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4

2014.04.21

윤심덕과 김우진을 다시 기억함

뮤지컬 ‘글루미데이’

  • 구희언 ‘여성동아’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4-04-21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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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심덕과 김우진을 다시 기억함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에서 한 남자와 여자가 바다에 투신했다. 신문 1면을 장식한 사건의 주인공은 극작가 김우진과 조선 최고 소프라노 윤심덕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투신을 목격한 사람도,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이 사건은 미스터리로 남는다.

    창작 뮤지컬 ‘글루미데이’는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이다. 김우진과 윤심덕의 이야기는 1991년 ‘사의 찬미’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시대 불문하고 드라마틱한 실화는 창작자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다. 맨땅에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하는 창작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이야기에 개연성을 더하지만, 이미 알려진 결말을 바꿀 수 없기에 정해진 목적지까지 달려가는 과정을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려면 고도의 역량이 필요하다.

    제목처럼 상당히 ‘글루미(gloomy·음울한)’한 작품이다. 시종일관 어둡지만, 상당한 몰입도를 자랑한다. 투신 5시간 전부터 줄어드는 시간과 함께 붕괴되는 남녀의 감정선을 보여주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의 인과를 맞춰간다. 윤심덕의 히트곡 ‘사의 찬미’도 피아노,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들을 수 있다.

    이야기에 미스터리를 더하는 건 윤심덕과 김우진을 이어주는 허구의 인물 ‘사내’다. 마지막까지 본명과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인물로, 공연을 제작하려는 김우진의 조력자지만 어느덧 그를 압박하면서, 결말을 희망차게 바꾸려는 김우진을 막아서며 죽음을 찬미한다. 사내는 어쩌면 암울했던 시대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론 악마처럼 잔혹하고, 사신처럼 섬뜩하다. 초연에 이어 사내 역을 맡은 이규형은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내는 초월적 존재이자 운명이 의인화된 인물”이라고 밝혔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사의 찬미’ 노래 가사와 같은 삶을 산 윤심덕과 김우진은 정말 현해탄에서 잠든 걸까. 실종 4년 뒤인 1930년 ‘두 사람이 신분을 숨기고 이탈리아 로마에 숨어 산다’는 의혹이 제기되지만, 이듬해 이탈리아 주재 일본영사관은 “그런 이름의 조선인이 살지 않는다”고 유족에게 통보했다.



    그렇다면 작가 생각은 어떨까. 극을 여닫는 사내의 노랫말에 힌트가 있다. ‘금지된 사랑 금지된 낭만 허락되지 않은 이야기 아름답지 않은 결말/ 사라진 한 남자 사라진 한 여자 난 이 모든 일의 목격자 말할 수 없는 비밀/ 사라져라 비밀이 되어라 찬미하라 비극의 결말을/ 진실은 바닷속에 감춰라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이 죽음의 비밀.’ 4월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윤심덕과 김우진을 다시 기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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