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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14번째 원정대원… 험난한 여정

피터 잭슨 감독의 ‘호빗 : 뜻밖의 여정’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14번째 원정대원… 험난한 여정

몇 년 전 지인이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 3편을 모두 외울 정도”라고 말한 적 있다. 얼마나 좋아하기에 그럴까 싶었는데 “내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딸아이가 ‘반지의 제왕’이라면 사족을 못 쓰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기자는 언젠가 잡지에 쓴 에세이에서 ‘애니메이션의 복수’라는 표현을 썼다. 어린 자식과 영화를 관람하면 십중팔구 다시 보여달라 하고, 결국 DVD를 구매해 집에서도 반복 시청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아이가 좋아하는 작품이 어른이 보기에 수준이 낮아 영 유치하고 재미가 없으면, 아이와 그 작품을 몇 번씩 반복해서 보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그것을 ‘영화의 사후 복수’라고 표현했다.

아이가 어릴수록 극장에 데려가거나 DVD를 보여줄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 얼마 전 명품 브랜드 아동복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동화나 그림책, 영화 같은 예술작품이야말로 ‘최고 수준’의 것을 선택해야 한다. 할리우드 가족영화나 애니메이션이 늘 최첨단 영상기술과 최고의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하는 이유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극장으로 이끌어 지갑을 여는 당사자가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보다 60년 앞선 이야기

만일 당신 아이가 ‘반지의 제왕’을 좋아한다면 다행이다. ‘반지의 제왕’은 소년 모험담이고, 어린 자녀를 위한 가족영화이자 성인을 위한 판타지 영화이기 때문이다. 옥스퍼드대학 영문학자였던 J. R. R. 톨킨의 동명 원작 소설과 그것을 영화화한 피터 잭슨 감독의 3부작은 대중문화사에서 여러모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소설은 지크프리트 설화에서부터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로 이어지는 북유럽 게르만 신화의 현대적 계승이며, 영화는 ‘프로도의 경제학’이라고 할 만큼 대중문화 콘텐츠의 전 방위적 경제 효과를 보여줬다. 뉴질랜드는 영화에 담긴 자국 자연을 관광 상품화했고, 세계 각국에서 영화 촬영을 유치해 고용을 창출했다. 잭슨 감독이 소유한 컴퓨터 그래픽 회사 웨타 디지털은 첨단 영상기술을 전 세계에 팔았다.

14번째 원정대원… 험난한 여정
‘반지의 제왕’ 마지막 편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지 7년 만에 잭슨 감독이 톨킨의 또 다른 작품으로 귀환했다. 12월 13~14일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한 ‘호빗 : 뜻밖의 여정’이다. 이 영화 원작은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세상에 내놓기 전인 1937년 출간한 작품으로, 어린이를 위한 환상 동화다. ‘반지의 제왕’보다 60년 앞선 시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반지의 제왕’ 주인공 프로도(엘리야 우드 분)의 삼촌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 분)가 60년 전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청년 빌보에게 어느 날 갑자기 회색 마법사 간달프(이언 맥킬런 분)가 찾아와 뜻밖의 제안을 한다. 그는 오래전 난쟁이 종족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난쟁이들은 금이 풍부한 ‘에레보르 왕국’이라는 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무시무시한 용 ‘스마우그’가 침입해 왕국을 불바다로 만들고 난쟁이들을 쫓아냈다.

흩어져 살던 난쟁이들은 잃어버린 영토와 종족의 보물을 되찾고자 원정대를 만든다. 난쟁이족 왕자이자 최고 용사인 소린(리처드 아미티지 분)을 지도자로 해 13명이 원정대를 만들었는데, 마지막으로 대원 한 명이 더 필요했다. 용이 난쟁이족의 냄새를 잘 맡기 때문에 최후의 보물을 훔쳐내려면 다른 종족이 전사로 나서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호빗족 빌보가 최후의 대원이 된다.

안락한 삶을 살던 빌보는 “14번째 원정대원이 돼달라”는 간달프의 제안을 받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합류를 결정한다. 이들 앞에는 잔인한 오크족과 흉악한 괴수 고블린족 등을 마주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시련을 거듭하며 모험을 해가던 원정대는 고블린족에게 사로잡히고, 이 과정에서 낙오한 빌보는 어두컴컴한 지하세계에서 골룸(앤디 서키스 분)을 만난다. 골룸이 자신을 잡아먹으려 하자 재치를 발휘해 수수께끼 대결을 펼치고, 우연히 골룸의 보물인 절대반지를 획득한다.

뜻하지 않게 절대반지를 손가락에 낀 빌보는 예기치 않은 운명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는 에레보르 왕국에서 잠자던 용 스마우그가 깨어나 새로운 전쟁을 예고하면서 막을 내린다. ‘호빗’ 역시 3부작으로 기획됐으며, ‘뜻밖의 여정’은 1편이다.

잭슨 감독은 이번에도 영상혁명을 이뤘다. 초당 48개 프레임을 3차원(3D)으로 영사하는 하이 프레임 레이트(HFR) 3D 기술이 그것. 프레임은 필름 낱장에 해당하는 정지화면을 말한다. 이제까지 영화 표준은 초당 24프레임이었으나 잭슨 감독이 2배로 늘린 것이다. 국내 주요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는 이 영화를 상영하려고 새 장비를 들여놓았으며,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상은 아찔할 정도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자랑했다.

14번째 원정대원… 험난한 여정
고난과 시련 가득한 모험 선택

무엇보다 이 작품은 훌륭한 동화이자 성장담이다. 호빗족은 난쟁이족처럼 키가 보통 사람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며 안락한 전원생활을 좋아하는 종족이다. 하지만 빌보는 간달프의 제안을 받고 고난과 시련으로 가득한 모험을 선택한다. 간달프는 “여정을 끝내면 예전의 너와는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복잡한 인물관계와 엄청난 규모의 전쟁 장면, 장대한 스펙터클이 계속되지만 결국 이 영화는 빌보가 모험을 통해 사명, 영예, 우의, 충성, 모험, 극복, 용기 같은 미덕을 깨닫는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이런 작품을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은 동시대 모든 부모의 행운이리라. 평화로운 에레보르 왕국을 지배하는 스마우그의 불은 산업화를 상징하며, 호빗은 근대화 이전의 평화롭고 목가적인 세계에 대한 톨킨의 지향을 담았다는 심오하고 학구적인 분석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성인 관객을 위한 모험 판타지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주간동아 2012.12.17 867호 (p64~65)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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