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1

2011.06.13

스코틀랜드 ‘독립만세’ 외칠 수 있나

5월 총선서 민족당 압승 단독 정부 구성… ‘독립 요구 국민투표안’ 독자 상정 초미의 관심

  • 런던=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입력2011-06-13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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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틀랜드 ‘독립만세’ 외칠 수 있나

    13세기 스코틀랜드 독립전사 윌리엄 월레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한 장면.



    18세기 이후 잉글랜드 왕조에 통합돼 영국(Great Britain) 지배 하에 있는 스코틀랜드 민족이 300년 만에 독립을 꿈꾸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해온 스코틀랜드 민족당(Scottish National Party)이 5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처음으로 단독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민족당은 2007년 선거에서도 최다 의석을 확보했지만, 연정 파트너였던 노동당의 반대로 선거공약으로 내건 독립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단독 과반수를 확보해 민족당이 그동안 주장해온 ‘스코틀랜드 완전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라는 목표에 한 발 다가섰다.

    ‘브레이브 하트’의 윌리엄 월레스

    역사적 전환기를 이끈 주인공이 늘 존재하듯, 스코틀랜드 민족의 역사에도 변화에 도전한 주인공들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독립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주인공은 멜 깁슨 주연의 영화‘브레이브 하트’에도 등장한 13세기 독립전사 윌리엄 월레스다. 13세기 스코틀랜드인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의 폭정에 이상 기후로 인한 기근과 질병까지 겹쳐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월레스는 1297년 의병을 조직해 여러 차례의 대규모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잉글랜드 왕국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그러나 1305년 귀족의 배신으로 체포된 월레스는 처형당할 운명에 놓이고 만다. 그 당시 그는 거듭된 회유에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당당히 목숨을 던졌다. 자유를 향한 월레스의 순교는 고통 받던 스코틀랜드의 민족혼을 일깨웠다. 월레스가 죽음과 맞바꾸려던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열망은 1326년 마침내 실현됐다. 그러나 다시 300년이 흐른 17세기 초,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조는 다시 합쳐졌고, 그나마 실질적 권한을 유지하던 스코틀랜드 의회는 1707년 경제 운영에 실패한 후 잉글랜드에 정치·경제적으로 완전히 통합되고 말았다.

    200년 넘게 잠자던 스코틀랜드의 민족혼은 20세기 들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이 스코틀랜드인의 독립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제1, 2차 세계대전 후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은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위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 후 1970년대 전 세계적으로 오일 쇼크와 경제 위기가 닥치자 스코틀랜드 민족당은 북해 유전 수익을 발판으로 분리독립 세력을 다시 규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 중앙정부의 막대한 지역보조금 지원으로 분리독립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1997년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영국 노동당 정부는 지방자치권을 더욱 확대했다. 주민 투표를 거쳐 웨일스와 스코틀랜드의 지방의회에 행정 자치권 및 조세 재정권을 이양하기도 했다. 분리독립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스코틀랜드 민족당은 해마다 꾸준히 성장했다. 2007년과 2011년 총선을 거치면서 스코틀랜드 민족당은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뒀다. 2007년 스코틀랜드 민족당은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자치권을 갖는 준독립정부를 설립했고, 이번 5월 총선 승리로 ‘독립 요구 국민투표안’을 독자 상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독립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민족당을 제외하고 영국 주요 정당과 스코틀랜드 지역 소수 정당, 그리고 영향력을 가진 노동조합 대다수가 독립에 반대하고 있다. 물론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 성공의 열쇠는 지역 주민이 쥐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독립 찬반 여론조사 결과만 보면 독립에 대한 전망이 그다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2007년 스코틀랜드 한 지방지가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21%만이 독립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다른 조사에서는 독립 찬성이 반대를 근소하게 앞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올 들어 ‘파이낸셜 타임스’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독립 찬성 수치가 다시 떨어져 30% 수준을 맴돌았다.

    한편 독립 여부에 대한 엇갈리는 의견에도 국민투표 자체를 찬성하는 여론은 대부분 조사에서 7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국민투표 실시까지 남은 기간에 찬반 세력이 여론을 어느 정도 확보할지가 스코틀랜드 독립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지역 주민의 찬성 및 반대 주장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독립 찬성자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스코틀랜드의 경제 실적이 잉글랜드 지역에 비해 좋다고 주장한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더라도 경제적 자립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자들은 조선과 제강 등 전통 제조업의 약화로 스코틀랜드 지역 경제가 침체 국면에 들어선 상황에서 독립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라고 지적한다.

    “독립 찬성 vs 독립 반대” 팽팽한 대립

    스코틀랜드 민족당은 경제 침체로 인한 서민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부터 연정 파트너인 노동당과 함께 복지정책을 대폭 확대했다. 주민세를 동결해 납세 부담을 줄였고, 의료처방전 및 5~8세 아동의 학교 급식과 노인 간병 등 각종 복지 혜택을 무상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한 잉글랜드 정부가 최대 9000파운드(한화 약 1500만 원)의 등록금 인상안을 입법화한 데 반해, 스코틀랜드 정부는 무상 등록금을 유지하기로 했다. 재정 부족으로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재정 적자가 발생하리라는 우려에도 민족당은 복지 확대 노선을 꾸준히 추구해왔다.

    둘째, 독립 반대자들은 스코틀랜드가 영국의 품을 떠나면 유럽연합 등 외교 무대에서도 영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독립 찬성자들은 오히려 유럽연합이 탄생한 이후 작은 나라들이 주변 강대국의 안보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외교 영향력 약화론과 안보 위협 소멸론이 맞서는 상황이다.

    셋째, 독립 반대자들은 독립 이후에도 현재 수준의 복지 지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늘려야 하는 반면, 스코틀랜드 경제를 지탱하는 북해 유전은 언젠가 고갈하므로 극심한 경제 불균형에 시달릴 것이 빤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독립 반대자와 찬성자 사이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다.

    반대자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스코틀랜드 민족당은 지속적인 복지 정책 확대와 신경제성장 전략을 총선 공약으로 제시함으로써 맞불을 놓았다. 민족당이 제시한 신경제성장 전략에는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의 발전과 외국인 투자 유치의 획기적 증대라는 두 가지 카드가 담겨 있다. 민족당은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으로 향후 10년간 13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북해 석유 고갈에도 대비해 2020년까지 풍력을 포함한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력 수요를 100% 충당하겠다고 공약했다. 또한 법인세를 현행 26%에서 15%로 내려 외국인 투자액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친기업적 공약도 내놓았다.

    이번 총선에서 신경제성장 전략은 전통 제조업을 대체할 산업의 부재와 북해 유전 고갈에 대한 유권자의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하는 구실을 했다. 5월 총선에서 압승했음에도 이러한 찬반 논란을 염두에 둔 듯 스코틀랜드 민족당은 국민투표 회부에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투표안을 당장 상정하는 것보다 독립 지지 여론의 저변을 먼저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민족당은 중앙정부에 법인세 조정 권한 이양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지역 정가에서는 대략 3년 안에 스코틀랜드 민족당이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시행하리라고 전망한다. 이 기간에 독립을 위한 기반을 다지려는 집권 민족당과 독립 반대자, 그리고 영국 중앙정부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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