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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경제위기 음울한 시대의 묵시록

앤드루 도미닉 감독의 ‘킬링 소프틀리’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경제위기 음울한 시대의 묵시록

경제위기 음울한 시대의 묵시록
“지금 미국 경제는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골드만삭스의 적자와 주가 폭락, 잇따른 기업 파산으로 미국 경제에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국 노동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미국과 다른 나라를 구분해주는 덕목은 ‘믿음’입니다….”

TV와 라디오에선 시시각각 미국 금융 및 경제 위기를 알리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연일 단상에 올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대통령선거 후보인 공화당 존 매케인과 민주당 버락 오바마가 논쟁 및 대결을 벌이는 2008년 가을 어느 날 미국 뉴올리언스. 음울한 소식을 전하는 뉴스 앵커 목소리는 스산한 바람소리에 실려 유령처럼 떠돌고, 경제위기 대책을 발표하는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들이 낙엽과 함께 나뒹굴며, 매케인과 오바마 얼굴이 커다랗게 새겨진 배너가 푸른 하늘에 무심히 내걸린 거리. 그 위로 한 사내가 느린 발걸음으로 나타난다. 실업과 빈곤으로 고통 받기는 마약과 청부폭력으로 살아가는 ‘잡범’도 마찬가지. 영화 ‘킬링 소프틀리’(감독 앤드루 도미닉)는 모처럼 ‘건수’를 잡은 3류 ‘양아치’로부터 시작해 모든 상황을 종료시킨 전문 킬러의 한마디로 끝난다.

“미국은 나라가 아니야, 미국은 하나의 ‘비즈니스’라고!”



마피아와 킬러 도둑들의 거래와 대결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곡이자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금융위기를 전하는 뉴스 보도와 부시, 매케인, 오바마의 연설이다. 그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OST라는 말은 비유이기도 하고 실제이기도 하다. 정말로 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흘러나온다.

‘킬링 소프틀리’는 2008년 미국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한 갱스터 영화이자, 하드 보일드 액션 영화다. 뉴올리언스 불법 도박판을 둘러싼 마피아와 킬러, 도둑 간 거래와 대결을 그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도 2명이 거액이 오가는 불법 포커판을 덮쳐 판돈을 모두 쓸어간 사건이 발생한다. 노회하고 음흉한 조니 아마토라는 인물이 두 명의 얼치기 잡범이자 마약쟁이를 고용해 벌인 일이다. 하지만 도박판을 장악한 마피아들의 시선은 불법 도박장 운영주인 마키(레이 리오타 분)에게 향한다. 마키는 이미 과거에 자신의 도박장을 터는 ‘자작극’을 벌여 고객 판돈을 모두 쓸어간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의혹만 커지고 진상은 오리무중이 되자, 도박장 업주들을 움직이는 드라이버(리처드 젱킨스 분)는 전문 킬러이자 해결사인 잭키 코건(브래드 피트 분)을 고용해 혼란을 끝내고자 한다. 코건은 강도 사건으로 어지러워진 도박판 질서를 바로잡고자 마키를 궁지에 몰아넣는 한편, 아마토의 소행을 밝혀내 응징을 위한 작전을 세운다.

이 영화는 1974년 발표한 조지 V. 히긴스의 작품 ‘코건의 거래’를 원작으로 했다. 1974년 가을이던 원작의 시간 배경을 2008년으로 옮겨오면서 영화는 마피아와 다름없는 월스트리트 및 투기 금융 자본을 은유하는 음울한 경제위기 시대의 묵시록이 됐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이 영화에서 마피아가 지배하는 도박장과 도박업은 월스트리트 및 금융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2008년 전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와 리먼브라더스 파산, 골드만삭스 적자 같은 일련의 금융위기 사태가 말하자면 도박업에 혼란을 가져다준 ‘판돈 강탈 사건’이었던 셈이다. 어지러워진 판 질서를 바로잡고자 마피아를 대리하는 드라이버는 전문 킬러를 고용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도박장들을 움켜쥔 마피아 세력은 정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수수께끼 인물인 드라이버를 통해 지시를 내린다는 점이다. 베일에 싸인 불법 도박업계의 이해를 조정하고 대리하는 존재, 위험의 싹을 잘라내고 관리함으로써 불법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인물은 과연 어떤 세력을 상징하는 것일까.

경제위기 음울한 시대의 묵시록
물신(物神)의 시대 도래 확인

결국 판 뒤에 숨은 모든 마피아는 미국 금융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을 상징하고, 드라이버는 그들의 이해를 조정하고 관리하는 ‘도구’, 즉 경제권과 정치권 커넥션을 담당하는 존재이며, 드라이버 지시에 따라 도박장의 암묵적 룰을 지키고 위반자들을 처단하는 킬러인 코건은 범죄 집단의 내부 자정을 관할하는 사법 권력을 의미한다 하겠다.

여기서 브래드 피트가 맡은 코건은 마피아들이 움직이는 이 거대한 도박판이 도덕이나 윤리, 온정이 아닌 오로지 현금 거래와 사업 지속성이라는 ‘철의 법칙’에 의해 운영된다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극 후반부 TV에서 “인종과 계급을 뛰어넘어 민주주의 이상에 의해 발전하는 하나의 미국”이라는 오바마의 연설이 흘러나올 때 코건은 “토머스 제퍼슨 이래 미국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현금이 오가는 비즈니스였을 뿐”이라고 냉소한다.

‘킬링 소프틀리’라는 말은 코건이 마피아로부터 의뢰받은 처단과 응징 대상을 빠르고 안전하며 깔끔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숨통을 끊어놓는다는, 스스로 정한 임무 수행 원칙이다. 영화는 복마전이 된 도박판에서 코건이 ‘타깃’을 제거하는 과정을 냉정하고 건조하게, 때로는 우아하고 유려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경제위기’ 시대, 부드럽지만 잔혹하게 ‘안락사’한 존재들은 누구였을까.

영화 ‘킬링 소프틀리’가 보여주는 것은 어둠의 세계에서조차 ‘대부’의 온기는 간 데 없으며, 현금의 차가운 이미지만 지배하는 ‘물신(物神)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이다.



주간동아 2013.04.08 882호 (p68~69)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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