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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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층민 출신 모디 인도 총리, ‘힌두제국 황제’ 다가서

4월 19일 인도 총선 승리하며 3연임 가능성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4-04-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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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있는 아요디아는 힌두교 최고 성지로 꼽히는 지역이다. 7000년 전 힌두교 라마신이 태어난 장소로 전해지는 곳으로, 1528년 무굴제국이 이 지역 힌두교 사원을 허물고 이슬람 모스크를 세워 문제가 됐다. 이후 500년간 힌두교와 이슬람교는 이곳을 놓고 분쟁을 벌였고, 1992년 힌두교 신자들이 이곳 이슬람 모스크를 파괴하기도 했다. 인도 전체 인구 14억 명 가운데 힌두교 신자는 80%, 무슬림은 15%다. 당시 힌두교 신자들이 무슬림 2000여 명을 죽이는 참변이 발생해 사태가 일파만파 확대됐다. 양측은 이곳을 놓고 법적 공방을 벌였고, 인도 대법원은 2019년 힌두교 손을 들어줬다.

    힌두교 사원서 총선 출마 의사 내비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가 1월 22일(현지 시간) 인도 아요디아의 람 만디르 사원 개관식에 참석해 의식을 수행하고 있다. [인도 정부 제공]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가 1월 22일(현지 시간) 인도 아요디아의 람 만디르 사원 개관식에 참석해 의식을 수행하고 있다. [인도 정부 제공]

    독실한 힌두교 신자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아요디아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람 만디르’라는 힌두교 사원 건립에 나섰다. 이 사원은 2025년 12월 완공될 예정인데, 올해 1월 22일 1단계 개관식이 열리자 인도 전역에서 힌두교 신자들이 환호했다. 인도 정부는 람 만디르 사원이 완공되면 하루 최대 15만 명이 찾는 인도 최대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개관식에서 프라나 프라티쉬타(봉헌식)를 집전하며 4월 19일부터 6월 1일까지 실시되는 총선을 위한 사실상의 출정식을 가졌다. 세속국가에서 국가 지도자가 특정 종교 행사를 직접 주관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모디 총리는 “수 세기를 기다린 끝에 라마신이 도착했다”며 “앞으로 영광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을 들어온 인도는 세계 1위 인구 대국답게 이번 총선도 7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실시한다. 인도 유권자는 9억6000만여 명에 달하며, 이들은 105만 개 투표소와 전자투표기 550만 대를 이용해 투표할 예정이다. 모디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해 ‘힌두제국의 황제’로 등극하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그가 람 만디르 사원을 개관한 것도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워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포석이다. 영국 BBC 방송은 “람 만디르 사원은 힌두교의 바티칸으로 불린다”며 “이 사원은 2014년부터 인도를 통치해온 모디 총리의 세 번째 임기를 위한 핵심 프로젝트”라고 보도했다.

    이번 총선은 이변이 없는 한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이 승리할 것이 확실하다. 이 경우 BJP를 이끄는 모디 총리가 3연임할 전망이다. BJP는 2014년과 2019년 총선에서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당(INC)에 압승했다. 모디 총리가 2029년까지 총리직을 맡는다면 통치 기간이 15년이나 된다. 이는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초대 총리(16년 9개월)와 그의 딸 인디라 간디(15년 11개월) 이후 가장 길다. 모디 총리는 인도 건국 이래 가장 위대한 지도자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인도 힌두교 신자는 대부분 모디 총리를 ‘힌두 흐르데이 삼라트’(힌두 마음의 황제)라고 부르며, 힌두교에 대한 모디 총리의 헌신에 깊은 사랑과 존경을 표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하층 카스트 출신으로 인도 총리가 된 최초 인물이다. 말 그대로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 구자라트주 바드나가르의 가난한 차(茶) 상인 집안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기차역 노점에서 차이(인도식 밀크티)를 팔았다. 인도 신분제인 카스트에 따르면 그의 집안은 바이샤와 수드라의 중간 계급인 간치에 속한다. 카스트는 브라만(성직자), 크샤트리아(군인·정치인), 바이샤(평민), 수드라(수공업 등 공인) 네 계급으로 나뉘며, 이 밖에 카스트에 끼지 못하는 불가촉천민 달리트가 있다. 모디 총리가 속한 간치는 사실상 수드라에 가까워 카스트의 최하층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지금도 자신을 ‘차이 왈라’(차 파는 장사꾼)로 부르는 등 하층민 출신임을 강조하고 있다.



    힌두 민족주의에 강한 신념

    모디 총리는 1971년 힌두 근본주의 단체인 인도국민의용단(RSS)에 가입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RSS는 1925년 이탈리아 파시즘에 기반해 설립된 곳으로, 마하트마 간디 암살 배후로 지목받는 과격 단체다. 이 단체는 인도가 힌두국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16~19세기 인도가 이슬람 무굴제국 지배를 받은 것을 치욕으로 여긴다. 모디 총리는 구자라트주에서 RSS 조직책을 맡았고 이후 RSS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BJP에 입당했다. 그는 당내 여러 요직을 담당하다가 사무총장까지 올랐으며, 2001년 구자라트주지사에 임명됐다. 이후 적극적인 규제 완화와 투자 유치로 인도에서 가장 낙후됐다고 평가받아온 구자라트주를 잘사는 지역으로 탈바꿈시켰다. 그가 총리에 선출될 수 있었던 것도 이때 성과가 크게 작용했다.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에 대해 강한 신념을 보여왔다. 그는 2002년 구자라트주 고드리에서 벌어진 힌두교 신자들과 무슬림의 유혈 충돌 사태 때 사실상 힌두교 신자 편을 들었다. 당시 원인 모를 열차 화재로 힌두교 순례자 59명이 사망하자 과격한 힌두교 신자들이 무슬림 소행이라며 폭동을 일으켜 무슬림 1000여 명을 학살한 일이 있었다. 모디 총리는 “폭동을 진압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힌두교 신자들은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구자라트주 폭동 사태에 대한 모디 총리의 책임론을 제기한 BBC 다큐멘터리 방영을 금지하기도 했다.

    모디 총리는 영국 식민지배를 경험한 적이 없다. 역대 총리들처럼 영국 유학은커녕 어학연수도 가지 않았고 영어보다 구자라트어와 힌디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인도 전역을 떠돌며 유명 힌두교 사원에서 힌두교 대가들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이른바 힌두트바(힌두 민족주의) 정책을 적극 추진해온 것도 이때 경험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인도 대신 바라트라는 국명을 사용했는데, 이는 힌두교 신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모디 총리의 요가 사랑도 힌두트바와 관련 있다. 그는 매일 ‘새벽 요가’로 하루를 시작하고, 정부에 요가와 전통의학을 담당하는 요가부까지 만들었다.

    재임 10년 차인 모디 총리 지지율이 80%에 달하는 만큼 BJP 승리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모디 총리는 인도 경제를 세계 5위로 끌어올리고, 국민 1억 명 이상을 중산층에 편입시키는 등 눈부신 성과를 거둬왔다. 실제로 인도 경제는 순풍에 돛을 단 듯 잘나가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기둔화에도 인도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인도 경제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세계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비중이 현재 16%에서 2028년 18%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 신용평가사 S&P글로벌과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인도가 10년 내로 일본과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IMF도 2027년 인도가 경제 규모 세계 3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제2의 메이크 인 인디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는 4월 19일부터 시작되는 총선을 앞두고 제2의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인도 정부 제공]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는 4월 19일부터 시작되는 총선을 앞두고 제2의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인도 정부 제공]

    모디 총리는 2026년까지 인도를 ‘글로벌 전자제품 허브’로 만들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2021년 750억 달러(약 101조5500억 원) 규모였던 전자산업 매출을 2026년까지 3000억 달러(약 406조2000억 원) 규모로 늘려 글로벌 공급망 강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모디 총리는 반도체, 전기차, 스마트폰 등 첨단 제품을 생산하는 외국 기업을 대거 유치하는 등 ‘제2의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실제로 인도 정부가 반도체 제조 공장 유치를 목표로 100억 달러(약 13조5400억 원) 보조금 지급 계획을 내놓자, 인도를 대표하는 기업 타타그룹 산하 타타일렉트로닉스가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PSMC와 함께 구자라트주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며 화답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도 구자라트주에 반도체 후공정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스마트폰의 자국 생산을 늘리고자 스마트폰 제조에 사용되는 부품의 수입관세도 대폭 인하했고 애플, 삼성전자 등 스마트폰 제조 기업은 인도에서 생산을 크게 늘릴 계획임을 밝혔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도 올해 인도에서 휴대전화 조립을 계획 중이며, 세계 최대 전기차 회사 테슬라도 인도에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의 야심찬 경제발전 계획에도 모디 총리의 힌두 민족주의 때문에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역사학자인 라마찬드라 구하 인도 크레아대 교수는 “모디 총리의 3연임으로 인도는 힌두제국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모디 총리는 2019년 제정됐다가 무슬림 반발로 연기한 시민권법을 이번 총선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시행하기도 했다. 이 법은 2014년 이전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등에서 박해받다 인도로 피난 온 특정 소수민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무슬림을 그 대상에서 제외해 무슬림 차별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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