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은 디젤 배출가스 조작 논란이 터진 지 20여 일 만에 국내 소비자에게 사과하고 리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른은 9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한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 소장에서 피고가 원고인 소비자를 속였다며 민법 제110조에 따라 자동차 매매계약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가 원고를 속이지 않았다면, 원고들은 제작차 배출허용 기준을 준수하지 못하는 자동차를 거액을 내고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매매계약이 소급적으로 무효가 됐으므로 피고들은 원고들이 낸 매매대금과 그에 대한 연 5%의 이자를 반환하라’고 주장했다.
또한 ‘클린디젤의 프리미엄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받지 못했다’며 ‘대기환경보전법상의 배출허용 기준을 충족하려면 차량 성능을 저하시키고 연비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어 추가적인 손해를 입게 됐다. 브랜드 가치 훼손으로 중고차 구입 수요도 급감했다’고도 주장했다. 원고 측은 주위적 청구 원인인 부당이득 반환과 함께 예비적으로 각 3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바른은 별도의 착수금 없이 인지대만으로 소송을 진행하며, 승소 후 성공보수 10%를 받겠다는 계획이다.
폴크스바겐 티구안 2.0 TDI 모델 차주인 천모(33) 씨는 “이번 사태로 브랜드를 신뢰할 수 없게 됐다. 타고 다니는 데 문제가 없어도 속은 느낌,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부분을 속이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며 소송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하종선 바른 변호사는 “9월 30일 1차 소송 후 1000여 건의 문의가 들어오고 500여 명이 소송 제출 서류를 보내올 정도로 차량 소유자들의 관심이 크다”며 “국내 구매자의 10%만 소송에 참여해도 1만2000여 명 수준이다. 참여 의사를 밝혔으나 소송 서류를 준비하지 못한 소비자를 위해 주 단위로 추가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 변호사는 향후 리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모델 소유자들이 폴크스바겐과 아우디의 브랜드 이미지 실추에 따른 중고차 판매 가치 하락과 그로 인한 피해 보상 소송을 원할 경우 진행할 계획이다.
과거 연비 소송은 제조사 승리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차주 2명이 법무법인 바른을 통해 폴크스바겐그룹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국내 딜러사 등을 상대로 9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한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 소장.
폭스바겐코리아에 따르면 미국에서 배기가스 배출량 불일치를 보인 문제의 EA 189 디젤엔진 탑재 차량은 국내에서 12만1038대 판매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국내에서 판매된 LNT 장착 차량은 제타 2547대, 아우디 A3 2206대, 골프 890대 등 총 5643대다. 폭스바겐코리아와 아우디코리아는 10월 8일 언론 광고를 통해 공식 사과문을 냈다. 폭스바겐코리아는 토머스 쿨 사장 명의의 사과문을 통해 ‘고객의 신뢰를 저버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본사 및 한국 정부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고 리콜 등을 고려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우디코리아는 ‘걱정과 불편을 끼쳐 드리게 된 점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폴크스바겐그룹 독일 본사는 해당 소프트웨어 문제를 해결하고 조속한 시일 내 리콜을 시행하기 위한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EA 189 디젤엔진이 장착된 국내 판매 차량은 주행 안전상 아무런 문제가 없고, 국내에서 판매된 모든 아우디 차량은 문제가 된 소프트웨어와 상관이 없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자동차제조사를 상대로 한 연비 소송은 수차례 있었으나 배출가스 조작으로 인한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 이번 소송에 관심을 쏟는 이유다. 지금까지 법원은 운전자가 자동차제조사를 상대로 낸 연비 소송에서는 제조사 손을 들어줬다. K5 하이브리드가 광고 등에서 연비를 과장했다며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소송한 차주, 아반떼와 i30가 연비 거짓·과장 광고를 했다며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소송한 차주들은 모두 패소했다. 지난해 연비 과장 논란이 있던 현대자동차(싼타페)와 쌍용자동차(코란도 스포츠)를 상대로는 각각 5960명, 904명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승소 시 국내에서 소비자가 자동차제조사를 상대로 이긴 최초 사례가 되며, 앞으로 자동차제조사의 이미지 하락에 따른 피해보상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사안을 두고도 유사 소송이나 집단소송이 이뤄질 개연성이 있다.
하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대기환경보존법 위반과 소비자 기망행위가 명백한 데다, 독일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본사가 이를 시인하고 사과하면서 해당 차량을 리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에 승소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제조사를 상대로 소송할 경우 소비자가 그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를 뚜렷하게 명시해야 하는데, 추상적인 내용이라 승소 확률이 높지 않을 수도 있다. 승소하더라도 처음 제기한 손해배상금보다 적게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가 10월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바른빌딩에서 폴크스바겐 소송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자발적 리콜 계획을 밝혔으나 소비자는 리콜을 해도 문제, 하지 않아도 문제다. 리콜을 해서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정상 작동하면 연비 저하를 피할 수 없다. 국내에서는 리콜이 강제적이지 않아 소비자가 원한다면 리콜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건은 환경문제와 직결되기에, 리콜하지 않고 차를 몬다면 자동차 정기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제 불똥은 폴크스바겐을 넘어 다른 자동차제조사로도 튀었다. 환경부는 10월 1일 국내에서 판매 중인 골프, A3, 제타, 비틀 등 유로6 기준 5개 차종과 유로5 기준인 골프, 티구안 등 7개 차종에 대해 인증시험과 실도로주행 조건, 임의설정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과가 나오면 12월부터 다른 국산 및 수입차도 조사에 들어간다. 자동차의 배출가스는 환경부 담당, 연비와 안전성은 국토교통부(국토부) 담당이다. 국토부는 환경부가 폴크스바겐의 조작 사실을 확인한 뒤 연비와의 연계성을 분석할 계획이다.
이에 현대차, 쌍용차, 한국GM 등 국내 디젤 자동차 생산업체들은 대대적인 정부의 조사에도 “규정에 맞게 제작했기에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업체 관계자들은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의도적으로 숨기고 사전 인증을 받아 차량을 판매한 폴크스바겐 문제는 연비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10월 7일 국토부가 국산차와 수입차 연비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르노삼성자동차의 QM5 가솔린 차량과 디젤 차량인 재규어 XF2.2D, 푸조 3008 등 3개 차종이 1차 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최종 발표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미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처럼 보도가 나갔다. 국립환경과학원 등 다른 기관에서 객관적 검증을 위해 추가 시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 국토부 공식 발표를 신중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1차 조사 결과를 자동차제작사 측에 통보하고 이의제기가 있으면 2차 조사 후 최종적으로 적합 여부를 판단한다. 2차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내년 상반기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류청희 자동차 평론가는 “배출가스 검사는 장비가 많이 필요하고 절차가 복잡하다. 국내 배출가스 규정이 외국 규정을 그대로 가져온 거라 외국에서 인증한 서류가 있다면 통과되기 쉬웠다. 환경부가 폴크스바겐이 외국에서 이미 속여 들어온 제품의 서류를 검토했다면 문제를 파악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자동차제조사에서 제품을 어떤 식으로 건드렸는지 사후 검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번 문제도 외국 대학에서 배출가스 시험을 하던 중 기준과 다른 수치가 나와 폴크스바겐 측에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는데, 폴크스바겐이 조작을 시인했기에 밝혀질 수 있었던 거죠. 제조사가 스스로 인정하기 전까지는 어떤 부분을 조작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내기가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