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9

2013.10.21

1964년 이전 출생자 간부로 임명하지 말라우!

김정은 체제 파워 엘리트 흐름으로 본 북한 현주소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3-10-21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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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이전 출생자 간부로 임명하지 말라우!

    5월 2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 자격으로 베이징을 찾은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악수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정보 가운데 하나는 실제로 북한을 움직이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한 것이다. 특파원 재직 기간 필자는 김정은 체제 파워 엘리트의 형성과 현황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들은 내용 가운데 일부는 훗날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물론 사안의 특성상 진위를 명확히 확인하기가 쉽지 않지만, 큰 흐름을 읽기에는 충분한 정보였다.

    # 김일성에게 “일성아”라고 불렀다는 최현

    김정은 체제 들어 대외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겸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다. 총정치국은 북한군의 3대 실무기구(총정치국, 총참모부, 인민무력부)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강하다. 따라서 2013년 북한 군부에서 가장 파워 있는 인물은 최룡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5월 김정은 체제의 첫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기간 그는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고위관계자들을 면담했는데, 그 과정에서 북·중 양측 간 외교적 마찰이 빚어졌다는 보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최룡해 국장이 시진핑 주석 등에게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중국은 북한 요구에 부정적 견해를 전달했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북측은 “이러한 주장은 근거 없는 헐뜯기로, 대화는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최룡해는 방중을 마치고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은 7월 27일 평양에서 열린 전승절(북한의 정전 60주년 기념일) 행사에서 다시 한 번 크게 부각됐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를 대신해 연설을 한 것이다.



    김정은 체제 들어 두드러진 최룡해의 파워를 이해하려면 그 아버지 최현을 알아야 한다. 최현은 북한의 항일빨치산 세대로 인민무력부장 같은 중책을 역임했다. 최현은 일제강점기에 고(故) 김일성 전 국가주석과 함께 보천보전투를 치르는 등 빨치산 활동 동료였다. 이른바 ‘혁명 1세대’ 중에서도 최현은 김일성과 각별한 관계였다. 김일성-김정일 패밀리와 친분이 두터웠던 중국의 한 유력인사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어릴 적 평양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데, 김일성 주석이 최현과 함께 있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최현이 김 주석에게 ‘일성아!’라고 부르는 것도 여러 차례 들었다. 김 주석을 그렇게 호칭하는 건 최현이 유일했다. 그래도 주변에서 어느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았다. 김 주석 역시 최현을 거리낌 없이 친구로 대했다.”

    최현의 아들 최룡해는 김 전 주석의 손자 김정은 시대에 이르러서까지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니 ‘두 절친’의 인연이 대를 이어 내려오는 셈이다.

    # 북한도 사실상 여성이 통치?

    1964년 이전 출생자 간부로 임명하지 말라우!

    2011년 12월 28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례식 운구차량 행렬(왼쪽).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의 아버지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

    아들들에 비해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김영숙 사이의 첫째 딸이자 김정은의 이복누나인 김설송도 자주 회자되는 인물이다. 1973년생인 김설송과 그 남편이 김 위원장 사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뒤에서 움직이는 숨은 실세라는 것이다. 김설송은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김 전 위원장이 각별히 총애했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했다면 김 전 위원장은 김설송을 전면에 내세울 생각까지 갖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김설송은 북한의 당 조직 관리를, 그의 남편은 북한군 인사와 군수물자 공급을 책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설송은 특히 당의 정보기술(IT) 분야를 총괄하면서 관련 핵심 요원 5000여 명을 직접 관장한다고 한다. 이들은 핵심 기술 개발은 물론, 보안과 해킹도 담당한다. 이렇듯 막강한 파워 때문에 평양 권력층 내부에서는 “핵심은 설송”이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또 한 명의 여성 실력자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김 전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1946년생) 조선노동당 비서다. 김경희는 주로 돈 관리를 맡는다는 게 정설이다. 흔히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북한의 2인자로 거론하곤 하지만, 현재 그의 권력은 김정은 집권 초기에 알려졌던 것에 비해 그리 막강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직과 군, 자금 등 핵심에서 벗어나 행정만 담당하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보면 지금 평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김설송과 김경희, 두 여성의 파워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북한도 사실상 여성이 통치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바야흐로 한반도에 드리운 여성천하 시대다.

    # 이영호 숙청과 ‘100만 달러 비자금’

    이영호 전 북한군 총참모장은 김 전 위원장의 운구차를 호위한 이른바 ‘운구차 8인방’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2012년 7월 전격 숙청된 이유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지만, 중국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 강한 분석은 대략 다음과 같다.

    김정은의 권력 등극 이후 북한 내부에서는 권력투쟁이 심화됐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진보개혁파와 보수강경파 간 대립이다. 이 가운데 이영호는 보수강경파의 대표적 인물이었고, 경제개선을 중시하는 진보개혁파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새로 지도자에 오른 김정은은 보수강경파의 반발이 눈에 거슬렸다. 변화하라는 자신의 거듭된 지시에도 일선에서 이영호의 눈치를 봐가며 복지부동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이설주를 대동한 김정은의 파격 행보, 김정은이 직접 만든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 악단’의 화려한 공연 등에 대해 이영호 측이 “자본주의로 가자는 것이냐”며 강력히 반발했다. 결국 김정은은 ‘최고존엄’에 도전하는 이영호를 내치기로 결심했고, 북한 당국은 조용히 내사에 착수해 그의 집에 숨겨둔 100만 달러를 찾아냈다. 이를 이유로 이영호는 전격 숙청됐으며, 북한은 숙청 사실을 즉각 널리 전파했다.

    2012년 11월 하순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영호가 김 전 주석이나 김 전 위원장, 김 제1비서 등 최고지도자와 나란히 찍은 ‘1호 사진’을 북한 당국이 일제히 거둬들인다고 전했다. 그를 반당·반혁명 분자로 낙인찍어 흔적을 지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영호의 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무리 높은 권세를 가졌다 해도 김정은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본보기로 삼은 셈이다. 그의 숙청을 계기로 김정은은 원로간부의 퇴진을 암시하는 발언을 수차례 남겼다.

    뒤이어 김정은은 2013년 1월 1일자로 주요 간부의 나이에 제한을 두라고 지시했다. 1964년 이전 출생자가 주요직 간부에 진입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이영호의 사례에서 보듯 젊은 지도자 김정은과 함께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원로세력이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 주요 보직을 차지하는 엘리트들은 통상 1964년 이후 출생자가 많다.

    북한이 7월 말 신설한 경제지도기구인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인사에도 이런 원칙을 적용했다는 소식이다. 이 위원회의 김기석 위원장은 1964년생이지만, 김철진 부위원장은 50년대 생이다. 직전 합영투자위원회에서는 김철진 수석 부위원장에 김기석 부위원장 체제로 김철진 부위원장이 김기석 위원장보다 직책이 더 높았다. 김정은은 이와 더불어 3년 이상 외국생활을 한 이들에 대해서는 귀환을 지시했다. 필자가 알고 지내던 북한 인사 한 명도 이 때문에 보따리를 싸야 했다.

    # 건강문제로 사라진 사람들

    1964년 이전 출생자 간부로 임명하지 말라우!

    북한 군복을 입은 고(故)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을 외할머니인 김원주 씨가 안고 있다. 1975년 평양에서 찍은 사진으로 김원주 씨는 성혜랑, 성혜림의 생모다.

    이영호와 함께 또 한 명의 대표적인 ‘운구차 8인방’이 바로 우동측 당시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다. 우동측은 북한에서 장기간 우리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하는 보위부장 노릇을 해왔다(그가 제1부부장으로 재임하던 20여 년간 보위부장은 공석이었다). 그랬던 우동측이 2012년 3월 하순 김 전 위원장 사망 100일 행사 이후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장기간 공석이던 보위부장에는 김원홍이 임명됐다.

    이 때문에 국내외 언론에서는 우동측이 내부 권력다툼에서 밀려나 경질됐으리라는 추측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가 모습을 감춘 진짜 이유는 뇌출혈 때문이라고 한 북측 인사는 전했다. 김 전 위원장 사망 이후 계속돼온 심한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에 뇌출혈로 쓰러져 전신마비에 언어소통마저 힘든 상태라고 한다.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도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다. 그의 딸 장금송은 2006년 프랑스 유학 중 자살했다. 이후 김경희는 우울증에 알코올과 마약 중독 같은 증세를 보여왔다고 한다. 2012년 9월 하순에는 병세가 심해져 급히 싱가포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당시 필자가 이 사실을 보도하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그가 살아 있는지 여부가 북한 권력의 내부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당장 남편 장성택의 위상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장성택의 권력은 김경희가 있기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김경희의 건강상태는 매우 위독했다. 싱가포르 병원행도 급히 결정된 사안이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추진하다 보니 비용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채 싱가포르로 떠났다. 병원비와 수행원 경비 등을 해결하려고 별도의 팀을 파견하기도 했다.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한때 김경희의 병 수발을 들었다는 추측보도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 김경희를 돌본 것은 북한 고위층 인사 모녀였다. 당뇨 치료까지 마친 김경희는 10월 초순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 김정남이 후계자에서 밀려난 이유는

    김 전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의 모친인 성혜림은 두 번째 부인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이 영화배우 성혜림과 동거에 들어갈 무렵 성혜림은 이미 남편과 딸이 있었다. 유부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김정남인 것이다. 이에 관해 김정일 패밀리와 가까웠던 한 중국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김정일은 김정남이 자신의 친아들이 맞는지 계속 의심을 품고 있었다. 전남편의 아이일 수 있다는 의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유부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기에 친자라고 100% 확신할 수 없었고, 결국 이것이 김정남을 후계자에서 배제하는 데 일정 부분 이유가 됐다는 주장이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은 김정은이라는 지도자를 맞게 됐고, 그는 현재 다양한 경제개발 계획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가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바랄 나위 없겠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주간동아’ 907호에서 소식을 전한 북한의 사상 최대 규모 투자설명회는 11월 4일과 5일 이틀간 베이징에서 열리는 것으로 정해졌다고 하지만, 사실상 행사의 메인 게스트라 할 남측 관계자들의 참석 없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갈길이 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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