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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란, 핵 중단한 손에 ‘패권’ 쥐나

핵협상 타결 경제 회생에 숨통…중동 파워 시프트 주변국 우려 목소리

  • 정미경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이란, 핵 중단한 손에 ‘패권’ 쥐나

“아무래도 힘들겠다.”

11월 20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이란과 P5+1(유엔 상임이사회 회원 5개국+독일) 간 이란 핵협상. 협상 둘째 날인 21일 저녁 회의장인 인터콘티넨털 호텔 부근 레스토랑에 모인 미국 대표단 입에서는 이런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란이 새로운 요구를 많이 들고 나와 협상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협상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은 “내가 직접 가겠다”고 했다. 장관의 해외 방문은 많은 수행원과 기자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일이라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케리 장관은 또 한 번 제네바행(行)을 택했다. 2주 전 협상 때도 제네바까지 날아갔다 빈손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케리 장관이 직접 이란을 설득한 덕에 합의 직전까지 갔기 때문이다.

30년 넘은 갈등 해결 실마리

11월 22일 저녁 케리 장관은 도착하자마자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부 장관과 마주 앉았다. 그리고 “이번 협상에 실패하면 미국 의회를 더는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이란이 지금 받고 있는 경제 제재를 완화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미 의회가 추진 중인 추가 제재도 피하기 힘들다는 것. 서방의 경제 제재를 가장 두려워하는 이란은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다.



11월 23일 이미 협상 시한이 지났지만 협상은 계속 이어졌다. 오후 10시를 넘어서자 피곤에 지친 각국 협상단은 호텔로 돌아갔다. 그러나 협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전화기를 들고 다시 협상이 시작됐다. 보좌관들은 서류를 들고 호텔 복도를 뛰어다녔다. 24일 오전 2시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미국 대표단은 문자메시지를 날렸다. ‘DEAL(협상 성사).’ 알파벳 단 4자였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각국 관계자와 기자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한밤중인 오전 3시 이란과 P5+1 대표들은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 모여 합의안에 서명했다.

협상에 합의하면서 30년 넘은 이란 핵 갈등은 해결 실마리를 찾았다. 이란 핵협상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열렸지만 이처럼 구체적인 합의안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합의안은 즉시 공개됐다.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일시 중단하는 대신 제재를 일부 완화해주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번 합의는 잠정합의로 6개월 동안 적용된다. 6개월 동안 이란 핵문제의 영구적 해결을 위한 포괄적 합의를 모색하는 첫 단계에 해당한다.

2위 원유생산국 ‘오일 달러’ 기대

이란, 핵 중단한 손에 ‘패권’ 쥐나
먼저 이란은 우라늄 농축 비율을 5% 이하로 제한하기로 했다. 농축 비율 5%는 에너지 생산용으로는 충분하지만 서방 국가들이 우려하는 핵폭탄 제조는 불가능하며 추가 농축이 필요한 수준이다. 이란이 이미 생산해 보관 중인, 무기화가 가능한 농축 비율 20%의 고농축 우라늄은 희석하거나 산화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원심분리기와 농축 시설도 새로 건설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현재 가동 중인 원심 분리기와 농축 시설을 해체해야 한다는 P5+1의 주장은 수용되지 않았다.

이란은 플루토늄을 추출하려고 아라크 공장에 건설 중인 중수로 시설에 대해 추가 연료를 공급하지 않고 공장 가동을 막기로 했다. 이란은 연료 공급만 중단하겠다고 주장했지만 공장 가동을 완전히 중단해야 한다는 서방 측 의견이 관철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나탄즈, 포르도 등 이란 농축 시설에 대해 매일 사찰을 실시하고 감시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 권리 인정은 막판 쟁점이었다. 자리프 장관은 “우라늄 농축 권리를 명시해야 이란에 돌아가서 합의안을 ‘세일즈’할 수 있다”며 버텼고, 케리 장관은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합의안에는 공식적으로 우라늄 농축 권리 인정을 명시하지 않되, ‘핵확산방지조약(NPT)이 허용한 평화적 핵에너지 권리는 인정한다’고 밝히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이란이 그동안 줄기차게 핵개발 권리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보면 비록 간접적으로나마 핵 주권을 인정받은 것은 중요한 승리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은 이란의 합의 이행 대가로 60억~70억 달러 규모의 제재 완화에 나서기로 했다. 이란은 해외에 묶인 석유자산 가운데 42억 달러를 회수할 수 있게 됐고, 19억 달러 상당의 석유화학 제품과 차량 관련 품목을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번 제재 완화는 일부에 한한 것으로, 이란에 대한 주요 금융 수출 제재는 그대로 유지된다. 또 이란이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 수준은 다시 높아질 수 있다.

협상 대차대조표를 보면 이란에게 약간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이 타결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란은 재제 완화와 함께 우라늄 농축 권한도 인정받은 성과를 거뒀다. 물론 저농축 우라늄 생산 권리이기는 하지만 이란의 기술 수준으로 보면 고농축으로 전환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또 농축 시설을 해체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한 것도 이란에 유리하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합의 직후 “새 지평을 열었다”며 “협상안에 이란은 핵 농축을 계속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됐다”며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번 협상의 성패는 앞으로 6개월 안에 이란이 서방의 신뢰 속에서 얼마나 투명하게 핵개발을 축소, 중단하는지에 달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핵무기에 대한 전 세계적 우려를 해소하는 첫 번째 진전”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란이 앞으로 6개월 동안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미국은 제재 완화를 철회하고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은 일단 이번 합의로 경제 제재가 완화돼 경제 회생의 길이 열렸다. 협상 이행 실적에 따라 석유 수출 금지 같은 핵심 제재도 풀 수 있게 됐다. 세계 원유생산 2위 규모인 이란의 석유 수출 길이 열리면 ‘오일 달러’가 급속히 늘어날 수 있다.

이란은 경제 회복과 함께 중동 패권국으로 올라설 개연성도 높기 때문에 주변국에게는 우려의 대상이다. 이슬람 소수 시아파의 대표주자인 이란은 이미 같은 시아파 국가인 시리아, 바레인 정권을 후원하면서 수니파 중심의 중동 정세를 흔들어왔다. 이란의 부상과 관련해 특히 다수파인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의 표정이 어둡다. 이란뿐 아니라 시리아, 이집트 관련 정책에서도 미국에 배신감을 느낀 사우디는 “미국과의 협력을 줄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북한 핵문제는 미국 외교 관심 밖

이란, 핵 중단한 손에 ‘패권’ 쥐나

11월 24일 이란 핵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진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에서 두 번째)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미국에게도 이번 합의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P5+1이 모두 참여한 다자협상 모양새였지만 실제적으론 미국과 이란이 핵 관련 합의를 최초로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양국관계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어 주목된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외교관계가 단절된 두 나라는 핵문제를 고리로 34년 만에 관계 정상화로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사태에 이어 다시 한 번 이란에 무력보다 대화를 중시하는 외교 원칙을 선보였다. 특히 국내적으로 건강보험개혁안(오바마케어) 부실 논란으로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이란과의 협상 성공은 인기 회복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물론 걸림돌도 많다. 오바마 행정부는 추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의회의 제재 움직임을 막아야 한다. 의회가 제재안을 통과시키면 이란이 협조적으로 나올 개연성은 높지 않다.

미 의회에서는 이란에 대해 추가 제재를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화당은 압도적으로 지금 당장 추가 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에서는 ‘당장 하자’와 ‘6개월 동안 일단 기다려보자’는 의견이 대립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과제는 민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 이란 추가 재제를 그만두게 하거나 연기하는 것이다.

대외적으론 이스라엘을 달래야 한다. 핵협상을 저지하고자 총력을 기울였던 이스라엘은 협상이 타결되자 미국을 ‘배신자’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합의는 역사적 실수”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이란을 단독으로라도 공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군사 대응이 어려워짐에 따라 최종 합의 전까지 미국에 자신의 주장을 최대한 관철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란이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시 제재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카드로 이스라엘을 달랠 것으로 전망된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또 다른 관심사인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에 얼마나 협력할지를 계산해가며 미국과 협상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핵협상은 미국의 북핵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먼저 이란과의 협상이 진전을 거뒀다는 점에서 북한 핵문제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풀자는 여론이 대두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미국은 북한과 이란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북한과 거리 두기에 나서고 있다. 케리 장관은 “이란과 북한은 많은 면에서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이란과 북한에 대한 미국의 대응 기조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NPT에 가입했는지, 핵무기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지, 당사국이 협상에 직접 참여하는지 등에서 북한과 이란은 다르다.

현재 미국의 외교 관심사에서 이란은 최우선인 반면, 북한 핵문제는 후순위로 밀린 만큼 북한과 협상할 의사가 있더라도 이란 핵문제를 해결한 후에나 나설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 워싱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주간동아 2013.12.02 915호 (p46~48)

정미경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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