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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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학생 많으면 글로벌 대학인가

캠퍼스 내 물과 기름처럼 분리 여전…문화·언어 장벽 낮추려는 노력 필요

  • 오소영 동아일보 인턴기자 pangkykr@naver.com

    입력2014-03-10 10: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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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각 대학은 너도나도 ‘글로벌’(global·세계적) 대학이라고 자랑한다. 대학 인터넷 홈페이지에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과 어울리는 사진을 올려놓고 홍보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글로벌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많다.

    겉으로 보면 우리나라 대학의 글로벌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는 화려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외국 학생 수는 2004년 1만6832명에서 2012년 8만6878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4년제 대학의 전체 교수 가운데 외국인 교수 비율 역시 지난해 7.5%(5126명)로 2005년 3.3%(1671명)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올해도 입학을 앞두고 대학별로 외국인 학생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1월 23일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는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세부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 골자는 연구교육형, 기업활동형, 미래잠재형 등으로 나눠 세부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 이를 통해 미래부는 현재 연간 2만5000명 수준의 외국 우수 인재를 2017년까지 3만7000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한국인에게 외국 학생은 짐

    하지만 대학의 글로벌화에 대한 학생들의 체감도는 상당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개강을 앞둔 2월 25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연세대를 찾았다. 이 대학도 ‘글로벌’을 강조하는 대학 가운데 하나다. 캠퍼스 안 백양로에서 여러 국적의 유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대학 정문에선 외국 학생들이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 대학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윤성훈(26·가명) 씨는 “글로벌 대학이 정말 속까지 글로벌한지는 의문”이라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차라리 한국 학생끼리 조모임을 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한국 학생은 A에서 F까지 성적이 나뉘지만 외국 학생은 통과 혹은 낙제(pass or fail)로 성적을 받아요. 낙제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보니 외국 학생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요. (외국 학생들과) 말도 안 통해 불편한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고요.”

    대학의 경우 진정한 글로벌화는 한국 학생과 외국 학생이 유기적으로 어울려 공부에 성과를 내고 서로의 나라에 대한 이해 폭을 넓히는 등 시너지 효과를 낼 때 붙일 수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글로벌’하다는 대학 안에서 한국 학생과 외국 학생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돼 있다. 한국 학생은 “외국 학생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불만이고, 외국 학생은 “한국 학생들이 자신을 왕따시킨다”고 섭섭해한다. 외국 학생이 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맞지만 ‘무늬만 글로벌 대학’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학생과 외국 학생이 서로 겉도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서울대 공과대학원을 졸업한 김정혁(30·가명) 씨는 2007년부터 대학원 졸업 전까지 연구실에서 외국 학생 6~7명과 함께 생활했다. 보통 연구실에 학생이 10명 정도 있어 서로 마주칠 일이 많았지만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외국 친구는 없다.

    2007년부터 김씨와 같은 연구실에 있었던 말레이시아 학생은 기본적인 의사소통 외에는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결국 김씨와 다른 한국 학생이 그 외국 학생의 일까지 떠맡았다. 심지어 김씨는 외국 학생이 프로젝트를 받을 수 있도록 제안서를 쓰고 업적 평가를 비롯한 기타 잡일까지 맡아야 했다. 김씨는 “솔직히 외국 학생을 우리가 먹여 살린다고 생각한다. 불공평한 거 아니냐”고 한탄했다.

    외국 학생 많으면 글로벌 대학인가

    경희대 호텔경영학과에 유학 중인 중국인 마명원 씨.

    반면 외국 학생들은 오히려 “한국 학생들이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외국 학생은 무조건 한국어를 못한다’는 지레짐작이다. 이 때문에 외국 학생은 한국 학생들로부터 소외되기 십상이다. 경희대 호텔경영학과에 유학 중인 중국인 마명원(24) 씨는 “한국 학생들이 우리(외국 학생들)와 같은 팀인 걸 싫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외국 학생이라 한국어를 거의 못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말했다.

    외국인 학생이 한국 학생보다 잘하는 분야에 열심히 참여해도 한국 학생으로부터 배척당하는 경우도 있다. 마씨와 같은 학과에 유학 중인 핀란드인 메리(21) 씨는 영어 전용 수업을 들으며 한국 학생 3명과 조모임을 했다. 본인이 영어를 잘하니 적극적으로 과제를 준비해 갔지만 한국 학생들은 메리 씨가 준비한 자료를 사용하지 않았다. 메리 씨는 “한국 학생들이 영어로 된 자료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 같았다”며 “한국 학생끼리 이야기하고 (자신이 준비한) 자료를 쓰지 않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화 차이에서 발생하는 소외도 있다. 한국 대학생 고유의 술 문화 때문에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경희대 경영학과 무함마드(27) 씨는 “한국에선 술이 아니면 친구를 사귈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요르단 출신으로 이슬람교도인 무함마드 씨는 이슬람법에 따라 금주를 생활화하고 있다. 그는 친구를 사귀려고 어쩔 수 없이 술을 조금 마시긴 하지만 여전히 술자리가 부담스럽다.

    외국 학생들 “나 좀 껴줘요”

    이런 엇갈림 양상은 국적이 다른 학생 사이의 실질적 교류가 제한적이어서 생기는 문제다. 글로벌화를 표방하는 대학에서 다른 국적 학생과 활발히 교류하는 학생은 대부분 멘토링이나 교류 동아리 활동을 했다. 이는 학생 개인 탓이라기보다 각 대학이 학생 유치를 위한 홍보에만 열을 올릴 뿐 학생들의 문화적 차이와 언어적 장벽을 낮추려는 노력은 뒷전이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외국 학생을 대상으로 한 언어 학습 지원센터를 대폭 늘려야 한다. 실제 미국 각 대학의 경우 교내에 외국 학생을 위한 작문 교습 센터(writing center)가 있어 숙제를 가지고 가면 검토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엔 관련 시설이 전혀 없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한국어학당이 전부. 그것도 있는 대학을 손에 꼽을 정도다.

    크게 보면 외국 학생의 유입은 한국과 외국 학생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나영 중앙대 외국인인권센터장(사회학과 교수)은 “학생들은 여러 국적의 사람을 만날수록 다양성에 대한 민감성이 제고된다”며 “일상생활에서 타자를 향한 감수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살리려면 각 대학이 좀 더 세심한 배려와 투자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학교에서 단순히 외국 학생을 모집만 해놓고 방치해선 안 된다”며 “외국 유학생을 위한 특화된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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