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정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지호영 기자]
- 청와대와 여성가족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최고의원 등 정부 여당은 뒤늦게라도 박원순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왜 서울시의회에선 성명서조차 발표하지 않나.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하면서 사건이 알려졌기 때문에 시의회가 사건 자체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성희롱·성폭행 사건 대응 시스템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하나씩 짚어보는 것은 시의회가 해야 할 일이다. 민주당 소속 시의원 중 몇몇은 이런 문제제기에 공감한다. 그래도 아직 가시적인 움직임은 없다. 성명을 내기엔 너무 늦지 않았냐는 말도 하더라.”
- 해야 할 일이라면 늦더라도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닌가.
“현재 110명의 시의원 중 102명(93%)이 민주당 소속이다. 나머지는 미래통합당 6명, 민생당 1명, 정의당 1명이다. 이번 10대 시의회 이전에도 박원순 전 시장 재임 기간 내내 서울시의회는 민주당이 독점해오다시피 했다. 시의회는 ‘박원순의 서울시’에 대해 견제와 비판 기능을 상실했다. 이번 사건도 ‘내부자적 입장’에서 보고 있다. ‘경찰 수사나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분위기다.”
- 지난 4월에도 서울시 비서실 직원의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이후 서울시의회가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셈이다.
“책임을 통감한다. 성 비위 외에도 서울시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직원 고충과 관련한 대응 시스템이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고, 서울시 구성원들은 ‘제도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서울시장의 막강한 권력과 그것에 동조해온 시의회 시스템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긴 세월,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회. [동아DB]
“이러한 사안이 터질 때마다 (피해자와 같은) 여성은 무엇을 했느냐고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해 접근하면 결국 여성 비서를 뽑지 말자, 침대를 없애자 같은 백래시(backlash·반격)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권력 관계에 의거해 발생한 구조적 문제다.”
권 의원에 따르면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2주 전쯤 박 전 시장과 여성 시의원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여성 시의원의 정치적 역량을 강화시키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권 의원은 “그 자리에서 시의회에 여성특위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고, 박 전 시장이 지원하겠다고도 했다”며 “겉으로 드러난 그의 행위와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행위 간에 큰 간극이 존재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시의회가 서울시에 대한 감시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 시의회의 역할에 대해 점검하겠다”고 했다.
“김 의장의 평소 성품으로 볼 때 공염불은 아니고, 제도적 보완을 해나가실 거라 믿는다. 하지만 (민주당 시의원들이) 자기반성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거라고 본다.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해온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이게 왜 문제야?’ 하는 반응에 깜짝 놀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울시의회는 가톨릭교회의 교황 선출 방식처럼 무기명 투표로 의장단을 선출한다. 그런데 지난달 10대 시의회 후반기 의장단을 선출하면서 기표소 안에 민주당 내부에서 후보자로 결정한 의원 이름을 굵게 표시한 종이를 붙여 놨다. 권 의원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부정·불법 행위라고 주장했다. 26일 한 시민단체는 김인호 의장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권 의원은 “‘6기 시의회 때부터 늘 이런 식으로 의장단을 선출해왔는데 이게 뭐가 문제냐’는 해명이 더 문제”라며 “권력자의 성 비위에 대해 ‘네가 예뻐서 그래’, ‘네가 예민한 거야’라고 반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 민주당이 독식한 서울시의회에서 2년간 의정 활동해온 경험을 돌이켜본다면.
“조례를 바꾸려면 최소 10명의 의원에게 사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민주당과 협력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다행히 뜻을 함께 하는 동료 의원이 적지 않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의 뜻에 반하는 사안이면 협력 관계가 딱 끊겼다. 일정 부분 협력하다가도 서울시와 결이 맞지 않는 지점에 이르면 더는 일을 추진할 수 없었다.”
공적 영역에서 ‘수발노동’ 삭제해야
7월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고 박원순 시장의 영결식이 끝난 뒤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청사를 나서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박 전 시장 취임 이후 10년 가까이 시와 시의회가 발을 맞추면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돼온 게 너무 많았다. 110명의 시의원 중 100명이 지역구 의원이다. 서울시 전체를 위하기보다는 자기 지역구에 엘리베이터 한 대라도 더 놓는 것에 관심 많다보니 서울시와 각을 세우기가 어렵다. 또 서울시 각 국·실의 행정을 소관하는 시의회 상임위원회인 행정자치위 의원 10명의 9명이 민주당 소속이라 6층 비서실을 파헤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박원순 사건으로 정의당도 내홍을 겪었다. 정의당 소속 류호정, 장혜영 의원이 박 전 시장 빈소에 조문하지 않겠다고 한 것에 대해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사과드린다”고 밝혔다가 “피해자가 절망했던 위력에 가담했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 당 안팎으로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정의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충돌한다. 그만큼 이 시대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선과 경험의 차이가 존재한다. 박 전 시장과의 사회적 관계의 경험 차이도 일조했을 것이다. 정의당은 이번 일을 계기로 다양한 감수성을 키워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박원순 사건과 관련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예정인가.
“서울시의 성희롱·성폭행 대응 시스템이 서울시장에 대해서만 작동하지 않은 원인에 대해 하나씩 짚어보겠다. 또 공적 영역에서 ‘수발노동’을 삭제해나가겠다. 새벽 마라톤 동행에서 샤워 후 속옷 챙겨주는 것까지 과연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는 일인가? 비서실 업무가 지나치게 개인화된 것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 장(長) 외에도 국회 의장실 등의 비서실도 채용 및 업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도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민주당 독주’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국민이 촛불을 들어 지금 정부를 탄생시켰다. 거기까지는 국민의 희망 찬 결정이었다. 지금부터는 그러한 국민 열망에 얼마나 화답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민주당은 ‘적폐를 해소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는데, 그 순간 민주당도 적폐와 똑같아진다. 비단 민주당뿐만 아니라 어느 당도 독주는 문제가 있다. 민주당은 자신이 국민에 의해 대체될 수 있음을 깨닫고, 국민은 회초리를 정확하게 들어주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