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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인터뷰

막연하게 써놓은 소설 전 용납 못하거든요

‘7년의 밤’ 작가 정유정

  • 정혜연 채널A 국제부 기자 grape06@donga.com

막연하게 써놓은 소설 전 용납 못하거든요

막연하게 써놓은 소설 전 용납 못하거든요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

첫 장을 열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이 한 문장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탓에 선뜻 책을 집어들기 힘들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한시도 내려놓을 수 없다. 소설 ‘7년의 밤’은 한 남자의 우발적 살인과 그를 둘러싼 주변인의 운명을 이야기하며 강한 흡입력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도대체 이야기를 이토록 힘차게 몰아가는 작가는 누구일까.

주인공은 제1회 세계청소년 문학상 수상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를 쓴 정유정(45) 작가. 지난 3월 출간한 ‘7년의 밤’은 그가 2년여 동안 공들여 출간한 스릴러 소설로, 한 달 만에 초판 2만 부와 추가 인쇄분 2만 부가 모두 팔려나가 현재 국내소설 판매 순위 상위권에 올라 있다.

평단과 독자들에게 “오랜만에 무게감 있는 장르소설이 나왔다”는 호평을 받는 정 작가를 서울의 출판사에서 만났다. 다짜고짜 “청소년 소설을 썼던 작가에게서 어떻게 이런 스릴러가 나올 수 있느냐”고 묻자 “일찌감치 쓰려고 마음먹었던 소설”이라며 빙긋 웃는다.

“첫 소설 말미에 적은 작가의 말에 ‘신나는 모험담’과 ‘겁나는 스릴러’를 쓰겠다고 예고했어요. ‘신나는 모험담’은 ‘내 심장을 쏴라’를 통해 이야기했고 ‘겁나는 스릴러’를 쓰고 싶었기에 ‘7년의 밤’이 나오게 된 거죠. 작가들은 보통 한두 가지 테마를 변주로 작품을 쓰는데, 저의 경우는 그것이 ‘자유의지’였어요.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는 자유의지의 발현기를 그렸고, ‘내 심장을 쏴라’는 자유의지를 구현하는 이야기죠. 삶의 가치이자 존재의 징표인 자유의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했고 ‘7년의 밤’이 탄생했어요.”



소설은 살인자 아들의 입에서 시작한다.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멍에를 지고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던 아들은 어느 날 아버지의 사형집행 소식을 듣고, 7년 전 그날 밤을 회상한다. 특별할 것 없던 어느 날 밤 아버지는 새 부임지로 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어린 소녀를 죽이고 사건을 은폐하지만, 죄책감에 서서히 미쳐간다. 딸을 죽인 범인을 집요하게 쫓던 소녀의 아버지는 살인자와 그 아들에게 복수하려고 끈질기게 둘의 삶을 옥죈다.

철저한 취재로 영상 같은 인물 묘사

그는 취재를 열심히 하는 작가로 유명한데 ‘내 심장을 쏴라’에 등장하는 정신병자 주인공을 묘사하고자 정신병동에 들어가 한 달간 생활했다. ‘7년의 밤’에서도 인공호수 ‘세령호’를 중심으로 세령댐과 수목원, 댐과 저지대 마을을 실제로 존재하는 곳처럼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극중 인물의 스쿠버다이빙 장면은 전문 용어로 가득하다. 그는 “다이빙은커녕 수영도 못한다”며 이 같은 묘사가 모두 취재의 결과라고 밝혔다.

“소설 하나를 쓸 때 2년 정도 걸리는데 자료조사만 3개월이 들어요. 창의성도 지식에서 출발해야 창의성이지, 어설픈 지식으로는 망상밖에 나오질 않는다고 보거든요. 잠수 관련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119 구조대원인 남편에게 수중 구조작업을 하는 교관을 소개해달라고 했죠. 또 마지막에 주인공이 댐 수문을 열어 한 마을을 수몰시키는 장면이 있는데 토목기사인 동생에게 부탁해 토목시공기술사를 소개받아 설명을 들었어요.”

막연하게 써놓은 소설 전 용납 못하거든요
3개월 동안의 취재를 마친 그는 자료를 토대로 또다시 3개월 동안 뒤 돌아보지 않고 소설을 써내려 갔다. 이후 1년 동안 그는 “3개월 만에 쓴 소설이 제대로 된 것일 리 없다”며 초고를 조각조각 잘라내 디테일을 더하고 연결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보통 15번의 퇴고를 거치지만 이번 작품은 200자 원고지 2000매가 넘는 터라 8번 퇴고하니 원고만 봐도 구토증이 날 지경에 이르러 그쯤에서 탈고하기로 결심했다.

“막연하게 써놓고 독자에게 상상으로 메우라고 하는 것은 작가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해요. 언어가 영상화돼 독자의 눈앞에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디테일에 상당한 공을 들였죠. 어떤 분은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쓸 필요가 있었느냐’고 하지만 그렇게 써야 이야기를 밀고나가는 힘이 생겨요.”

그 덕분에 ‘7년의 밤’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생명력이 있다. 무의미하게 살아가다 우발적으로 소녀를 죽이는 전직 야구선수 최현수, 가족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사랑하는 치과의사 오영제, 대한민국 중산층의 꿈을 대변하는 억척 아내 강은주, 말 없이 주변인을 바라보는 안승환까지 저마다의 행동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 그들 모두에게 연민이 생긴다.

의외인 점은 빡빡하고 힘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도 간간이 웃음이 터지는 개그코드가 등장한다는 것. 그는 “성격상 농담을 즐기는 편인데 이번 소설에서는 많이 자제했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 대량 방출했더니 ‘작가가 개그맨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며 웃음 지었다.

소설가가 천직인 듯한 그는 의외로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병원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이는 장녀가 의대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하던 어머니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

“당시 의대가 6년 과정이었는데 남들과 같이 졸업하라고 초등학교도 여섯 살 때 보냈을 정도로 어머니는 저를 의대에 보내고 싶어 하셨죠. 그에 반해 저는 한글을 익힐 무렵부터 소설가를 꿈꿨어요.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곧잘 상을 받아왔지만 어머니 의지가 워낙 완강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성적이 받쳐주질 않아 결국 간호대에 갔어요. 그래도 맘속으론 졸업하면 취직해서 반드시 야간대학 국문과를 가리라 생각했죠. 그런데 어머니가 간경화로 쓰러지시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어머니는 그가 근무하던 병원에 입원했는데 간경화가 간암으로 악화하면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공무원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애처가였던 터라 아내가 병에 걸리자 덩달아 쓰러졌고, 그는 실질적인 가장이 됐다. 세 동생의 학비와 어머니의 병간호 비용을 감당하다 보니 어느새 20대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집안이 무너져 내려앉았다고 표현해야 맞을 거예요. 어찌어찌해서 여동생은 유학을 보냈고 두 남동생도 졸업을 시켰죠. 그렇게 간호사 생활을 5년 했더니 어머니 생각도 나고 더는 병원에 있기 싫더라고요. 사표를 내고 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들어갔고, 30대를 그렇게 맞았어요.”

그는 늦은 나이에 남동생의 친구와 연애를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뒤 맞벌이를 하며 6년 만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그 길로 소설을 쓰고자 사표를 던졌다. 일단 쓰기만 하면 유명 작가가 되리라 상상했던 그는 기대와 달리 각종 공모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며 6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집에만 앉아 있다가 세월 다 가는 것 같았죠. 최종에서 자꾸 떨어지니 죽을 맛이었어요.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을 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도전한 ‘세계청소년문학상’에서 상을 받아 천만다행이었어요. 그런데 등단하고 보니까 원하지도 않던 ‘청소년 소설가’라는 딱지가 붙은 거예요. 그걸 떼어내려면 한 번 더 공모전에 붙어야겠다 싶어 ‘세계문학상’에 작품을 냈어요. 심사위원들이 저인 줄 알까봐 아들 이름으로 몰래 냈는데 운 좋게 당선했죠.”

막연하게 써놓은 소설 전 용납 못하거든요

정유정은 취재를 열심히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인수전염병 재난 다룬 차기 작품 구상

문학공모전에 목메던 그는 마흔 줄에 접어들어서야 꿈에 그리던 기성 작가로 자리 잡았다. 40대 소설가라면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교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지만 그는 오히려 큰 키에 다부진 몸매, 시원한 웃음이 매력적인 커리어 우먼의 분위기를 풍겼다. 집에서 글만 쓴 사람의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 비결이 뭐냐고 묻자 ‘야간 산행’이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글 쓸 때는 외부 접촉을 끊고 사는데 샌드백 치고 야간 산행으로 마음을 달래요. 스트레스가 쌓일 때 어떻게든 풀고 싶어 남편한테 샌드백을 사달라고 했죠. 첨엔 기분대로 마구 쳐서 붕대를 감아도 손등이 다 까질 정도였는데 7년 넘게 쳤더니 이젠 괜찮아요. 그러다가 ‘내 심장을 쏴라’에서 시력을 잃어가는 주인공을 묘사하려면 눈 나쁜 사람의 세계를 알아야겠다 싶어 야간 산행을 시작했죠. 해질 무렵 동네 뒷산의 4km 코스를 오르고 돌아오면 딱 두 시간 걸려요. 첫날에는 무턱대고 랜턴도 없이 올라갔다가 너무 무서워 절반도 못 가고 돌아왔는데 나중엔 어둠에 익숙해지더라고요.”

그는 산에 올라 스토리상 꽉 막힌 부분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집에 돌아와 자고 일어난 뒤 작업을 다시 시작하면 거짓말같이 글이 술술 풀린다. 지금은 차기작을 구상하며 산을 오른다.

“재난 스릴러를 생각하고 있어요. 인수공통전염병에 얽힌 이야기인데, 개가 감염체로 등장할 예정이고 주인공 캐릭터도 설정해놓았어요. 메인 플롯을 확정해야 엔진이 돌아가니까 지금은 개, 심리학, 해부학, 수의학 책을 보면서 자료조사를 하고 있어요.”

소설 ‘7년의 밤’은 영화인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인터뷰가 있던 날 출판사 한쪽 화이트보드에 영화배우들 사진이 붙어 있었다. 직원을 상대로 누가 적합한지 투표가 진행 중이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TV를 없앴다는 정 작가는 몇몇 배우는 알아보지 못했다. 송강호는 알아보고 “송강호 씨 좋아하는데 캐스팅될까요?”라며 사진을 만지작거렸다. 어떤 배우가 캐스팅되든 탄탄한 원작 소설 속 등장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면 발군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주간동아 791호 (p65~67)

정혜연 채널A 국제부 기자 grape0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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