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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강간죄가 한류와 무슨 상관 있나

한류의 그늘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강간죄가 한류와 무슨 상관 있나

강간죄가 한류와 무슨 상관 있나

연예인이 주로 타는 승합차가 서울 강남 유명 룸살롱 앞에 서 있다.

무죄를 피할 수 없으면 감형을 노려라. 법정에 선 죄인이 바라는 바다.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습생 성폭행 사건을 맡은 변호사의 목표도 그랬던 것 같다. 가수 전진의 소속사이며 대국남아, 엑스파이브 등 보이그룹의 데뷔를 준비하던 오픈월드 엔터테인먼트. 4월 이 회사 장모 대표가 특수강간 혐의로 구속됐다.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연습생 11명을 성폭행한 데다 남자 아이돌 멤버에게도 성폭행을 지시하고 그 광경을 폐쇄회로(CC)TV로 지켜보다 직접 가담하는 등 포르노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을 현실에서 구현한 것이다.

피고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무슨 할 말이 있고, 어떤 억울함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항소했다. 그리고 11월 13일 2심 공판이 있었다. 피고 측은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했다. 1심 때와 달라진 모습이다. 그런데 정상 참작을 바라며 내건 이유가 가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피고 측 변호인은 이렇게 말했다. “피고가 중국 한류를 선도했고 국내 엔터테인먼트산업 육성에도 기여한 공이 크므로 정상 참작을 바란다.”

도대체 이게 왜 정상 참작의 이유가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추론할 여지는 있다. 정치·경제계 고위층이 비리를 저질러 법정에 섰을 때 선처를 호소하며 내세우는 근거는 보통 둘 가운데 하나다. 지병, 아니면 국익에 기여. 그래서 그토록 건강을 과시하던 회장님도 재판을 받을 때만은 ‘전용 패션’을 선호한다. 환자복과 휠체어.

요즘은 그것도 ‘약발’이 시원찮은지 들것에 실려 입장하는 ‘혁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심신 쇠약함을 과시하는 회장님 옆에서는 유능한 변호사가 ‘이분이 기여한 국익’을 설파하며 존경하는 재판장께 선처를 호소한다. 이러한 관행에 비춰봤을 때 꽃다운 연예인 지망생 11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장씨 측이 마지막으로 붙잡은 동아줄은 ‘한류=국익’이라는 등식이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등식이 성립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형 기획사의 노예계약, 방송 제작진과의 부당한 커넥션은 한때 굉장한 뉴스거리였다. 하지만 한국 아이돌이 일본을 기점으로 아시아에서 무시하지 못할 성적을 내고, SM엔터테인먼트가 마침내 파리에서 대대적인 공연을 성황리에 개최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이돌 일색의 대형 연예기획사의 횡포를 비판하던 언론이 앞다퉈 케이팝(K-pop)의 성공 비결과 외국인 팬들의 반응을 중계했다. 주로 새 앨범을 낸 진중한 뮤지션의 인터뷰를 다루던 종합일간지들조차 한류 콘텐츠가 된 아이돌에 기꺼이 지면을 내줬다. ‘세계적 성공’이라는 마법의 단어는 더없이 훌륭한 명분이 됐다.



학생인권조례가 논란이 될 만큼 청소년 인권에 무관심한 한국 사회의 특성이 역으로 아이돌산업을 만드는 인프라임을 지적하는 건 이제 영국 ‘가디언’ 같은 해외 언론의 몫이 됐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건 ‘강남스타일’이다. 지난여름부터 몇 달간 우리가 ‘강남스타일’의 성공신화에 도취한 동안 ‘외국에서의 성공→국익 상승→국위 선양’이라는 3단 논법이 성립되기라도 한 것일까. 정부가 나서 움직였으니 말이다. ‘강남스타일’ 신드롬 앞에 여성가족부는 ‘라이트 나우(RIGHT NOW)’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했다가 자진 해제했다. 서울시는 예정된 하이서울 페스티벌 공연을 미루고 싸이를 위해 광장을 내줬다. 그리고 정부는 싸이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한류가 언론을 바꾸고, 정책을 바꾸는 마스터키가 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특수강간죄로 구속된 연예기획사 대표가 한류를 내세워 선처를 호소하는 풍경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물론 상식적으로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성공하면 모든 게 합리화되는 풍조, 특히 외국에서의 성공이라면 정책마저 바꿀 수 있는 풍조는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 속 이야기다. 11명을 강간한 범죄자가 형기를 줄이려고 쓰는 카드가 국익이고 국위 선양이라면 그 카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옳은지부터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한류가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이런 한류라면 휠체어를 탄 회장님에게 국익이 그러하듯, 고작해야 범법과 부도덕을 위한 면죄부로나 쓰일 테니 말이다.



주간동아 2012.11.19 863호 (p70~70)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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