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5

2011.12.05

우뇌 발달 행동실천형이 도화선 감정의 전파 타고 폭력 증폭

폭력 뒤에 숨은 마음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입력2011-12-05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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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뇌 발달 행동실천형이 도화선 감정의 전파 타고 폭력 증폭

    11월 26일 박건찬 서울 종로경찰서장이 반(反)한미 FTA 시위대에게 둘러싸여 있다. 흥분한 시위대는 박 서장의 뺨을 때리고 머리를 잡아당기며 폭행을 가했다.

    11월 26일 밤, 현직 서울종로경찰서장이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했다.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든, 어떠한 형태로든 폭력은 정당화되지 못한다는 보편적 가치가 무너졌다. 불법이 합법을 집어삼킨 것이다. 이날 시위에 나선 사람들 역시 나라와 국민을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국하는 방식과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에게 폭력으로 분풀이를 하는 순간, 진정성은 의심받고 훼손된다. 의식적 차원에서는 애국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언행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무의식적 차원에서는 개인 또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분노, 적개심, 피해 의식, 반사회성 등의 표출로 볼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적개심 표출

    청소년을 주로 상담하는 필자로서는 아이가 폭력적인 행동을 보일 때마다 그 이유를 물어본다. 그들이 일목요연하게 이유를 설명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 “참다가 도저히 못 참았어요” 내지는 “그냥 화가 나서 그랬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단순히 화가 나서 폭력을 휘둘렀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난 다음 “네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랬겠니. 하지만 폭력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야”라고 반응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수긍한다.

    간혹 “그럼,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고 있어요?”라고 반문하는 아이가 있긴 하다. 그 경우에도 “네가 먼저 맞아서 정당방위 차원에서 주먹질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지”라고 말해준다. 그럼 아이는 “어떻게 하면 되죠?”라며 분노 해소 방법을 궁금해한다. 이제 철이 들기 시작하거나 철이 들려면 한참 남은 듯한 아이도 비폭력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성인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버젓이 폭력을 휘두르고, 일부 정치인은 그들의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니 가슴 답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 사회의 리더가 나서서 “절대로 폭력은 안 된다”고 말하고 캠페인이라도 벌일 법한데, 조용하기만 하다. 아마 “당신이 간디냐? 그리고 여기가 인도냐?”라는 비아냥거림이 두려워, 혹은 “결국 FTA를 찬성하는 쪽이니까 그렇게 원칙적인 얘기나 하고 앉았지”라는 비난이 두려워 그럴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자칫 잘못하면 나도 저 경찰서장처럼 뭇매를 맞을지 모르니까 가만히 있어보자. 돌아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본 후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를 판단하자’라는 자기 보신과 기회주의적 생각이 한마디의 옳은 주장을 억제하고 있을 것이다.



    여하튼 폭력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폭력은 인간 본성 가운데 하나인 공격성에 의해 나타난다. 정신분석학 창시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으로 두 가지를 꼽았는데, 하나는 성욕이요, 다른 하나는 공격성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본능을 적절히 통제하고 해소해야 신경증(혹은 노이로제) 또는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 행동을 구속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에서도 강간과 성추행, 폭행, 살인 등은 엄중하게 다룬다. 공격성과 성욕을 개인의 정신적 발달과 성숙에만 맡길 수 없기에 강제력 있는 법이 개입하는 것이다. 옳은 내용이라도 폭력을 휘두르며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 행동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 타당하다. 이성을 사랑하거나 이성에게 매혹돼도 강제로 성적 접촉을 시도한다면, 그 사람 역시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우뇌 발달 행동실천형이 도화선 감정의 전파 타고 폭력 증폭

    2009년 1월 강기갑 민노당 의원이 미디어법 처리를 반대하며 집기를 부수고 탁자 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평범한 사람은 대부분의 법 테두리 안에서 사회적 관습과 상식에 따라 살아가므로 폭력을 잘 휘두르지 않는다. 하지만 청소년은 조금 다르다. 뇌 발달이 아직 미숙한 상태에서 호르몬 분비가 왕성하고 몸만 커진 그들은 충동적이면서도 분노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비행 청소년이 생기고 우발적, 즉흥적 폭력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한 청소년조차 점차 나이가 들고 뇌가 성숙해지면 자제력과 통제 기능을 획득한다. 나이가 더 들면 신중해지고 지혜도 생긴다.

    그런데 왜 시위대에 들어간 사람은 흥분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의문이다. 처음부터 흥분을 잘하고 폭력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 시위대를 이룬 것인가, 아니면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주장하는 바를 행동으로 표출하다가 분위기 또는 주변 사람의 영향을 받아 폭력적으로 변한 것인가. 결론적으로 둘 다 맞는 얘기다.

    공명→공감→동조 그리고 집단행동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과 행동을 통해 나타내려는 사람은 좌뇌보다 우뇌가 발달한 감성지향형 또는 행동실천형에 해당한다. 이들은 즉흥적이고 열정적이며, 순발력이 있어 발 빠르게 상황에 대처한다는 장점을 갖는 반면,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등 충동적 행동 경향이 뚜렷하다는 단점도 지닌다. 따라서 그들의 감정적 흥분은 곧바로 내면의 공격성을 자극하고, 그 결과 즉각적인 폭언과 폭행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감정의 전파 기능 때문이다. 한두 사람이 흥분해 분노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면, 바로 옆 사람은 그들의 감정에 공명(resonance)한다. 공명으로 시작해 공감(empathy)으로 발전하고, 그 결과 행동의 일치를 보이는 동조(synchrony) 현상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집단행동이다. 인간 행동은 집단적으로 이뤄질 때 좀 더 큰 힘을 갖는다.

    개인적으로 폭력을 주저하는 사람이 집단 폭력에 가세하는 이유는 바로 죄책감 및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니까 내 행동이 잘못된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을 다 처벌하겠어?’라는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현장에서 증폭된 동지 의식은 윤활유 구실을 해 불을 더 크게 만든다.

    우리 민족은 좌뇌형보다 우뇌형에 가깝다. 정(情)을 중요하게 여기고, 감동과 흥분을 잘하며 한번 신바람이 나면 열정과 노력이 무한대로 치솟는다. 또 차분하게 앉아서 사색하기보다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행동하기를 좋아한다. 게다가 집단의식도 매우 강하다. 동일한 민족, 지역, 학교, 이념, 사고방식, 가치관, 계층, 직업 등의 작용에 의해 자신을 특정 집단의 일원으로 규정지은 뒤 열의와 충성을 다해 행동한다.

    우뇌형의 특징인 감정 위주의 판단과 행동화의 경향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우리나라는 더 발전하고 국민도 행복해질 것이다. 폭력을 통해 우리의 뒤틀린 마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행과 협동을 통해 건강한 마음이 신바람 나게 행동으로 표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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