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
이 행사는 부산, 대구, 충남 등 지방광역단체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을 대상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마련한 행사다. 소속사의 도움 없이 지방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2박 3일 동안 서울에 머물며 음악 활동에 필요한 실무교육을 받았다. 내용은 다채로웠다. 음악 스타일링, 해외 페스티벌 경험담, 엔지니어와 소통법, 보도자료 작성법, 세금 관련 강좌 등의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뉴스1, AP=뉴시스]
억압의 시절이었고 반항의 시절이었다. ‘록커’의 상징이던 긴 머리에 가죽바지 대신, 머리를 뾰족뾰족 세우고 허리에 체인을 두른 펑크 밴드에게는 경찰의 불심검문이 일상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당하는 그 검문에 노브레인은 초기 ‘경찰이면 다냐’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홍대 앞을 지나는 행인조차 떼 지어 다니는 펑크족을 동물원 원숭이나 마약에 절어 있는 갱스터인 양 쳐다보곤 했다.
음악계 시선도 곱지는 않았다. 실력보다 표현과 분출이 더 중요했던 당시 펑크밴드를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를 막론하고 ‘연주도 제대로 못하는 애들’ 취급했다. 유명 메탈 밴드들은 인터뷰에서 대놓고 그들을 쓰레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들이 활동하던 라이브 클럽은 불법 공간이었다. 공연장이나 유흥주점 허가를 받지 않고 공연하는 건 당시 현행법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홍대 앞이 신인들 등용문이 된 이유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뉴스1, AP=뉴시스]
이런 흐름이 쌓이면서 홍대 앞에는 시스템과 비즈니스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즉 특정 밴드가 특정 클럽에서만 공연하고 그 클럽이 소속 밴드의 음반까지 내던 시스템이 깨졌다. 열악한 라이브 클럽보다 제대로 된 환경을 구축한 전문 공연장이 하나 둘 문을 열었다. 체계적 매니지먼트와 홍보, 유통을 지원하는 레이블도 생겨났다. 모든 걸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DIY(Do It Yourself) 시대에서 주류, 또는 기존 시스템과 협업하는 시대로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실력 없다고 손가락질 받던 연주자들의 기량도 꾸준히 상승했던 건 물론이다.
여기에는 외적인 배경도 있다. 디지털 음원의 등장과 함께 음반시장이 급격히 몰락하면서 ‘그들만의 리그’가 해체됐다. 갈수록 줄어드는 시장에서 모험은 사치였다. 아이돌과 발라드만이 그나마 주류 음악계에서 데뷔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TV와 라디오 중심으로 활동하며 안정적인 연예계 생활을 할 수 있던 음악인들이 홍대 앞의 문을 두드렸다.
[사진 제공 · 쇼파르뮤직, 뉴스1, AP=뉴시스]
이런 흐름이 절정에 이른 건 2000년대 후반 검정치마,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이 연이어 등장하면서였다. 인디 1세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스타들의 탄생기를 세상은 ‘인디 르네상스’라 불렀다. 그리고 지금, 더는 비주류와 주류의 경계는 없어 보인다. 볼빨간사춘기, 멜로망스, 그리고 십센치 등 음원 차트에서 늘 최상위를 기록하는 이들이 있으며 혁오, 잔나비 같은 새로운 스타도 나타났다.
지속가능한 뮤지션이 되기 위한 전략
[동아DB,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신인이 데뷔하고, 홍보 또한 뉴 미디어 등을 통해 전에 비할 바 없이 쉬워졌다. 하지만 역으로 그만큼 주목과 생존에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기도 한다.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그 가치를 낮추기 마련이고, 이는 음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공연을 열심히 하고 실력이 입소문을 타면 최소한의 주목을 받을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다. 아이돌도, 뮤지션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대안이 있다. 확실히 차별화되는 콘셉트와 장르로 데뷔하는 것이다. 록을 기반으로 하는 게 당연한 밴드 신에서 디스코와 펑크를 내세우고 이슬람 스타일의 터번을 두른 채 등장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그 좋은 예다.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그들은 눈에 확실히 띄었다. 한국 밴드들을 일본에 소개하는 한 일본 음악계 인사는 그들을 두고 “다른 밴드들은 일본에도 다 있다. 하지만 술탄 오브 더 디스코 같은 밴드는 없다”며 그들의 일본 진출을 도모하기도 했다.
또 하나는 소셜미디어 시대의 공식에 입각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최소한의 팬덤을 구축하는 것이다. 즉 어떤 공연을 해도 자리를 채워줄 50~100명의 팬을 만들 수 있다면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음악만으로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 잔나비가 그러했듯 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튜브 등을 통해 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며 적극적으로 팬덤을 형성해가야 한다는 얘기다.
누구나 음악을 만들고 누구나 데뷔할 수 있지만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는 시대, 자기 음악을 하려는 이들이 생겼으면 한다. 다른 콘텐츠 비즈니스들이 그렇듯, 음악도 이제 콘텐츠 자체만으로는 성공을 도모하기 힘들어졌다.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