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1

2011.06.13

‘새길교회’가 우리 곁에 있었네

교회 건물·담임목사·교파 없는 ‘3무 교회’…열린 ‘언론’에 다른 종교까지 포용

  • 김정희 자유기고가

    입력2011-06-13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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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길교회’가 우리 곁에 있었네

    5월 29일 새길교회 예배에서는 일반 신도인 정신과 전문의 강경희 박사가 ‘고통과 사랑’을 주제로 설교했다.

    5월 6일 이명박 대통령이 유영숙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원장을 환경부 장관 후보로 낙점하자 특정 대형 교회가 또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현 정부 들어 ‘특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제기된 그 교회다. 이 교회뿐 아니다. 대표적 대형 교회 두 곳이 내부 권력 다툼 문제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또 다른 대형 교회는 교회 건물 신축 과정에서 건축법 특혜 논란이 일었다.

    대형 교회의 권력화, 물신주의, 목회자 세습 문제 등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24년 연혁의 ‘새길교회’(saegilchurch.or.kr)가 새삼스럽게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강남청소년수련관 일요일만 임차

    새길교회는 흔히 ‘3무(三無) 교회’로 알려졌다. 교회 건물이 없고, 담임목사가 없고, 교파가 없다. 교회 소유 부동산이 없어 서울 청담동 강남청소년수련관을 일요일에만 임차해 예배를 본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가 중심이 돼 교회를 운영한다. 장로, 집사, 권사 등의 직책도 없다. 모든 신도가 ‘형제, 자매’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특정 교파(교단)에 속하지 않고 다양한 종파의 교인을 폭넓게 받아들인다.

    5월 29일 찾아간 예배에서도 이 같은 교회의 독특한 정체성을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1994년부터 17년째 임차해 사용하는 구립 강남청소년수련관 강당에는 대략 150명이 넘는 신도가 모였다. 평균 예배 출석자가 180명 선이란다. 언뜻 보기에 여느 교회보다 신도의 평균 연령이 다소 높았다. 예배의 내용과 형식도 특이했다. 우연히도 그날 예배는 ‘예배 인도자’(사회자), ‘말씀 증거자’(설교자), 오후에 열린 강좌 연사까지 모두 여성이었다. 여성이 예배 과정에서 소극적인 구실을 맡기 십상인 여느 교회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새길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전담 목회자가 설교단에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목회자 대신 교회 신학위원인 한완상 전 부총리, 길희성 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권진관 성공회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최만자 전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차옥숭 한일장신대 교수 등이 일반 신도, 외부 초빙 강사와 함께 돌아가며 일반 교회의 목회자 설교에 해당하는 ‘말씀 증거’를 한다.

    이날 설교단에 선 사람은 역시 일반 신도인 정신과 전문의 강경희 박사였다. 슬라이드로 화가 반 고흐의 작품을 보여주면서 ‘고통과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갔다. 교회 설교라기보다는 인문학 강좌를 연상케 했다. 교회 산하 법인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최현섭 이사장(전 강원대 총장)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시도를 위해 오늘 같은 내용이나 형식의 말씀 증거도 종종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새길교회는 ‘많은 교회가 경직된 율법주의와 허황된 물신주의에 빠져 이기적 자기 확장과 치장에만 몰두한 현실을 안타까워한’ 20여 가구의 신자(창립 예배 참가자 104명)가 ‘직업화한 교역자 중심에서 공동체적 평신도 중심 교회로’(창립 취지문에서 인용)의 변화를 갈망하면서 만든 대안적 형태의 교회다. 교회 설립의 핵심적인 인물은 ‘말씀 증거자’를 돌아가며 맡기로 한 한완상 당시 서울대 교수와 길희성 교수, 김창락 한신대 교수, 이삼열 숭실대 철학과 교수 등이었다.

    처음부터 소유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교회 설립 당시 전체 헌금의 절반 이상을 선교와 봉사에 쓴다는 원칙을 세웠다. 교회 건물을 짓지 않고 전임 목회자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지금도 헌금의 60%를 선교와 봉사에 쓴다. 하지만 그 쓰임새는 해외 선교나 전통적 의미의 전도 사업보다 독거 노인, 외국인 노동자, 결식 아동 등 사회적 약자나 인권단체 등을 돕는 경우가 많다. 나머지 40%의 예산으로 예배당 임차료(2010년의 경우 1600만 원 선), 초청 강사료 등의 인건비, 비품 구입 등을 해결한다.

    신도 간의 평등성과 개방성, 물질적 청빈을 지향한다는 취지는 기존 교회의 가부장적 성격이나 폐쇄성에 실망한 신도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교단에서는 논란도 적잖았다. 신도 중 사회 비판적인 성향의 교수가 많은 데다 목회자가 없고 교파를 초월했다는 이유로 ‘지식인들의 교회’ ‘반정부 성향 교회’라는 의혹을 받았고, 초창기에는 기존 교단이 ‘이단’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교회의 독특한 정체성에 이끌려 찾아온 신도도 많았지만, 일반적 교회의 모습으로부터 한발 벗어난 모습 때문에 결국 교회를 떠난 신도도 있었다.

    ‘새길교회’가 우리 곁에 있었네

    (왼쪽) 새길교회는 교회 건물을 따로 소유하지 않고, 일요일만 서울 청담동 강남청소년수련관을 임차해 사용한다. (오른쪽)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신도들.

    중요 사안은 신도 전원이 결정

    세간의 얘기에 대해 새길교회는 다소 조심스러워했다. 새길교회 현 운영위원장인 윤여성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교리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일부에선 ‘이단’으로 볼지 모르나, 이단의 개념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새길교회는 예수의 본래적 정신을 고스란히 따라 생활하려 한다. 다만 신앙의 스펙트럼이 다소 넓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한 새길교회에 흔히 붙는 ‘3무 교회’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기존의 폐단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3무’가 나온 것이지, 애초 예배당과 목회자, 교단을 없애자는 목적으로 설립한 게 아니다. 교회의 뜻과 일치하는 진정한 목회자라면 언제든 초빙할 것이고, 건물도 꼭 필요하다면 마련할 수 있다.”

    실제 초창기 새길교회는 현대교회와 통합해 잠시 교당을 가진 적도 있고, 담임 목사를 둔 적도 있다.

    최현섭 이사장 역시 “우리 교회는 대형 교회의 부정적 모습을 보고 실망한 신자가 많이 찾아오는 게 사실이지만 새길교회가 단순히 부정적인 현상으로부터의 ‘피난처’ 구실에 그쳐서는 안 되고, 타자를 비판하기만 하는 것 또한 경계한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이어 “나만 옳다면서 타자를 비판하는 것은 또 다른 오만이다. 누구나 오류를 가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서로 공개적으로 터놓고 얘기해 오류를 좀 더 줄일 수 있도록 애쓰는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새길교회는 ‘언로’가 열린 구조다. 교회 운영은 평신도가 선출한 운영위원 30명을 중심으로 하며, 중요한 사안은 신도 전원의 공동회의에서 결정한다. 교회의 헌금 사용 명세 등 회계 역시 투명하게 공개한다. 매년 교회의 회계를 1원 단위까지 홈페이지에 공개해 교회 신도뿐 아니라 외부인도 교회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볼 수 있다.

    소통이나 비판이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점도 눈에 띈다. “기존 교회에서 건축 헌금을 강요하는 데 실망하던 차에 새길교회를 만나 7년째 다니고 있다”는 신도 배정은 씨의 쓴소리를 들어보자. 그는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교회인 만큼 늘 불안정한 상태인 게 사실이다. 특히 정치적 색채가 다른 이들이 다양하게 모이다 보니 이들 사이에 갈등도 없지는 않다”고 털어놓았다. 또 “이제는 카리스마적이었던 1세대 원로가 주축이 돼 교회를 이끌던 시대를 벗어나야 한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신도가 교회를 향해 이런 발언을 하려면 익명을 원할 수도 있을 법한데, “우리 교회에서는 신도들의 자유로운 비판을 개의치 않는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마침 곁을 지나던 최 이사장도 “상관없다. 어떤 이야기라도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새길교회다”라고 거들었다.

    또 다른 신도 정영훈 씨 역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이 교회 풍토다.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4대강 사업에 다소 비판적인 내용의 강연회를 한 적이 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신도도 많지만 별문제 제기가 없었다. ‘교회의 어조가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고 귀띔했다.

    ‘다름’에 대한 포용은 기독교 종파를 넘어서 다른 종교에까지 이어진다. 불교나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학술 세미나를 여는가 하면, 원불교 노래단인 ‘원심회’와 가톨릭 노래모임 ‘이노주사’와 합동 공연을 하기도 했다. ‘기독교 교리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배타적 구원관’을 넘어서려는 태도다.

    예배에 억지로 부르지 않아

    ‘실험적 교회’에 대한 의구심에도 새길교회는 24년 동안 애초 목표한 취지와 형태를 유지하며 평균 출석 신도 180명을 헤아리는 안정적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없지 않다. 전임 목회자의 부재로 신도들의 경조사나 각종 의례를 꼼꼼히 챙기지 못해 신도의 이탈이 생기고, 어린이 청소년 지도가 미흡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창립 멤버가 연로해지고,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회의를 느끼고 새길교회를 찾아온 중장년층이 많다 보니 교회의 노령화도 눈에 띈다. 강제성이나 의례적인 틀이 느슨한 것을 불안하게 느끼는 신도도 있다.

    교회 운영위원회에서는 이런 과제를 해소하려고 애경사를 본격적으로 주관하는 목회위원회를 구성하고, 성경학교를 지도하는 전도사를 두는 등 다양하게 노력한다. 하지만 밖에서 볼 때 ‘문제’일 수 있는 현상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보는 신도도 함께 존재한다. ‘교회가 반드시 젊을 필요는 없다’ ‘교회 규모를 늘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교회가 너무 커지면 오히려 문제다’ ‘예배에 안 나오려는 사람은 억지로 부르지 않는다. 자발성이 중요하다.’

    신도들은 이런 다양한 목소리를 역시나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과연 여느 교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인터뷰/ 새길교회 신학위원 한완상 전 부총리

    “기성 교회의 대안모색…자신부터 비워야”


    ‘새길교회’가 우리 곁에 있었네
    한완상 전 부총리(사진)는 강남청소년수련관 강당의 맨 뒷자리에 앉아 예배를 봤다. 백내장과 시력 약화로 실내에서도 옅은 색이 들어간 안경을 쓴 채였다.

    그는 새길교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1987년 교회 창립의 산파로 ‘말씀 증거자’ 역할을 오래 해왔고, 지금도 교회의 신학적 바탕을 마련하는 신학위원으로 일한다.

    교회의 권력화, 가부장화는 한 전 부총리가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다. 새길교회가 ‘일요일 오전 11시 대예배는 반드시 (대부분 남성인) 담임목사가 주재한다’는 기존 교회의 통념을 깨고 남녀 신도 누구나 설교단에 오르는 평등한 교회문화를 일군 데도 그의 강한 신념이 한몫했다.

    한 전 부총리는 “새길교회는 기성 교회에 대한 ‘안티’가 아니라 ‘대안’을 모색하는 곳”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현재 일부 대형 교회가 보여주는 부정적 모습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닮으라’고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교회가 세상의 칭찬을 받기는커녕 비난의 대상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을 비움으로써 남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자신을 비우기는커녕 탐욕과 권력이 들어찬 결과이지요.”

    한국 교회에 대한 한 전 총리의 반성은 현 정부에 대한 걱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기독교 장로 신분의 대통령을 세 명 배출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그리고 현재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앞의 두 대통령은 집권 당시 실정을 했다 해도 ‘기독교 장로였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받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지금의 정부는 만일 나중에 ‘실패한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경우 ‘한국의 대형 교회 때문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지 염려됩니다. 그것이 기독교 신자로서 가슴 아파요.”

    역대 두 정권에서 반정부 운동으로 교수직을 해임당했고, 두 정권에서 부총리를 역임하는 등 우리 정치사에서 명암을 두루 경험한 원로의 뼈아픈 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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