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0

2004.11.18

‘그들만의 사이좋은 월드’

  • 입력2004-11-12 16: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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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만의 사이좋은 월드’
    어렸을 적 어머니는 돈 걱정을 하며 한숨 쉬곤 했지만 나는 우리 집 형편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설이나 TV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의 조건을 충분히 갖췄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계 상황에 끝없이 곤란해했던 사연이라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한 상대적 열등감 탓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당신들의 친구나 이웃, 친척들과 달리 ‘하늘로 향한 재테크’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식들이 성장하는 다사다난한 시기에 돈으로 인한 위기를 여러 번 겪어야 했다. 그 곁에서 나 역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압구정동의 또래 문화는 빠듯한 용돈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기엔 지나치리만치 깔끔하게 채워져 있었다.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라는 더 넓은 사회로 나오자마자 나는 성장환경에서 누렸던 혜택을 새로운 비교집단과 어울리며 당장 실감할 수 있었다. 집에선 등록금 외에 별다른 지원을 해주지 않았던 만큼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의 매운맛에 일찍 길들여져야 했지만 마음이 괴롭진 않았다.

    스타일을 구기고 인생에 주름 잡아나가는 걸 벼슬쯤으로 여기는 인문학 전공자에게는 자연스러운 환경이었다. 부모님의 네트워크에서 독립해 나와 사회인으로 스스로의 생활을 온전하게 감당하게 되면서 나의 생활고는 일상이 되었다. 불안정한 수입 탓에 쉴새없이 은행 빚을 졌고 죽도록 고생해서 얼마 전에야 마련한 작업실은 동굴 같은 작은 원룸일 뿐이다. 그래도 내가 밥 벌어먹는 문화판의 동료 프리랜서들은 웬만한 경우 아니면 대부분 가난해서 나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한다. 그리고 이즈음 싸이월드에 맛을 들이게 되었다.

    싸이월드의 독보적인 기능이라면 생년과 이름으로 지인의 미니홈피를 추적할 수 있다는 점인데, 특히 학교집단과 같은 규모가 큰 커뮤니티에 쓰임새가 크다. 한 친구의 미니홈피에서 끝도 없는 파도타기를 통해 동창들의 온갖 세상살이를, 공개된 범위 내에서 실컷 둘러볼 수 있는 것이다. 졸업 후 두세 명의 동창 정도와 친분을 유지하면서 ‘아이러브스쿨’ 열풍도 무심하게 넘겼던 나로서는 오랜만에 보는 동창들 얼굴들을 진기한 구경거리로 삼았다. 그런데 그들의 홈피에 다녀간 흔적들은 대개가 내가 알 만한 이름들이었다. 분명히 다른 대학부터 대학원, 학원이나 직장까지 10년이 넘는 세월만큼의 사회 경험을 쌓았을 텐데, 가장 긴밀하게 유대하는 집단이 가족과 고등학교 이전까지의 동창들이라니 뜻밖이었다. 의식적이건 아니건 압구정동 문화를 중심에 두고 배타적으로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정립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결과였을 것이다.

    계급이란 별게 아니다.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의 인맥까지 일찌감치 확정하여 그 집단을 폐쇄적으로 유지하는 과정에서 선명해지는 성질의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일체의 상실감이나 결핍감에 시달리지 않는 말끔한 얼굴이 부러웠던 몇몇 아이들의 사적 공간에 침투하기는, 같은 교실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접근이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세대끼리 통할 수 있는 사고와 감각을 발견하면서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의 묘한 조화랄까. 이상한 매력과 공감에 취하기도 했다.



    얼마 전 별 교류가 없었던 그 시절의 지인들과 한 친구를 매개 삼아 어울렸던 이유도 교감의 가능성에 대한 낭만적인 감상 덕이었다. 그러나 한 시간 남짓 후엔 학창 시절보다 더한 심리적인 거리감에 당황하게 됐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경험하지 않았으면서도 나보다 우월하다고 자신하는 그들 앞에서 계단적인 삶의 성과가 비루해졌기 때문이다. 생계 문제와 씨름하는 내 생활 방식에 관심 없어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우연하고도 유쾌하게 서로의 인생을 슬쩍 통과해갈 수 있겠다 싶었던 착각을 민망해하며 나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밥값을 몽땅 계산해줘서 고맙다고 중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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