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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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아닌 정권 편드는 장관, 여성가족부 불신 키워

박원순 사건에도 침묵하다 뒷북, ‘폐지’ 논란의 근본 원인은 ‘허수아비’ 장관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20-07-29 11: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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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후보도 대통령이 되면 민주당 캠프 인사에게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 자리를 줄 것 아니냐”(바른정당 유승민 대선후보), “정치인이 여가부 장관이 된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일이다. 여성 정책을 총괄하는 여가부는 꼭 필요하다.”(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2017년 5월 19대 대선을 앞두고 열린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여가부 존폐를 둘러싸고 벌인 논쟁의 한 대목이다. 이 대화에는 ‘여성가족부 장관’ 자리가 전문성을 갖춘 인물보다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에게 주어져왔고,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는 인식이 배어 있다.

    ‘탁현민 경질’ 거절이 여가부에 준 메시지

    7월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여성폭력방지위원회 긴급회의에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7월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여성폭력방지위원회 긴급회의에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최근 ‘박원순 사건’ 후폭풍으로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여성가족부 폐지’ 청원이 올라오자 닷새 만에 10만 명 넘는 인원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최근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건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서 여가부가 제대로 여성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여가부는 정의연 후원금 논란과 관련한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했고, 박원순 사건에 대해서는 초기에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가부는 박원순 사건이 불거지고 일주일 가까이 지난 7월 14일에야 “피해자 보호 원칙 등에 따라 필요한 대책을 마련해나가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30일 내 10만 명 이상 동의하면 관련 상임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되는 원칙에 따라 이 사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 심사될 예정이다. 정부 부처를 폐지하려면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기에 실제 여가부가 폐지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참에 여가부가 걸핏하면 폐지 논란에 휩싸이는 이유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간 남성단체나 정치권에서 여가부 폐지 주장이 제기돼왔지만, 이번에는 여가부 폐지 청원에 대한 국민 동의가 빠르게 모였고, 여성들도 박원순 사건에 미온적인 여가부 태도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가부에 대한 불신의 원인으로는 여가부 장관을 ‘내 편을 앉히면 그만’이라고 여겨온 역대 정권의 관행이 꼽힌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여성 정책에 관한 전문성과 사회 현안으로 떠오른 젠더 이슈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춘 인사가 여가부 장관으로 온 적이 없고, 여가부 장관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을 준 정권도 없다는 게 국민이 여가부를 불신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역대 여가부 장관 명단을 보면 해당 정권과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 정책 관련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이가 장관에 임명된 경우도 적잖았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인의 식생활 분야 전문가’인 백희영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를 여가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여성계로부터 “여성 정책에 대한 전문성이 전무한 이의 내정을 철회하라”는 반발을 샀다. 백 장관 후임인 김금래 장관에 대해서는 ‘여사님 인사’라는 논란이 일었다. 김 전 장관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비서실 부실장을 맡아 김윤옥 여사를 보좌했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여가부 장관은 ‘박근혜 키즈’로 불리던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변호사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한 조 전 장관은 국회 청문회에서 “앞으로 부족한 전문성을 쌓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 후임으로 여가부에 입성한 김희정, 강은희 전 장관 역시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다.
    정현백, 진선미, 이정옥 장관으로 이어지는 문재인 정부의 여가부 ‘라인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 전 장관은 현직 국회의원 출신이고,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출신인 이정옥 현 장관은 여성계에 전혀 알려진 인물이 아니어서 ‘깜짝 발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지원 ‘담쟁이포럼’ 대구경북지부 발기인으로 참여한 그는 최근 정의연 사태 때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과의 오랜 인연이 드러난 바 있다. 

    역대 여가부 장관 가운데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이는 정현백 전 장관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지낸 그가 2017년 7월 여가부 장관에 발탁되자 여성계에서는 ‘여성운동을 제대로 펼쳐온 최초의 여가부 장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정현백의 여가부’도 시작부터 한계에 부딪혔다. 성(性) 인식 논란이 불거진 탁현민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 대해 정 전 장관은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 “장관이 되면 적극적으로 (탁 행정관의 사직) 결단을 요구하겠다”고 밝혔지만, 구두로 전달했다는 그의 고언을 청와대는 수용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여가부 고위 관계자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도 청와대와 직결된 이슈에는 여가부 측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시작부터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 셈이니, 이후 여가부가 어떻게 정권에 타격이 되는 이슈에 적극 나설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안희정 사건에도 대응책 만들지 않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여성가족부.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여성가족부.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정의연 사태와 박원순 사건 전에도 여가부는 여러 차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 고(故) 장자연 씨 사건과 관련해 증언자로 나선 윤지오 씨에게 규정에 없는 숙박비 등을 지원했다가 박원순 사건이 터지자 미래통합당으로부터 “여가부가 친문(친문재인) 여성은 보호하고 비문(비문재인) 여성은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을 들었다.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2019년 2월), ‘초중고 성평등 교수·학습 지도안 사례집’(2019년 3월)은 지나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거나 여가부가 오히려 성 갈등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고 뒤늦게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한 여성 정치인은 “성(性) 비위 문제와 관련해 여가부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관련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는 일이지만, 이마저도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박원순 사건 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 비위 사건이 있었음에도 여가부는 지방자치단체 장(長)에 의한 성희롱·성폭행 예방책이나 사건 처리 매뉴얼을 만들지 않았다. 

    안희정 사건이 불거지고 4개월 후인 2018년 6월 여가부가 배포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에는 공공기관의 장이 성희롱·성폭력 행위자일 경우 상급기관에 이첩해 사건을 처리하라는 내용이 새롭게 포함됐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지자체)는 공공기관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이나 도지사는 이 규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여가부 내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점검단 관계자는 “안 전 지사와 오 전 시장 사건 때는 지자체장이 성희롱·성폭력 행위자일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사회적으로 논의된 바 없어 여가부도 관련 규정을 고민하지 않았다”며 “(박원순 사건을 계기로) 최근 이런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논의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가부 폐지 여론과 관련해 여성계는 “폐지를 거론하기에 앞서 청와대가 정권이 아닌 국민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여가부 장관을 임명하고, 그가 제대로 된 권한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한 여성계 인사는 “지자체장 등 권력 정점이 있는 인사에 의한 성 비위 사건의 책임은 여가부 뿐 아니라 청와대, 행정안전부, 그리고 집권 여당에게도 있다”며 “지금이라도 여가부를 중심으로 견제받지 않는 권력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사후처리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은주 소장은 “여가부 폐지 10만 동의에는 여가부가 여성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이 분명히 포함돼 있다”며 “전문성을 가지고 정권이 아닌 국민을 대변할 수 있도록 장관의 리더십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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