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0

2014.08.11

불쑥 닥친 불일치 시대의 삶

고령화·저성장·가정 붕괴 등 ‘리스크 관리 능력’이 곧 생존력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4-08-11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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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쑥 닥친 불일치 시대의 삶

    노년의 개인 삶은 부부 중심의 경제생활로 나아가고 있지만, 소비와 저축의 목적은 자녀와 연관돼 있다.

    ‘미스매칭의 시대.’

    미스매치(mismatch)는 돈을 빌리는 기간과 운용하는 기간의 만기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단기로 자금을 빌려 장기로 운용하는 것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등 주요 금융위기 때마다 단기 자금의 미스매칭 문제가 불거지곤 했다.

    미스매치 의미를 더 넓히면 사람이나 사물 간 부조화, 불일치를 의미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여러 미스매칭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수명 증가에 따른 고령화, 경제 저성장, 그리고 청년실업 증가 등이 미스매칭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기대여명과 건강수명, 직업 정년과 일의 정년, 가족 부양 시스템과 사회 부양 시스템, 자녀 교육비 증가와 청년실업, 자녀 중심 경제와 노인 중심 경제는 대표적인 미스매칭 현상들이다.

    1990년대 말 한 유가공업체는 신제품을 발매하며 ‘생명 연장의 꿈’이라는 광고 카피를 썼다. 당시만 해도 생명 연장, 즉 ‘장수=건강’이란 콘셉트가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장수시대가 열린 지금은 ‘수명의 양’에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수명의 질’로 관심이 옮아가고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죽자는 ‘9988’이란 숫자 조합까지 등장했다.

    10년 앓다 죽는 사회가 된 한국



    문제는 기대여명과 건강수명이 불일치한다는 점이다. 2011년 한국인의 기대여명과 건강수명은 각각 81.2세, 70.74세였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다시 말해 우리나라 사람은 10년 정도 질병을 앓다 사망하는 셈이다. 불일치 기간이 10년이나 된다.

    직업 정년과 일의 정년 불일치도 만만찮다. 과거만 해도 직업 정년과 일의 정년 시기는 대체로 비슷했다. 직장은 곧 일이었고, 정년퇴직은 일에서의 퇴직이었다. 그리고 5~10년간 말 그대로 노후를 즐기다 인생을 마감하는 게 보통 근로자 삶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수명연장으로 이런 공식이 무너졌다. 실제 우리나라 사람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오래 일한다. 71세까지 일하는데, 남성의 기대여명이 77.65세(2011)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남성은 평균적으로 죽기 약 7년 전까지 일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일이 인생 의미나 보람보다 먹고살기 위한 근로라는 점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상태에서 수명이 늘다 보니, 근로 기간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령 일과 정년의 불일치가 있더라도 부양 시스템이 튼실하면 삶의 리스크는 줄어든다. 그러나 우리나라 부양 시스템은 커다란 변혁기에 놓여 있어 고민을 깊게 한다. 부양 시스템은 경제 구조와 가족, 그리고 가치관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농촌 기반, 대가족 시대에는 다산(多産)과 지역 공동체가 부양 시스템의 근간을 이룬다. 산업화로 이농과 도시화가 진전하면서 일상생활과 부양의 분리가 일어난다. 즉 따로 살면서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일반화한다.

    이런 시스템의 전제조건은 자녀의 경제력이 담보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불일치를 경험하고 있다. 부모 세대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첫 세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저성장과 정보기술(IT) 발달, 세계화와 고령화가 만나면서 부모 세대보다 못한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불쑥 닥친 불일치 시대의 삶

    기초연금 접수가 시작된 7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충정로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한 노인이 상담하고 있다. 기초연금은 정부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하위 70%에게 매달 최대 20만 원을 지급하는 제도.

    당연한 얘기지만 저성장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게다가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국내보다 해외에 투자하기 시작한다. 세계화는 기업을 유치하려는 ‘제도 경쟁’을 촉발했다. 세금, 고용, 소비시장과 인접성 등의 제도적 장점을 내세워 각 국가와 지역은 기업을 유치해 성장과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실제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도 제도 경쟁에 따라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지역이나 국가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결국 국내보다 해외 인력 충원으로 이어지고, 국내 일자리 감소라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그 집중적인 피해자는 청년층이 될 개연성이 높고, 이는 실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일례로 삼성전자의 경우 2010년 이후 국내에서 2만1000명의 고용 인원 순증이 있었지만 해외에서는 11만 명이나 됐다. 현대자동차도 고용 인원이 국내에서는 6400명, 해외에서는 1만8000명이 순증했다.

    자식을 통한 부양 시스템이 약화하면 부모 세대가 자기 노후를 위해 더 많이 저축하거나 사회가 그런 시스템(국민연금)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부모 세대 저축률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 뿐 아니라, 국민연금도 재정 고갈을 우려해 소득 대체율을 지속적으로 낮춰왔다.

    자녀 중심에서 노인 중심 경제로

    불쑥 닥친 불일치 시대의 삶
    가정 내에서도 현재와 미래의 불일치가 일어나고 있다. 자녀 중심 경제와 노인 중심 경제 간 제로섬 게임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자녀가 결혼하기 전까지 모든 소비와 저축 목적이 자녀와 연관돼 있다. 하지만 개인의 삶은 자녀와 분리된 노인 부부 중심의 경제생활로 나아가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이엔 철저한 단절이 있다. 자녀의 대학 입학과 동시에 삶의 분리가 시작되는 서구와 달리 결혼 때까지 분리되지 않는 우리나라 구조에선 단절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다.

    미스매칭은 본질적으로 리스크 관리 문제다. 금융시장에서 단기로 조달한 자금을 장기로 운용할 경우 평상시엔 괜찮지만 급격한 변화 시기엔 대응이 불가능하다. 리스크 관리가 안 되는 것이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명, 일, 가족, 그리고 노후의 부양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미스매칭도 리스크 관리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 앞으로 리스크 관리 능력은 문자 해독 능력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필수 능력이 될 것이다. 리스크 관리는 정답이 아닌, 다음과 같은 올바른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질문에 당장 완벽하게 대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리스크 실체를 알고 올바른 질문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위기가 왔을 때 전혀 다른 의사결정을 내리게 될 테고, 어쩌면 그 결정이 이후 삶의 질을 규정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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