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1

2011.06.13

텅 빈 연습실에 서면 복잡한 세상사가 시시해진다

동아일보 출판국 사내밴드 리드싱어의 나의 직장인밴드 체험기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1-06-13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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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빈 연습실에 서면 복잡한 세상사가 시시해진다
    트위터에 글 하나 잘못 올렸다가 혼난 적이 있다. 임재범의 ‘너를 위해’보다 부활의 ‘비밀’이 훨씬 매력적인 고난도 노래라는 견해를 밝혔다가 ‘대세에 어긋난다’ ‘오만하게 비칠 수 있다’며 블루잉크의 몇몇 동호회원에게 ‘훈계’를 받은 것이다. 농담 삼아 한 말이지만 분명 생각해볼 점이 있다. 블루잉크는 2010년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들이 결성한 사내밴드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 신시사이저(키보드), 보컬 5명으로 이뤄졌다. 일종의 팬클럽이자 후원 모임인 동호회는 올해 초 결성됐고, 회원은 26명이다.

    최근 청중 반응을 조작 편집한 의혹에 휩싸인 MBC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는 선곡 문제로 고민하는 아마추어 밴드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프로그램의 놀라운 성공은 ‘재야가수’의 신선함과 신비주의, 대중문화계의 복고풍, 현대인의 감동 결핍증, 방송사의 선정적 홍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임재범이 좋은 가수라는 건 분명하다. 그와 별개로 ‘임재범 신드롬’은 집단 전염병이라는 진단을 받을 만하다. ‘눈물 흘리는 여성’을 몇 번이나 예고편으로 내보낸 방송사의 포장기법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시청자는 본방송을 앞두고 가슴을 적실 준비를 한다. 왜? 이미 감동적이라고 ‘공인’된 노래니까. 물론 예전부터 임재범을 좋아했던 ‘진성 팬’은 논외겠지만.

    선곡 둘러싸고 멤버 간 이견과 갈등

    대중의 우상으로 떠오른 임재범을 가리켜 ‘가창력은 별로(고음이 불안한 점을 포함해)’라고 말하는 건 모험이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임재범이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인 두어 명의 가수를 제치고 ‘여러분’으로 1등을 차지한 것에 대해 의아해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꽤 있다. 블루잉크의 일부 멤버만 해도 그렇다. 몇몇 동호회원의 ‘압력’에 굴복한 내가 한 멤버에게 ‘너를 위해’에 대한 견해를 묻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망설임 없이 말했다. “임재범 노래, 별로예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가수의 순위가 아니라 - 아무려면 어떤가 - 음악적 시류에 대한 대중의 종잡을 수 없는 집단정서다.

    밴드는 집단이면서 개체고, 개체면서 집단이다. 자신만의 예술을 꿈꾸는 개개의 자유로운 영혼이 하나의 현실적인 조직으로 묶이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중 선호도와 눈높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밴드 멤버의 음악적 가치관과 취향이다. 이는 선곡 과정에 치열하게 부딪친다. 각자의 개성이 불똥처럼 사방으로 튄다. 그것을 한 방향으로 잡아주는 게 밴드 리더다. 선곡은 연습의 시작이자 절반이다. 선곡을 잘못하면 나중에 공연을 앞두고 무지 고생한다.



    초짜 밴드 블루잉크의 선곡 작업은 당연히 순탄치 않았다. 선곡을 둘러싼 멤버 간 이견으로 때론 깊은 갈등도 겪었다. 20대에서 50대까지 연령대가 폭넓다 보니 세대 간 음악적 가치관의 차이도 작지 않았다. 누구는 1970~80년대 통기타 노래를, 누구는 동물원과 김광석 스타일의 차분하고 서정적인 노래를 선호했다. 어떤 멤버는 미성을 가진 젊은 가수의 노래를 레퍼토리에 넣고 싶어 했고, 또 다른 멤버는 최신 소프트 록음악을 즐겨 추천했다. 조율하는 과정에 멤버들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그래도 일단 정해지면 자신의 의견을 양보하고 따라줬다.

    멤버들에게 추천곡을 받는 게 선곡의 첫 순서. 그런 다음 연습실에 모여 MP3로 노래를 듣고 각자의 느낌을 말한다. 견해가 심하게 엇갈리거나 판단이 잘 안 설 때는 몇 번이고 듣는다. 현장에서 바로 결정하는 곡도 있고, 유보 또는 재검토로 분류하는 곡도 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호불호가 비슷한 경우 리더인 내가 직권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곡을 결정하면 악보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 파트별 악보를 구한다. 거기서 밴드음악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

    열정 하나 믿고 시작 1년이 훌쩍

    활동한 지 1년이 지났을 뿐인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그만큼 사연이 많아서일까. 블루잉크가 결성된 건 2010년 5월. 이재호 출판국장과 통기타를 치는 전진희 출판관리팀장, 전자기타와 베이스에 능한 사진팀 조영철 기자가 술자리에서 우연히 밴드 얘기를 꺼낸 게 시발점이었다. 드럼 교습소에 다니던 유재영 기자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쳐온 김유림 기자가 가세했고 마지막으로 내가 합류했다.

    첫 모임은 서울 북아현동의 지하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유재영 기자가 드럼을 연습해오던 악기교습소였다. 연습실은 비좁았지만 악기들은 쓸 만했다. 그날 나는 공교롭게도 감기에 포박돼 목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밴드를 구성할 수 있을지, 우리가 어떤 곡을 잘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자리였기에 1시간 이상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멤버 간 유대감과 친밀감이 형성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과 창조에 대한 열정 덕이었다. 근무 패턴이 불규칙한 언론사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연습을 많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도 쉽지 않았다. 시간을 아끼려고 연습실에서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8월에는 전용 연습실을 마련할 수 있었다. 회사 건물 지하 3층 물품창고를 개조한 것이다. 방음을 위해 사잇문을 만들고 벽과 천장에 스티로폼을 붙였다. 완벽하진 않지만 만족할 만한 시설이었다. 개소 기념으로 연습곡 가운데 하나인 ‘시즌 인 더 선(Season in the Sun)’을 선보였다. 다들 긴장했는지 연습 때보다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목소리가 매끈하게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잡힌 첫 공연 일정. 회사 노동조합에서 10월에 열리는 사내 체육대회 때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장소는 하남 종합운동장. 야외라 솔직히 겁났다. 목소리가 어떻게 빠질지, 악기소리가 어떻게 들리고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가늠할 어떤 경험도, 정보도 없었다. 그럼에도 멤버들은 하고 싶어 했다. 공연은 밴드의 꿈이지 않은가. 실력을 객관적으로 검증받는다는 뜻도 있었다. 결국 믿을 것은 열정 하나뿐이었다.

    뜻하지 않은 변수도 있었다. 체육대회 때 우리뿐 아니라 ‘진짜 가수’가 공연한다는 걸 노조에서 뒤늦게 알려온 것이다. 중량급 가수 1명과 걸그룹이라고 했다. 그에 따라 우리의 공연은 의미가 축소됐다. 시간도 줄어들어 15분 안에 끝내야 한다고 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들러리 서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두렵기도 했다. ‘진짜 가수’와 비교된다는 사실이. 우리는 진지하게 논의한 끝에 안 하기로 하고 노조에 통보했다. 막상 불참을 결정하자 마음이 시렸다.

    며칠 뒤 열렬한 후원자인 고위간부가 우리를 위로한다며 밥을 샀다. 그 자리에서 멤버들이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얘기를 들어보니 나만 아쉬워하는 게 아닌 듯싶었다. 다들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안 되겠다 싶었다. 식사가 끝난 후 회의를 열었다. 결정을 번복하는 데 반대하는 멤버는 없었다. 첫 공연에 대한 흥분과 기대감이 불안감과 자존심의 상처보다 컸던 것이리라.

    숱한 장애물 넘고 보니 대단한 행운

    텅 빈 연습실에 서면 복잡한 세상사가 시시해진다

    지난해 연말 홍대 앞 클럽에서 열린 블루잉크의 송년회 공연.

    15분이면 인사말과 밴드 소개를 감안해 4곡 정도는 부를 수 있었다. 목표가 정해진 터라 연습 강도가 세질 수밖에 없었다. 연습시간을 늘리자 일부 멤버가 힘들어했다. 나는 멤버들에게 악보를 완벽하게 외울 것을 주문했다. 공연 2주일 전 연습해오던 10곡 가운데 6곡을 골랐고, 1주일 전 4곡으로 좁혔다. 3곡이 메인이고, 1곡은 앙코르용이었다. 최종 선곡 과정에도 약간의 진통이 있었다.

    공연 당일,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격려의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진 않지만 우쭐해졌다. 다들 한두 부분 실수를 저질러 속된 말로 쪽팔리긴 했어도 성취의 기쁨을 망칠 정도는 아니었다. 나로 말하자면, 두 번째 곡인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Holiday)’를 부를 때 두 군데에서 고음이 불안했다. 부르는 사람은 안다. 긴장한 탓도 있겠지만, 야외 마이크 사용에 미숙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자위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의 허탈함과 공허함….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물 젖은 솜처럼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행사가 끝난 후 미사리에서 회사 간부들과 뒤풀이를 했다. 그 자리에서 연말 홍익대 앞 클럽에서 송년회를 겸한 공연을 하자는 말이 나왔다. 홍대클럽 공연을 준비하면서 대학 시절 밴드 경력이 있는 기타리스트를 보강했다. 밴드에서 새 멤버의 영입이나 교체는 무척이나 예민하고 조심스럽다. 우려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밴드의 발전을 위해 기타의 보강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큰 공연이자 첫 정식 공연인 만큼 멤버들의 스트레스가 심했다. 멤버들에게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연습 진도도 느렸다. 시간은 없고 준비한 곡은 많았다. 나는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드라이브를 걸었다.

    송년회 공연은 요란했다. 저명인사들이 참여해 ‘위상’을 높였고, 분위기는 그 어느 공연 못지않게 열광적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곡도 많은 데다 연습량이 부족한 탓에 체육대회 때보다 더 많은 실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송년회 공연 이후 블루잉크의 성격과 진로를 놓고 멤버 간 이견이 표출되기도 했다. 내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돌이켜보니 음악적 완성도나 내적 화합보다 외적 결과물에 집착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직장에서 밴드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수시로 밴드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힘든 만큼 즐거움도 크다. 가끔 아무도 없는 지하 연습실에서 소리를 질러대면 복잡한 세상사가 시시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사라진다. 이 거친 삶에서 그 짧은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대한민국의 수많은 이가 지금 밴드에 열광하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그렇게 ‘청춘의 마지막 불꽃’은 한없이 연장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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