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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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男 훔쳐보며 팍팍한 삶 위로

MBC ‘나 혼자 산다’

  • 윤희성 대중문화평론가 hisoong@naver.com

    입력2013-10-21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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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男 훔쳐보며 팍팍한 삶 위로
    사람은 누구나 숨겨진 것을 궁금해하게 마련이다. 유명인의 집을 공개하고, 냉장고를 열어 식단을 공유하며, 심지어 단골 식당과 병원까지 알려주는 신변잡기 중심의 방송이 계속 제작되는 것은 이러한 시청자의 호기심을 전제로 한다. 심지어 해외에서는 특정 연예인을 따라다니며 시시콜콜한 일까지 모두 전달하는 이른바 ‘리얼리티 쇼’가 수년 전부터 자리 잡았다. 구체적인 직업은 불분명한데 오직 생활을 공개한 것만으로 연예인만큼 인기를 누리는 유명인이 탄생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연예인의 생활을 소재로 한 방송은 공개하지 않으면 들여다볼 수 없는 타인의 일상을 관찰하는 흥미와 고급 차, 비싼 옷, 귀한 식재료가 등장하는 상류사회를 훑어보는 흥분이 집약된 일종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에 해당된다.

    MBC TV ‘나 혼자 산다’는 연예인의 가장 내밀한 생활을 공개하면서도 시청자의 죄책감보다 공감을 유발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는 그룹 부활의 김태원과 배우 이성재, 노총각이란 호칭을 피하기 어려운 배우 김광규, 화려한 생활을 지향하는 방송인 노홍철 등 다양한 처지와 취향을 가진 독거 남성들은 자기 집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심지어 밥을 먹고 청소하고 잠이 드는 사소한 생활을 카메라 앞에서 평소처럼 해낸다. 새로운 인테리어나 건강에 좋은 식단을 자랑할 여유가 없는 이들은 간신히 끼니를 해결하거나 필요에 의해 집을 정돈하는 모습을 통해 귀찮음을 무릅쓰고 감당하는 삶의 보편성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의 파일럿 방송이 올해 설 연휴 편성된 ‘남자가 혼자 살 때’였다는 점은 기획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왁자지껄한 명절 연휴와 혼자 생활을 지탱하려 애쓰는 남자들의 서툴고 외로운 모습을 대비하면서 방송이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무겁지 않은 페이소스였던 것이다.

    공감 측면에서 보면 ‘나 혼자 산다’는 짧은 기간 제법 큰 성과를 거뒀다. 초보 자취생처럼 집을 엉망진창으로 방치해둔 가수 겸 배우 서인국이나, 정리된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을 불편해하는 래퍼 데프콘, 강아지를 가족 삼아 생활하는 가수 강타는 물론, 홈쇼핑과 배달 음식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생생한 현실감을 구축했다. 물론 공감을 확보하는 에피소드가 쌓일수록 전체를 아우르는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 구성은 종종 갈피를 잃기도 한다. 공통적으로 수행해야 할 미션과 목표가 불투명한 까닭에 출연자들의 시너지효과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감지된다.

    하지만 방송은 작위적 방식으로 생활에 연출을 덧칠하는 대신 더 많은 에피소드와 새로운 출연자를 통해 매력을 연장한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살림에 관한 한 걸음마 수준인 방송인 전현무와 바쁘고 어린 아이돌이지만 생활의 작은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비스트 양요섭을 투입한 것은 연출진의 그러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지점이다.

    방송에서 출연자 수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누군가의 생활을 훔쳐보는 것 이상의 의미이자 위로가 된다. 걱정스럽지만 동정할 필요 없는 삶, 위태로워 보이지만 각자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혼자의 힘. 심각하고 진지하진 않지만 이즈음의 세상에 필요한 격려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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