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8

..

정치

임종석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서울시장 ‘띄우기說’ 유력 … 靑 ‘대통령 벽시계 전달’ 공개하며 ‘文 보증’ 각인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7-12-19 14:41:35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문재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동을 방문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이 12월 10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 아크부대에 대통령 서명이 들어간 벽시계를 선물했다. [사진 제공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동을 방문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이 12월 10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 아크부대에 대통령 서명이 들어간 벽시계를 선물했다. [사진 제공 · 청와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2월 9일 출국했다. 문재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아랍에미리트(UAE)와 레바논을 방문한 뒤 12일 새벽에 귀국했다. 출국도, 입국도 비공개였다. 심지어 특사 파견 사실도 출국 다음 날인 10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해 알려졌다. 

    비서실장을 특사로 파견한 전례가 단 한 차례뿐이었고, 비밀리에 특사를 파견한 전례도 찾기 힘들다.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을 앞둔 시점에 비서실장이 자리를 비운 것도 이례적이다. 왜 임 실장은 특사로 갔을까.

    ‘대북접촉설’ ‘MB 비리 관련설’

    12월 10일 오후(현지시각)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 왕세제와 만나 악수하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 제공 · 청와대]

    12월 10일 오후(현지시각)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 왕세제와 만나 악수하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 제공 · 청와대]

    임 실장이 입국한 바로 다음 날인 12월 13일 오전, 문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길에 올랐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서면 청와대는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한다. 그래서 임 실장이 12일에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이번 방중에 앞서 청와대는 거의 일주일 동안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했다. 문 대통령은 12일 아예 공식일정을 잡지 않고 정상회담을 준비했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비서실장이 청와대를 비운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 준비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을 낳게 하는 대목이다. 

    언론이 처음 제기한 것은 ‘대북접촉설’이다. 임 실장은 과거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시절 임수경 방북을 실현했고, 최근까지도 대북 관련 사업을 해왔다. 이 때문에 북한에 상당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번에 방문한 UAE와 레바논에는 북한대사관이 있다. 그런 점에서 특사를 가장한 ‘대북접촉’ 목적으로 보낸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개연성이 높은 추측이다. 그런 정도 사안이었다면 방중 직전에 황급히 다녀와야 했던 불가피성도 이해 가능해진다. 청와대는 물론 ‘그런 계획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언론이 다음으로 제기한 것은 ‘MB 비리 관련설’이다. MBC 보도가 발단이 됐다. MBC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임 실장이 중동에 특사로 간 진짜 이유가 ‘이명박(MB) 정부 당시 비리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임 실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를 만나면서 이 설에 더욱 힘이 실렸다. 2009년 20조 원 규모의 한국형 원전 수출 당시 상당한 리베이트가 오갔을 것이란 풍문이 적잖게 떠돌았다. 여기에 만약 이 전 대통령이 연루됐다면 사안이 중대한 것은 분명하다. 이 보도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전면 부인하고 정정 보도를 요청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도 12월 14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임 실장이 UAE를 방문한 데 대해 “MB 정부의 UAE 원전 수주와 관련해 터무니없는 얘기를 퍼트리는 문재인 정부를 그 나라 왕세자가 국교 단절까지 거론하며 격렬히 비난하자 이를 수습, 무마하려고 임 실장이 달려갔다는 소문이 나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언론이 제기한 것은 ‘임종석 띄우기설’이다. 임 실장이 내년 6월 전국동시 지방선거(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고, 문 대통령의 양해 또는 지원 하에 언론 홍보전에 나선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이번 특사 방문이 임 실장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출국과 입국을 비밀로 부친 와중에도 청와대는 임 실장이 현지 UAE 아크부대와 레바논 동명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 기념 시계인 ‘이니 벽시계’를 전달한 장면을 적극 공개했다. 이로써 ‘대통령이 보증하는 인물’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청와대가 ‘대북접촉설’과 ‘MB 비리 관련설’을 적극 부인하면서 오히려 이런 방향으로 유도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차포 떼고 나니, ‘임종석 띄우기설’만 남은 격이다. 청와대 측은 ‘대북접촉설’과 ‘MB 비리 관련설’을 부인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최근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을 때와 공동경비구역(JSA) 장병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국내 장병들은 언제든 격려할 수 있는데 열사의 땅에서 고생하는 장병은 눈에 밟힌다’고 했다. (중략)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논의했는데 대통령이 직접 가는 일정을 예상할 수 없으니 이른 시일 내 대통령 마음을 직접 전달할 사람이 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임 실장을 파견하기로 했다.” 

    이처럼 자세하고 친절하게 해명했는데, 만약 ‘대북접촉설’과 ‘MB 비리 관련설’이 사실로 밝혀지면 해명은 거짓말이 되고, ‘국군 장병을 팔았다’는 엄청난 역풍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위험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거짓말을 했을까. 결국 남는 것은 ‘임종석 띄우기설’이 유력해 보인다.

    親文의 ‘임종석 방출설’

    ‘임종석 띄우기설’과 연관해 나오는 또 다른 설은 ‘임종석 방출설’이다. 첫 비서실장으로서 효용 가치도 떨어졌고, 친문(친문재인) 핵심인 양정철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 등이 자신들보다 그에게 힘이 더 실리는 것에 불만을 갖고 밀어내려 한다는 설이다. 마침 임 실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원하니 최대한 띄워 당선케 하는 방향으로 가면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상생하는 길이기도 하다. 임 실장은 11월 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어떤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이미 말씀드렸다”며 서울시장 출마설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아직은’이라는 전제가 붙은 것으로 읽혀 100% 부인했다고 보긴 어렵다. 특사 파견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뤄졌을 개연성이 없지 않다. 

    최근 서울시장 도전자가 연이어 출마 의사를 비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11월 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국정감사가 끝났다. 11월이 시작됐다. (중략) 서울을 걸으며 서울의 역사를,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얘기를 해보려 한다’는 글과 함께 시민들을 만나 대화하고 사진을 찍는 동영상을 올렸다. 12월 5일에는 ‘박영선, 서울을 걷다’ 1차 보고회를 개최했다. 사실상 출마 선언에 선거운동까지 개시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도 11월 17일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서울은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상상력,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중략) 저는 언제든지 출발할 준비가 돼 있는데 조만간 박원순 시장이 생각하는 ‘도시 재생’과 제가 생각하는 ‘사람 재생’이 얼마나 차별적인지 차근차근 선보여 나갈 계획’이라며 서울시장 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전현희 의원도 뛰어들 태세다. 

    임 실장이 특사로 떠난 것이 알려진 12월 10일 오후에는 정청래 전 의원도 서울시장 출마를 시사하고 나섰다. 눈치 빠른 정 전 의원이다 보니 임 실장의 행보에 편승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감각적인 대응이었다. 자신의 SNS에 ‘문재인 정부 성공과 서울시민, 민주당을 위해서라면 1등 꽃길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깨지고 지더라도 자갈밭이라도 출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올렸는데, 누가 보더라도 출마 선언이었다. 

    임 실장의 특사 행보에 정 전 의원의 출마 시사까지 더해지면서 최근 여당 내 서울시장 후보군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가 급상승했고, 관련 보도도 크게 늘어났다. 그런데 서울시장 출마만 뜨거운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른바 ‘3철’ 가운데 이호철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의 부산시장 출마와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의 경기도지사 출마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지역 여론을 달구는 중이다. 시점 면에서도 임 실장의 특사 파견은 서울시장 출마를 변수로 넣어야 이해가 빠르다.

    여권의 지방선거 필승론

    양정철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 이호철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왼쪽부터). [동아DB, 뉴스1]

    양정철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 이호철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왼쪽부터). [동아DB, 뉴스1]

    친문 인사들의 출마 소식이 속속 전해지면서 문 대통령의 내년 지방선거 전략도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높은 지지율을 바탕에 깔고, 지방분권과 국민 기본권 강화를 지향한 ‘개헌 이슈’로 선거 국면을 주도해 수도권은 물론, 영남권에서도 약진함으로써 중간평가 파고를 넘겠다는 계산일 테다. 개헌으로 최장 7년 장기집권의 길을 여는 일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면 거의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문제는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가 지방선거로 이어질까 하는 점이다. 여기에 친문 인사의 지명도와 경력이 여타 경쟁자를 압도할 정도가 아니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보수정권 9년의 공백 때문인데, 그래서 문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띄우기’다. 내년 지방선거의 꽃은 역시 서울시장이다. 서울시장이 되는 순간 차기 대선후보 반열에 오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대통령이나 권력 핵심 인사들이 서울시장 선거 승리에 주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다른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면 선거 승리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도 이번 임 실장 특사 파견은 합목적적으로 보이지만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이 이뤄진다면 서울시장을 비롯한 광역단체장은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주지사급 권한을 누릴 개연성이 높다. 문 대통령이 이미 여러 차례 미국 연방제 수준에 버금가는 강력한 자치분권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권 출신 광역단체장이 대거 배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앙정부 따로, 지방정부 따로 노는 현상이 빚어지면서 국정동력을 상실하는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도 문 대통령에게는 내년 지방선거 승리가 중요하다. 개헌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개헌 이후를 생각할 때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광흥창팀’ 좌장으로 대선을 승리로 이끈 임 실장이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선두에 나서 승리를 이끌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