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2

2007.07.03

“와인 값 인상 안 하면 폭력” 프랑스의 이상한 테러

  • 입력2007-06-27 15:3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와인 값 인상 안 하면 폭력” 프랑스의 이상한 테러

    포도를 수확하고 있는 부르고뉴 농민들.

    만화책 ‘신의 물방울’ 덕분에 한국에서 와인 애호가가 크게 늘었다는 얘기를들었다. 한국 기업체 간부들 사이에서 이 책이 필독서이며 책에 소개된 와인이 금방 동이 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특파원으로 발령받은 3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와인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데 만화책 한 권이 음주문화를 바꿔놓다니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이다.

    ‘와인은 비싸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한국 소비자들로서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 최근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와인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와인 테러리스트’가 등장한 것이다. 크라브(Crav)라는 이름의 이 단체는 이슬람 무장단체처럼 검은 복면을 쓰고는 대통령 앞으로 “정부가 와인 가격을 인상하지 않으면 포도주 대신 피가 흐를 것”이라며 동영상으로 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이 단체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소규모 ‘테러’가 몇 군데서 일어났다. 외국산 와인을 판매하는 슈퍼마켓이 소형 폭발물에 의해 피해를 보았고, 외국산 와인을 실은 트럭이 강도를 당하기도 했다. 이런 테러에서 주동자들이 인명 피해가 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 흔적이 분명해 대규모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올해가 와인 생산 농민들이 무장폭동을 일으킨 지 100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프랑스 당국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시 진압 과정에서 농민 6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크라브의 경고로 프랑스인들은 와인 생산업자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다. 한 와인 생산자는 “1유로에 판 와인이 파리의 레스토랑에선 15유로에 팔리고 있다”며 개탄했다. 그만큼 중간 상인이 챙기는 게 많다는 뜻이다.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등에서 생산된 와인에 점점 시장을 내주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최근 보르도에서 열린 와인 엑스포에서 프랑스 와인 업자들은 럭비공 모양으로 생긴 와인병, 레이스 장식을 한 와인병, 복잡한 라벨을 단순화한 와인 등을 내놓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마케팅에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 와인의 품질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거기에다 공격적인 마케팅까지 더해질 분위기다. 프랑스 와인의 반격이 바야흐로 시작되는 것일까. 이를 통해 판매가 늘고 와인 생산업자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진다면 ‘와인 테러리스트’라는 희한하기 짝이 없는 조직도 사라지지 않을까.

    - ‘금동근 특파원의 파리산책’은 기자의 본사 복귀로 이번 호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성원해준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