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시네똑똑

젊은 세대는 어떻게 ‘오월 광주’를 대면하는가

강상우 감독의 ‘김군’

  •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yedam98@hanmail.net

    입력2019-05-2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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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1011 필름]

    [사진 제공 · 1011 필름]

    ‘제1광수’로 불리는 사나이가 있다. 흐릿한 흑백사진 속 그를 보고 일군의 사람은 북한군의 5·18 민주화운동 개입설을 굳게 믿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를 ‘김군’이라고 칭한다. 

    다큐멘터리 ‘김군’은 그렇게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눈매가 날카로운 한 사나이를 추적한다. 여러 시간대와 인물을 경유해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연민과 분노를 넘어 일정 정도 거리를 두면서 차근차근 실체에 접근해간다. 

    ‘중앙일보’ 사진기자였던 이창성은 2008년 사진집 ‘28년 만의 약속’을 발간했다. 영화는 이창성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목숨을 걸고 찍은 사진 가운데 탱크에 올라선 채 양손으로 기관총을 잡고 카메라를 쏘아보는 한 20대 시민군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으로 시작한다. 

    극우논객 지만원은 사진 속 인물을 5·18 민주화운동을 배후에서 주동한 북한 특수군 1호, 이른바 ‘제1광수’라고 주장한다. 근거는 사진 속 인물의 이목구비가 김창식 전 북한 농업상과 엇비슷하다는 게 다이다. 

    이창성의 필름에는 김군이 여러 차례 등장했지만 1980년 5월 이후 그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그를 찾는 사람도 없다. 강상우 감독은 김군을 아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나간다. 그는 과연 북한군 광수일까, 아니면 시민군 김군일까. 



    5·18 민주화운동 당시 21세 임산부였던 주옥은 전시회를 관람하던 중 그를 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민군 트럭에 주먹밥을 실어 나르면서 김군과 마주쳤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아버지 가게의 단골손님이던 그를 아버지는 김군이라고 불렀다. 주옥은 그를 광주천 선천다리 밑에 살던 넝마주이 청년으로 알고 있었다. 

    ‘제36광수’이자 북한 권력 서열 2인자인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지목된, 당시 19세였던 양동남은 김군과 같은 트럭을 타고 저항한 시민군이었다. 영화는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찾아 나서면서 김군의 실체에 다가선다. 구술 자료, 항쟁 사진과 기록 영상, 국내외 언론 보도, 연구서와 논문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진을 시간 순으로 엮어 서사가 점차 완전하게 구성된다. 5·18 민주화운동 이후 자취를 감춘 시민군 중에는 고아, 구두닦이, 넝마주이도 있었다. 이들은 사람이 하나 둘 죽어나가는 현장에서 누구보다 앞장섰지만 연고가 없기에 신고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희생자 통계에서도 누락됐고, 소문으로만 등장하고 사라지다 때로는 음모의 아이콘으로 소비됐다. 

    역사 발굴 현장에서 김군을 찾는 것은 가설과 증거로 역사의 틈새를 메우는 작업이다. 이렇게 구축된 한 시민군의 서사는 유령처럼 등장하고 사라지던 역사 속 인물을 구체적인 몸과 목소리를 가진, 증언하는 주체로 만든다. 강렬했던 항쟁의 시간을 거치며 트라우마와 신체적 고통을 안은 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 죄책감으로 수십 년을 견뎌낸 수많은 얼굴, 그들 모두가 김군이다. 

    영화는 박제화된 역사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서사로 만들어낸 젊은 세대의 ‘광주 기억하기’이며, 이웃이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없던 민초들이 스스로를 불태운 아름다운 기억의 채록집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욕당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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