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3

2015.01.26

스프링캠프, 소리 없는 아우성

구단은 장소 섭외 전쟁, 선수들은 주전 확보 전쟁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입력2015-01-26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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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프링캠프, 소리 없는 아우성

    김기태 KIA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이 1월 16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투수 20명, 야수 26명 등 총 46명이 참가하는 스프링캠프를 통해 팀 재건의 첫발을 내딛었다.

    선동열 전 감독은 2012년 봄, 삼성 감독에서 물러난 지 1년여 만에 KIA 사령탑에 올라 일본 오키나와에서 2차 스프링캠프를 이끌었다. 삼성과 연습경기를 앞두고 선 감독에게 “삼성에서 가장 탐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선 감독은 빙그레 웃으며 “오승환과 안지만 등 선수들이 가장 탐난다. 그리고 바로 이곳이다”라고 말했다. 선 감독이 말한 ‘이곳’은 오키나와 온나손의 아카마 볼 파크였다.

    NC 운영팀 직원들은 2014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오키나와 전체를 샅샅이 살폈다. 위성사진으로 야구장이 있는 위치를 지도에 표시한 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훈련장 섭외에 실패했다. 탐나는 시설을 갖춘 야구장은 이미 일본이나 한국 프로팀이 선점한 상태였다. 스케줄이 비어 있는 곳은 프로팀이 쓰기엔 아쉬움이 큰 상황. 결국 NC는 2013년과 같은 대만에 2차 캠프를 차렸다. 날씨는 일본보다 따뜻했지만 수준급의 연습경기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같은 시간 넥센은 야구장도 없이 오키나와에 짐을 풀었다. 훈련장을 갖고 있는 일본 팀과 한국 팀의 쉬는 날짜, 훈련 스케줄을 모두 파악해 ‘퐁당퐁당’ 옮겨 다니며 훈련했고 최대한 많이 연습경기를 치렀다. 대만에서 그 소식을 들은 김경문 NC 감독은 “그 방법이 있었는데 아쉽다”라고 말했다.

    선동열 전 감독이 가장 탐냈던 ‘그곳’

    2015시즌을 향한 소리 없는 전쟁, 스프링캠프가 시작됐다. 프로야구 10개 팀은 1월 15일과 16일 각각 미국 애리조나와 플로리다, 괌, 일본 미야자키와 오키나와 등으로 출발했다. 스프링캠프에서는 팀 내 주전이 되기 위한 치열한 내부 경쟁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에 앞서 각 구단의 자존심이 걸린 장소 섭외 전쟁이 격렬하게 이뤄진다.



    선 전 감독은 일본 주니치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스프링캠프 장소였던 오키나와 인사들과 친분을 다졌다. 주니치 감독이던 호시노 센이치 전 라쿠텐 감독의 영향이 컸다. 오키나와 관광홍보대사까지 맡은 선 전 감독은 삼성 사령탑 시절 온나손 아카마 볼 파크와 장기 계약을 맺는 데 큰 구실을 한다.

    삼성은 온나손 측에서 실내 연습장 건립을 추진하자 일정 부분 투자까지 하며 우선권을 확보했다.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 내야 훈련장, 체력 훈련장, 불펜, 실내 연습장까지 갖춘 아카마 볼 파크는 국내 모든 구단이 부러워하는 최고 시설을 자랑한다.

    2010시즌을 끝으로 선 전 감독이 삼성 유니폼을 벗고 2012시즌 KIA 감독이 되면서 이용 권리를 놓고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기도 했지만, 앞서 삼성의 실내 연습장 건립 투자 약속이 있었고 선 전 감독이 신의를 지키면서 깔끔하게 교통정리가 됐다.

    망설임 없이 물러났지만 선 전 감독은 종종 “정말 탐난다”는 말로 부러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2012년 오키나와에 새롭게 건설되기 시작한 킨 구장의 우선사용권을 재빨리 확보해 그 한을 풀기도 했다.

    2015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도 각 팀은 다른 구단보다 좋은 시설, 최고의 연습경기 상대를 확보하고자 치열한 정보전을 펼쳤다. 특히 일본팀이 많고 기후가 따뜻한 오키나와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뜨거웠다. 결국 삼성, SK, LG, 넥센, KIA, 한화가 오키나와에서 2차 캠프를 치르게 됐다.

    신생팀 kt는 그동안 KIA가 우선권을 갖고 있던 미야자키 휴가에서 1차 캠프, 이어 규슈에서 더 남쪽인 가고시마로 이동해 2차 캠프를 치른다. 휴가는 조범현 감독이 KIA 시절 이용하던 스프링캠프 장소다. 그곳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의 초석을 다진 좋은 기억도 갖고 있다.

    스프링캠프, 소리 없는 아우성

    kt 선수단이 2014년 3월 미국 애리조나 1차 캠프에서 훈련 전 미팅을 하고 있는 모습.

    스프링캠프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한국 프로야구 첫 해외 전지훈련은 출범 이듬해인 1983년 이뤄졌다. 우승팀 OB(두산 전신)가 대만과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그러나 80년대 초·중반까지 해외 스프링캠프의 이점은 크게 강조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겨울 계곡 얼음을 깨고 알몸으로 입수하거나 겨울 산행 등 정신훈련이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선수, 특히 투수가 추운 날씨에 훈련하는 것과 따뜻한 기후에서 몸을 만드는 것이 부상 방지나 근력 향상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수많은 결과로 체득했고 아낌없는 투자가 시작됐다.

    왜 미국, 일본으로 떠나는가

    각 팀이 해외로 떠나는 이유는 따뜻한 기후뿐이 아니다. 1985년 삼성은 현재 류현진이 뛰고 있는 LA 다저스와 합의해 미국 플로리다 베로비치 캠프에서 함께 훈련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1985년 LA 다저스와 훈련하며 지금 삼성의 수비 포메이션이 시작됐다. 그 후 많은 코치가 한국 야구에 맞게 변화를 줬지만 그 근간은 다저스의 ‘다저웨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의 수비 포메이션, 특히 희생번트를 막아내는 능력은 리그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양상문 LG 감독은 “삼성 수준의 수비 시스템을 만들려면 정상급 선수를 확보해도 2~3년 이상 걸린다”고 극찬했다.

    삼성은 1985년 스프링캠프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수십 년 동안 고안된 수비 시스템을 만났고, 그것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팀에 큰 자산이 되고 있다.

    일본 캠프의 강점도 일본 프로야구 팀들과의 연습경기다. 정교한 제구, 정확한 타격, 완벽한 수비 능력 등은 국내 선수들에게 큰 자극이 된다. 김경문 감독은 “과거 아키야마 고지 전 소프트뱅크 감독이 2군을 맡고 있을 때였는데, 연습경기에 2군 유망주 선수들만 내보내 화가 난 적이 있었다. 지금은 2군이 아닌 1군도 한국팀과의 경기에 정예멤버가 많이 나온다. 그만큼 일본팀들도 우리와의 연습경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NC는 올해 유일하게 2차 캠프에서 일본에 입성하지 못하는 팀이 됐다. 미국 애리조나와 플로리다에서 1차 캠프를 치르는 팀들은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시작되는 2월 중순부터 미국 구단의 훈련장을 비워줘야 한다. 그 대신 대부분 일본에서 실전 위주의 평가전을 갖는다. 한국의 쌀쌀한 날씨와 시차 적응에 큰 도움이 되는 기간이다.

    그러나 일본 내 야구장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NC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애리조나에서 1차 캠프가 끝나면 일본이나 대만이 아닌 미국 LA 인근으로 이동해 현지 대학팀들과 연습경기를 하기로 한 것이다. 따뜻한 날씨에서 개막 직전까지 훈련해 부상을 방지하고 체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곧 시즌을 앞둔 프로팀과 대학선수들의 집중력에는 큰 차이가 있어 연습경기 효과에 물음표가 따른다. 특히 캠프에서 치르는 연습경기는 각 팀 새로운 외국인 선수의 상태 파악, 투구 습관 읽기 등 정보 획득 효과도 있기 때문에 홀로 떨어진 NC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각 팀의 관심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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