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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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 인간관계 위해 잘못도 때론 덮어줘라

  • 입력2005-06-07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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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여름쯤 책을 출간하려고 출판사들과 접촉이 많았을 때다. 경영서적을 전문으로 출간하는 모 출판사와 구두계약 형식으로 합의가 돼 원고가 전달됐다. 그런데 4∼5개월 동안 나의 원고를 쥐고 있던 출판사 측에서 어느 날 회사 사정으로 출간이 어렵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책이 곧바로 출간될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계약 조건으로 위약금을 요청할까, 중간중간 잘 돼 간다고 거짓말을 한 대가로 앞으로의 비즈니스에 타격을 줄까, 아니면 없었던 일로 덮어야 하나.

    일단 과거의 내 비즈니스 관행을 되짚어 봤다. 철저한 응징이었던 것 같았다. 사회에 입문한 뒤 보고 배운 것은 받은 만큼 주는 것이었다. 아니 곱절로 되갚아 줬던 것도 같다. ‘장사의 세계에 내일은 없다. 오직 오늘의 이해관계만 존재할 뿐이다’는 말을 생존철학으로 알고 성실히 살아가는 선배들의 모습을 철저히 신봉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어제의 비즈니스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화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 진행자요, 강사요, 더 나아가 국민의식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문화전도사(Interculturalist)다. 분명 과거와는 달랐고 달라야 했다. 과거가 단기 지향적이었다면 이제는 장기 지향적이이어야 했다. 과거가 성취나 결과 지향적이었다면 이제는 관계나 과정 지향적이어야 했다. 과거가 과거 지향적이었다면 이제는 미래 지향적이어야 했다.

    전화를 걸어 출판사의 담당자를 만나자고 했다. 상기된 표정으로 나온 그에게 나는 이전의 일을 따지고 책임을 묻기보다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고 대책을 구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성경구절을 되새기면서. 그 담당자는 잘못을 인정하고 원고를 타 출판사에 소개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는 그 일을 잊었다.



    그 뒤 우연히 더 잘 알려진 좋은 이미지의 중견 출판사와 연결이 됐다. 그 출판사는 단지 상업적인 목적만 가지고는 이득을 많이 낼 수 없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주장하는 저자의 의견을 십분 이해해 주며 책의 편집과정에 특별한 신경을 써줬다. 당초 한 권으로 예정했던 책이 두 권으로 나뉘면서 내용도 풍부해지고 독자의 입장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시기는 늦어졌지만 결국 좋은 책을 두 권 냈다.

    어느 날 출판계약을 어겼던 그 담당자가 인터넷과 관련한 중견회사로 영전했다는 소식이 들려 안부 겸 축하 전화를 걸었다. 반가워하며 꼭 한번 방문해달라고 해 오랜만에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마침 다른 내용의 책 출간을 위해 출판사를 물색하고 있던 내가 그에게 동향을 묻자 그는 선뜻 나서서 알아봐 주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그의 직업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의 사무실을 돌아나오는 발걸음이 왠지 가볍게만 느껴졌다. 매너는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임을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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