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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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팬데믹은 인플루엔자가 일으킬 것” [긴급 진단]

중국에서 발생한 흑사병, 돼지독감 사람 전파 배제 못 해

  • 이재갑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 감염분과위원장 litjacob@chol.com

    입력2020-07-1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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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돼지농장.  [신화=뉴시스]

    중국 돼지농장. [신화=뉴시스]

    코로나19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미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칠레 등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7월 13일에는 전 세계에서 23만 명이 감염돼 하루 최다 확진자 발생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7월 14일까지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1300만여 명, 사망자는 57만 명에 달한다. 

    그 여파가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 연구진이 돼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인플루엔자에 대한 연구 논문을 6월 30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했다. 이 논문은 돼지들에게서 유행한 ‘G4 EA H1N1’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소개했다.

    직간접 접촉에 의한 사람 전파 시사

    2016년부터 중국 돼지농장에서 감염된 이 바이러스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유행한 조류인플루엔자, 2009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신종인플루엔자(H1N1), 돼지에게 전염되는 인플루엔자 등의 유전자를 포함한 변종으로, 족제비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호흡기를 통한 전파가 확인됐다. 돼지농장에 근무하던 사람 335명 중 35명(10.4%)이 이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갖고 있어 직간접 접촉에 의한 사람 전파를 시사했다. 

    돼지는 사람이나 조류에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모두 감염될 수 있는 동물이다. 돼지 몸 안에서 이 바이러스들은 유전자를 교환하며 새로운 형태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거듭나는 특징을 보인다. 2009년 유행을 시작한 신종인플루엔자도 돼지 몸 안에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후 사람에게 전파된 바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10만 배 확대한 현미경 사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제공]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10만 배 확대한 현미경 사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제공]

    G4 EA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돼지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유행해 사람과 접촉이 빈번하면 사람 간 전파를 일으키는 새로운 신종인플루엔자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가 유행한 이후 여러 나라에서 동물 사이에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사이 중국에서는 H7N9이 가금시장을 중심으로 확산돼 사람에게 전파된 사례가 있고 H5N1, H5N6, H5N8, H9N2 같은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 전파된 사례가 중국을 중심으로 보고됐다. 지금 코로나19가 팬데믹(대유행) 상태이지만, 감염 전문가는 대부분 다음 팬데믹은 인플루엔자가 일으킬 것으로 예상한다. 이번에 보고된 G4 EA H1N1도 새로운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는 후보로 지속적인 관찰과 대비가 필요하다.



    폐렴형 페스트도 사람 간 전파

    최근 중국 네이멍구자치구에서 발생한 흑사병(페스트)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곳에서 페스트 환자가 4명 발생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페스트를 현대에 사라진 병이라고 인식하지만 지금도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집단 발병이 일어나고 있다. 

    페스트는 고대 북부 아프리카와 중동지방에서 발병한 기록이 남아 있고, 성경 ‘사무엘서’에도 페스트로 의심되는 질병 기록이 남아 있다. 페스트는 역사상 3번의 대유행이 일어났다. 첫 번째 대유행은 6세기 비잔틴제국에서 시작돼 약 4000만 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두 번째 대유행은 14세기 중국에서 시작돼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산, 7000만 명가량이 사망했다. 1850년대 중국에서 시작된 세 번째 대유행은 1890년대 유럽으로 퍼져 20세기 초까지 지속됐다.

    최근 중국에서 흑사병이 발생했다.  [뉴스1]

    최근 중국에서 흑사병이 발생했다. [뉴스1]

    페스트는 원인균(Yersinia pestis)에 감염된 벼룩에 물리거나 감염된 동물의 사체에 접촉하면 발병한다. 20세기 들어 도시 위생 상태가 개선돼 쥐와 벼룩이 줄어들고, 항생제가 나와 치료에 사용되면서 대규모 유행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 내륙지역, 아시아 일부 국가, 미국 일부 지역,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과 마다가스카르에서는 풍토병 형태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17~2018년 마다가스카르에서 2000여 명이 발병하고 이 중 약 10%가 사망한 것이 가장 최근에 일어난 큰 유행이었다. 

    페스트 종류는 크게 림프절형, 폐렴형, 패혈증형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폐렴형이 비말을 통한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하다. 림프절형은 사람 간 전파는 일어나지 않지만 발병 초기에 치료받지 않으면 폐렴형이나 패혈증형으로 발전할 수 있다. 

    중국 네이멍구자치구는 페스트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라 이번에 환자 4명이 나타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2019년에는 네이멍구자치구의 한 환자가 폐렴이 잘 낫지 않아 베이징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됐는데, 이 환자가 페스트로 진단돼 베이징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페스트는 세균에 의한 감염병으로 초기에 진단을 잘해 항생제를 빨리 투여하면 전염력도 소실되고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다. 환경 여건이 좋고 위생 상태가 양호한 지역은 쥐나 벼룩이 거의 없기 때문에 14세기나 19세기 같은 대규모 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마다가스카르 같은 저소득 국가는 환경이 열악하고 의료 자원이 부족해 대규모 유행이 계속 발생할 여지가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 경험의 유용성

    신종 감염병은 어떠한 모습으로 얼마나 유행할지 예고 없이 들이닥치기 때문에 대비하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 역시 지금처럼 장기화하고 팬데믹으로 번질 것으로 예상한 감염 전문가는 많지 않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앞으로 문제가 될 감염병 8가지를 ‘질병 X(disease X)’로 명명하고 새롭게 유행할 수 있는 감염병에 대한 대비를 강조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이런 경고에도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듯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앞으로 우리가 신종 감염병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새로운 일상 ‘뉴노멀’은 우리 의료체계, 감염병 대비체계의 개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준비는 신종 감염병에 대한 연구 역량 확보다. 우리나라는 아직 감염병 연구에 충분히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특정한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면 많지 않은 연구 예산을 그쪽으로 쏟아부어 기존에 하던 연구를 지속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가 유행하니 인플루엔자 연구에 연구비를 몰아주고, 2015년에는 같은 이유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연구에 연구비를 몰아준 식이다.

    감염병은 예방이 중요하다. [뉴스1]

    감염병은 예방이 중요하다. [뉴스1]

    앞으로는 바뀌어야 한다. 어떤 감염병이 유행할지 모르는 만큼 다양한 바이러스를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특정 바이러스가 문제가 되면 추가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연구비를 관리해야 한다. 또한 감염병 대응 조직과 인력을 개편하고 확충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의료계의 숙원이던,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이 이뤄지게 됐다. 현재 내부적으로 구조 개편에 대해 논의 중이며, 국회에서 입법을 앞두고 있다. 이번 승격과 동시에 질병관리청이 명실상부한 감염병 대응 및 연구 조직으로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도 중요하다. 신종 감염병은 대부분 외국에서 발생한 후 국내로 유입되는 형태로 확산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돼 다시 해외여행 수요가 많아지면 방문하는 국가에서 어떤 감염병이 유행하는지 꼭 확인하고 철저히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한 달 이내 발열을 포함한 감염병 증상이 있는 경우 꼭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하며 이때 해외여행 이력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정부 당국도 장기적 안목으로 우리 현실에 맞는 대비체계를 갖췄으면 한다. 코로나19도 국민의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에 힘입어 유행이 최소화되고 있듯이 어떤 신종 감염병이 오더라도 함께 노력하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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