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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l 응답하라 1994, 왜 열광하나 02

정겨운 사투리 귀에 착 붙죠~

‘나 떨고 있니?’에서 ‘니 함 씨부리 바리’까지…맛깔나는 사투리가 드라마 살려

  • 한성우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drysoul@naver.com

정겨운 사투리 귀에 착 붙죠~

정겨운 사투리 귀에 착 붙죠~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전라도 출신 건달 ‘태수’를 연기한 배우 최민수. 당시 ‘태수’는 표준말을 또박또박 구사했다.

온 국민을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당기던 드라마 ‘모래시계’가 정점으로 치닫던 1995년 겨울, 형장에 선 태수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남긴다.

“나가 시방 떨고 있냐? 나가 떨께비 고거이 겁나게 겁나부러.”

광주 토박이 태수는 이렇게 대사를 읊었어야 옳다. 태수가 따로 표준말 교육을 받았을 것 같지는 않다. 친구이자 깡패 동업자인 종도가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랬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작가는 태수에게 “나 떨고 있니?”라는 세련된 표준말을 주문한다. 아니, 시청자 주문일 수도 있다. 잘생긴 외모를 가진 주인공 입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시청자가 용납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6년 후인 2001년 영화 ‘친구’에서 새로운 시도가 나타난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남 동수는 이런 멋진 대사를 남긴다.

가짜 표준말과 진짜 사투리



“내가 네 부하니?” “그만해, 많이 먹었잖아.”

이전까지의 분위기를 봐서는 이렇게 또박또박 표준말로 말해야 했다. 부산의, 부산 사람에 의한 영화일지라도 전 국민을 관객으로 삼을 요량이면 주인공은 표준말을 쓰는 관례를 따라야 했다. 그러나 부산 사람 곽경택 감독은 서울 사람 장동건에게 부산말을 가르쳐서는 “내가 니 시다바리가?”는 물론 “고마해라, 마이 무우따 아이가”라는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읊게 만든다. 부산과 부산말에 대한 애정 덕분에 이러한 대사를 듣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최고의 미남 주인공이 사투리로 말하는 것을 용인할 만큼 바뀌어 있었다.

그로부터 또 12년이 지난 2013년 가을, ‘응답하라 1994’(‘응사’)라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사투리를 마구 쏟아내기 시작한다. 어찌된 일인지 등장인물 10명 중 단 한 사람만 표준말을 쓰고 나머지는 죄다 사투리를 쓴다.

“니 함 씨부리 바리.”

“아따 염병, 니도 엄청난 재주다잉.”

정겨운 사투리 귀에 착 붙죠~

부산 사투리를 전면에 내세워 화제를 모은 영화 ‘친구’의 한 장면.

극중 쓰레기와 삼천포는 경상도 사투리를, 해태와 윤진이는 전라도 사투리를 여과 없이 쏟아낸다. 그것도 거칠고 저속해서 꺼리는 말들까지 마구 섞여 나온다. 주인공들이 “네가 한 번 말해 봐”나 “아 제길, 너도 엄청난 재주구나”라고 표준말을 쓴다면 이 드라마는 성립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자막이 필요할 정도의 사투리에 많은 사람이 열광한다. 세상이 바뀌어도 참 많이 바뀌었다.

이전 영화나 드라마에도 사투리는 늘 있었다. 그러나 충청도 사투리는 식모, 전라도 사투리는 깡패, 경상도 사투리는 떠돌이 약장수가 썼다. 사투리를 쓰는 등장인물은 모두 하층민 조역이었고 주인공은 표준말을 썼다. 이렇듯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사투리가 영화 ‘친구’와 드라마 ‘응사’를 거치면서 전면에 등장했다.

모두 ‘표준말’이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지만 세상에 표준말은 없다. 표준말과 관련된 규정 몇 줄, 그리고 표준말을 담은 사전이 있다 해도 그것이 표준말의 실체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서울 사람 말이 표준말이라고 하지만 그 말 자체가 표준말은 아니다. 말을 표준말로 정한다는 원칙은 있지만 표준말을 들려달라고 요구하면 자신 있게 들려줄 사람은 없다. 실체가 없으니 표준말은 가짜 말이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정겨운 사투리 귀에 착 붙죠~

주인공들이 쓰는 사투리가 극의 매력을 더해준 영화 ‘황산벌’과 ‘웰컴 투 동막골’.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차진 여수 사투리를 구사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 도희(왼쪽부터).

저마다 개성과 정체성 드러나

결국 모든 사람은 사투리를 쓴다. 서울 토박이의 말은 서울 사투리고, 제주 토박이의 말은 제주 사투리다. 많은 사람이 사투리와 시골말은 같은 말이고, 사투리의 반대말은 서울말이라고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학문적으로는 한국어를 이루는 모든 말이 사투리고, 뒤집어 말하면 지역과 집단을 망라한 모든 이가 모여 한국어를 이룬다. 어느 곳의 누가 쓰는 말이든 그것은 사투리고, 실체가 분명하니 사투리는 진짜 말이다.

표준말은 정하기 나름이니 규정이 바뀌면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표준말의 기반을 서울말이 아닌 부산말에 두기로 규정을 바꾸면 ‘모래시계’ 태수는 사투리를 쓰는 주인공이 되고, ‘친구’ 동수는 표준말을 하는 주인공이 된다. 아예 표준어 규정을 없애버리면 표준말을 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사투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방송과 교육 때문에 조금씩 바뀔 수는 있어도 한국어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어를 이루는 사투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사투리의 진정한 힘이다.

모두가 진짜 사투리를 쓰면서도 가짜 표준말을 지향하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표준말의 기반이 된 서울이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중심지라는 것이 그 이유 가운데 하나다. 모두 기를 쓰고 서울로 ‘올라가는’ 상황이니 말도 서울말을 좇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표준말은 배운 사람의 말이라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교육이 표준말로 이뤄지니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자연스럽게 표준말을 쓰게 돼 표준말을 선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표준말은 병용을 위한 것이지 대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공식적인 상황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라고 표준말을 쓰라는 것이지, 일상의 모든 말을 표준말로 대체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표준말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사투리는 악이요, 표준말은 선이 돼버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가짜 말이 진짜 말을 밀어내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모래시계’ 태수의 표준말이 ‘친구’ 동수의 부산말을 거쳐 ‘응사’ 주인공들의 팔도 사투리로 바뀐 것은 작가나 연출자의 의도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작가나 연출자는 최종적으로 그들 작품을 수용할 관객이나 시청자 눈높이에 맞춘다. 비록 표준말을 우위에 두고 표준말을 지향하던 사람들이지만 잠재돼 있던 사투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니 열광하게 된 것이다.

‘친구’ 주인공들이 쓰는 부산말은 사내끼리의 진한 우정을 도드라지게 한다. 때론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그것이 그 시절 그들의 삶이었고 표현 방식이었으니 보는 이에게 매력으로 다가간다. ‘모래시계’ 주인공들은 잘 빚고 깎아놓은 말로 자신의 매력을 보여줬지만 ‘친구’ 주인공들은 원석 그대로의 말로써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신선했던 것이다.

일부러 짊어지고 온 것이든, 차마 떨치지 못하고 온 것이든 ‘응사’ 주인공들은 저마다 고향 말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울에 집결한다. 이들은 진짜 사투리를 통해 저마다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자연스러운 배경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그것이 주인공의 말이 아니라 보는 이의 말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청자는 비록 귀로는 알아듣지 못해도 가슴으로는 훨씬 큰 울림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고, 주인공들의 사투리는 그것을 정확히 자극했다.

갖풀은 짐승 가죽이나 힘줄, 부레 등을 진하게 고아서 만든 전통 접착제 ‘아교’의 순화어다. 화학접착제에 밀려 쓰임이 많이 위축되기는 했지만 전통가구를 만드는 데 갖풀만한 접착제가 없다. 말은 접착제 구실을 한다. 소통 도구인 말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그리고 말로써 서로 다른 지역과 계층 사람들이 소통한다. 결국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는 접착제로 붙인 듯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

표준말은 화학접착제와 같다. 지역과 계층에 따라 말이 다르면 불편하니 이를 극복하려고 인공적인 표준말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빠른 시간 안에 전파하고 사용을 강요한다. 순간접착제 혹은 다른 화학접착제와 비슷하다. 그러나 단단해 보이는 이 결합은 실제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해롭다.

화학접착제 아닌 갖풀의 힘

정겨운 사투리 귀에 착 붙죠~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전국 각지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서울 신촌 하숙집에 모여 살면서 펼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경남 마산 출신 ‘쓰레기’, 전남 순천 출신 ‘해태’, 경남 삼천포 출신 ‘삼천포’, 충북 괴산 출신 ‘빙그레’(극 중 이름).

사투리는 갖풀과 같다. 공장에서 만든 것이 아니니 조성이 일정하지 않다. 짐승 가죽, 힘줄, 부레 등을 고아 만드니 깔끔하지도 않고 사용할 때마다 중탕해야 하니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일단 굳으면 단단하기가 이를 데 없다. 천연성분으로 만든 것이니 해롭지도 않다.

사투리가 그렇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니 의사소통에 방해가 될 수 있다. 표준말처럼 통제가 되지 않으니 다루기도 쉽지 않다. 서로 다른 사투리를 쓰면서 의사소통은 해야 하니 긴장해야 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말이 엉겨 단단한 우리말을 이룬다. 소리로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통하니 그 강도가 훨씬 더 세다. 그것이 갖풀과도 같은 사투리의 힘이다.

중국 텔레비전에는 항상 자막이 나온다. 큰 땅덩어리에 수없이 많은 사투리가 있고,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는 사투리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표준말 자막을 쓸 수밖에 없다. 이때 표준말 자막은 우격다짐식의 화학접착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상황은 다르다. 전국 모든 말이 서로 통하니 사투리가 갖풀 구실을 한다. 이웃한 말 하나하나가 서로 결합한다면 전국의 모든 말이 통하고 그것이 우리말 전체를 이룬다.

독도에 대한 관심은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에 근원을 둔다. 작은 섬이지만 그것이 우리 영토로 편입되는 순간 대한민국 강역은 훨씬 더 커진다. 헌법 제3조를 우리말에 적용하면 ‘한국어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모든 말로 한다’가 된다. 이때 모든 말은 결국 사투리다. 독도를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 당위이듯, 사투리를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주간동아 2013.12.02 915호 (p30~32)

한성우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dry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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