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람은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었다. 경제현상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합리성뿐 아니라 비합리적 행동심리도 고려해야 한다는 ‘행동경제학’이 부각된 것. 2013년에는 경제활동에서 심리학적 역할을 강조한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출간한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책은 미국 부동산시장의 버블을 예측하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2년과 2013년, 두 번의 노벨상 수상 사례는 경제시스템에서 인간의 ‘심리’나 ‘비합리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했다.
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는 부동산 역시 ‘심리’라는 변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실러 교수가 지적했듯이 부동산 호황이 영원하리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 같은 막연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집단의 기대심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상화되면서 기대감 증폭 혹은 상실의 기울기가 매우 가팔라지고 있다. ‘가파른 대중심리 변화=시장 불안의 확대’인 것이다. 따라서 대중의 부동산 심리를 정확히 해독하는 것은 미래 흐름의 변곡점을 읽어내는 열쇠가 된다. 그렇다면 부동산에 대한 대중의 ‘보이지 않는 심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동산 데이터’로는 무엇이 있을까.
한국은행 소비자동향지수와 집값, 정비례
주 |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 : 1년 후 주택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전망을 조사. 지수가 100을 넘으면 주택 가격이 상승한다는 응답이 많다는 의미 [출처 | 한국은행]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수많은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다. 특히 2017년 8·2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며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등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카드가 부활했다. 그러나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8·2 부동산대책 이후 오히려 부동산 심리는 살아났다. 이는 투기지역 시행 전 정부가 발표한 조정대상지역 부동산이 오히려 꾸준히 상승해 ‘정부가 규제한 곳은 가격이 오른다’는 학습효과가 생겼기 때문이다. 더불어 재초환, 양도세 중과의 경우 바로 시행한 것이 아니라 유예기간을 둠으로써 시장의 조바심을 키운 점도 한몫했다.
예를 들어 재초환을 피하려고 재건축조합은 사업 진행을 더욱 빠르게 전개했다. 속도가 생명인 재건축사업에 가속페달을 밟음으로써 시장의 기대심리가 증폭된 것이다. 또한 양도세 중과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서울 아파트의 매물이 증가했지만, ‘똘똘한 한 채’를 향한 기대심리를 바탕으로 매물 거래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시장의 상승을 견인했다.
정부의 부단한 노력에도 2018년 9월 CSI는 역대 최고 수준인 128p를 기록했다. 부동산에 대한 기대심리가 끝을 모르고 치솟은 것이다. 이에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끝판왕’ 격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과열지역의 경우 1주택만 보유해도 대출을 금지시켜버렸다. 이후 시장의 기대심리는 급속히 냉각됐다. 2월 현재 CSI는 84p까지 하락하며 201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급격히 상승하던 기대심리에 지난해 9·13 부동산대책이 카운터펀치를 날린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종부세 대상이 되려면 시가로 12억 원(1주택자의 경우) 이상의 주택을 보유해야 하는데, 과연 12억 이상의 주택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기에 CSI가 이토록 위축될까 하는 점이다. 결국 정부 규제는 실질적 효력을 떠나 시장심리에 강력한 경고 효과를 주는 것이었다.
구글에 ‘분양’ 검색량 많으면 집값 상승
주 | 2019. 3.18. 한국감정원 기준, 2019. 3. 국토교통부 기준 [출처 | 네이버 부동산]
이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심리 냉각에도 서울 아파트 시세가 지난해 초 수준의 회귀에 그친 점은 현재 시세가 매도-매수자의 팽팽한 균형점이라는 것이다. 즉 앞으로 서울 주택 가격은 조정된 현 시세에서 소폭 하락 혹은 소폭 상승의 평탄한 시장이 되리라는 얘기다. 둘째, 심리 냉각은 주택시장 급랭의 신호탄으로 현재 서울 아파트 시세는 하락의 과정이며 서울 상승 초기인 3년 전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성립되려면 CSI가 앞으로 3개월 이상 80p대를 유지하고, 서울 아파트 급매 거래가 증가하며, 거래총량이 많아진다는 전제조건이 붙어야겠다.
주 | 2014년 1월~2019년 3월 검색량 중 가장 높은 검색량을 100으로 해 표준화 수치로 나타낸 것. 파란색은 ‘분양’ 검색량 수치, 붉은색은 ‘전세’ 검색량 수치. 주택 가격 변동률은 전분기 대비 [출처 | 구글트렌드, 부동산114]
최근 4년간 ‘전세’ 검색량이 많았던 2016년 1분기, 2017년 2분기 모두 가격 상승폭이 유일하게 둔화된 시점이었다. 이후 2019년 1분기 현재 ‘전세’ 검색량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4년 만에 주택 가격 변동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지난 4년간의 대세상승이 끝났다는 뜻이다. 이는 앞으로 지난날의 숨 가쁜 가격 상승은 없을 것이며, 둔화 혹은 급격한 하락의 2가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올해 상반기, 집값 ‘하락 둔화’ vs ‘급락’ 결정될 것
주 | 2018년 1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신안산선, 소사원시선, 인덕원선, 월곶판교선의 네이버 검색량 추이를 나타낸 것. [출처 | 트렌드 트래커]
전통적 서베이 지표인 한국은행 CSI와 최근 빅데이터 심리지표로 떠오르고 있는 포털사이트 검색량을 통해 대한민국 부동산 심리를 진단하고 예측해봤다. 서울의 경우 급격히 냉각된 심리에 준하는 시세 하락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결국 2019년은 서울 부동산이 완만한 둔화의 길을 갈 것인지, 급격한 하락의 길을 갈 것인지 결정되는 해가 될 테다. 그 향방은 CSI 추이와 빅데이터 검색량을 통해 상반기 중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중대한 역사적 사건은 인간의 생각이 은연중에 변화한 결과가 드러난 것이다.’ 집단심리학의 고전인 ‘군중심리’(The Crowd·1895)에서 귀스타브 르봉이 한 말이다. 변곡점을 맞이한 2019년 부동산시장 역시 은연중에 변하는 대중심리를 추적함으로써 대세 흐름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