거 구호는 ‘경제를 살리자’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6대 경합주들 중에서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플로리다 주(29명)와 미국 50개주 가운데 선거인단이 두 번째로 많은 텍사스 주(38명)에서 이 구호가 먹혀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텍사스는 그동안 백인이 많이 거부하는 대표적인 공화당 텃밭이었지만 최근 들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히스패닉이 대거 유입되면서 인종 구성이 바뀌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려면 자신을 찍으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은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호소에 호응했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6대 경합주들과 흑인층에 선거운동을 집중하는 바람에 텍사스주 공략에 실패했다.
플로리다 주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51.2%를 득표하며 47.8%에 그친 바이든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플로리다주에서 승리를 거둔 배경에는 히스패닉계 중에서 쿠바계의 적극적인 지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4개 방송사 출구조사를 보면 히스패닉계 유권자의 40%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2016년 대선 당시 35%보다 올라간 것이었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50%의 지지를 받았지만 4년 전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획득한 62%에 비하면 크게 하락했다. 쿠바계 유권자들은 대부분 카스트로 공산 독재 정권의 탄압 때문에 미국으로 도망쳐온 사람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이들의 표심을 확보하기 위해 쿠바에 대한 강경한 제재조치를 내려왔다. NBC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직후부터 플로리다 주의 쿠바계에게 많은 공을 들였다”며 “이번 선거에서 그 보상을 받은 셈”이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후보는 코로나19 방역 실패에 불만을 가진 노령층을 집중 공략해 클린턴 후보가 얻은 40%보다 10%포인트나 높은 득표율을 확보했지만 결국 플로리다 주에서 승리하지는 못했다. 만약 바이든 후보가 러닝메이트로 흑인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 대신 히스패닉계 인물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했다면 플로리다와 텍사스 주의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2030 청년층이 막판 뒤집기 가로 막아
트럼프냐 바이든이냐. [NBC News 일러스트레이션]
미국 온라인매체 복스(Vox)가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 함께 전국 18~30세 10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중 76%가 이번 대선에서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는 4년 전엔 같은 응답 비율(49%)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젊은 층 중 상당수는 그동안 투표 등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非)민주적인 행태와 일방주의 등에 대해 불만을 표출해왔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대거 투표장에 나갔다. 이들의 후보 선호도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바이든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변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의견은 23%에 그쳤다.
대도시 유권자들 중 상당수도 바이든 후보를 지지했다. 주요 경합주들 중에서 디트로이트, 밀워키 등 대도시에 사는 유권자들은 대부분 바이든 후보에 몰표를 던졌다. 농촌이나 교외 지역에 사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대도시 유권자들의 표심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합주들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주요 경합주들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밀렸던 바이든 후보의 득표율은 대도시 유권자들의 표가 개표되면서 다시 올라갔다.
다양한 인종과 배경,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녹이는 ‘용광로’(Melting Pot)로 불렸던 미국이 이번 대선에서 인종 갈등뿐만 아니라 세대 갈등이 표출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된 국가가 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