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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달러 가뭄에 죽갔시오… 금강산 관광 재개 2년만 참아봅세다”

북, 파상공세 너머로 현대그룹에 메시지…남북 경색 풀리기 기다리며 못 번 돈 벌충 노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달러 가뭄에 죽갔시오… 금강산 관광 재개 2년만 참아봅세다”

“달러 가뭄에 죽갔시오… 금강산 관광 재개 2년만 참아봅세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가운데)은 2007년 12월 최승철(왼쪽) 당시 북한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함께 비로봉 능선을 걸었다. 현 회장이 비로봉을 찾은 것은 이날이 마지막이다. 최승철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숙청됐다.

1998년 6월 16일 고(故) 정주영(1915~2001년) 현대그룹 창업주는 83세의 노구를 이끌고 소떼몰이 방북 길에 올랐다. 그해 11월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을 시작했다. 금강산 관광은 북한이 자유 증진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퇴행(退行)하면서 빛이 바랬으나 남북 교류사의 일대 사건임은 분명하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한국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이후 중단됐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올해 4월 29일 “금강산을 국제관광특구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현대그룹이 확보한 독점권을 뒷받침하던 ‘금강산 관광 특구 지정 정령’의 효력도 없앴다. 북한은 6월 2일 남북 간 비밀접촉 내용을 공개하면서 “역적패당을 더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막말했다. 2월부터 현재까지 북한이 금강산 관광을 놓고 벌인 일로 남북관계 현주소, 북한의 속내를 가늠해보자.

北 이종혁 “현대그룹 고충 이해”

북한이 “현대그룹이 가진 금강산 관광 사업 독점권 효력을 취소한다”고 밝힌 때는 4월 8일. 그 직후 이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친북인사로 분류되는 J씨를 만나 현대그룹에 메시지를 전했다. 내용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현대아산과의 관계는 신의에 기초한 것이다. 장군님께서 정주영 회장, 정몽헌 회장, 현정은 회장을 얼마나 자주 만나주셨나. 우리는 현대아산과 맺은 관계를 절대로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현대그룹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정한다.



이 대목은 앞으로도 현대와의 신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번 결정은 3년 동안 참다 참다 못해 내린 것이다. 건물과 시설을 계속 놀게 할 수도 없다. 현대가 지어놓은 건물을 계속 비워놓으면 다 망가진다. 그래서 북측에서 국제 관광을 시작해보려는 것이다. 물론 현대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때까지만이다.

이 부분은 현대가 지은 시설을 나중에 되돌려줄 테니 국제 관광 사업에 사용하는 것을 양해달라는 뜻이다.

△정주영 명예회장 사망 10주기를 기념해 현대그룹에 장군님 친서도 전할 겸 현정은 회장을 만나려고 했으나 남측 당국이 승인하지 않았다. 금강산 관광을 하지 않겠다는 남측의 소신이 명백하다.

남측 당국과 이 문제로 더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시곗바늘을 올해 2월로 되돌려보자.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 평양의 한 연회장. 태양절이라고 부르는 김일성 생일(4월 15일)과 함께 북한 최대 명절인 이날 축하 파티가 끝난 뒤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77세의 한국계 미국인을 따로 불렀다. 김양건이 말했다.

“현대그룹에 준 금강산 관광 관련 독점권을 파기할 것이다. 장군님께서 금강산을 국제 관광단지로 개발하라고 하신다. 그 일을 도와줬으면 좋겠다.”

77세 노인 이름은 박경윤이다. 한국GM(옛 대우자동차) 전신인 새나라자동차 창업주의 부인. 북한에서 최고 영예로 여기는 ‘김일성 훈장’을 받았다. 평양에 요리사 딸린 집도 갖고 있다. 김일성이 선물한 것. 김정일이 심야 파티에 초대할 만큼 북한 당국의 신뢰가 두텁다. 문선명 통일교 총재(1991년)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1992년) 방북도 그가 주선했다. 그는 금강산 관광 독점권을 현대보다 먼저 확보했다. 김일성은 금강산국제그룹이 작성한 금강산 관광개발 타당성 조서보고서 표지에 1994년 1월 27일 서명했다. 김일성, 김정일 서명이 담긴 문서는 북한에서 무소불위 권한을 갖는다. 정무원(현재 이름은 내각)은 이틀 뒤(1월 29일) 작성한 위임장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무원은 금강산국제그룹에 금강산관광지 개발 총권한을 부여한다”면서 ‘50년 토지이용권’ ‘제3자와의 합영 권한’을 명시했다.

금강산국제그룹에 손 내밀어

“달러 가뭄에 죽갔시오… 금강산 관광 재개 2년만 참아봅세다”

2월 16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왼쪽)과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 회장이 대화하고 있다.

금강산국제그룹은 박경윤 회장과 통일교가 합작해 세운 회사다. 그는 통일교가 평양에서 운영하는 보통강호텔 지분도 갖고 있다. 현대그룹 한 임원은 “박 회장은 현대그룹에 독점권을 빼앗겼다고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주영 창업주의 소떼몰이 방북이 성사된 후 북한은 금강산국제그룹과 맺은 계약을 파기하고 현대그룹과 손잡았다. 북한은 현대그룹의 제안을 들은 뒤 금강산국제그룹에 1억 달러를 보증금조로 먼저 내놓으라고 했다. 박 회장과 통일교는 보증금을 낼 능력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1998년 11월부터 2008년 7월까지 달러 확보 통로 구실을 하던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이 3년 가까이 중단되자 북한은 옛 파트너인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 회장’에게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한 대북소식통은 “북한이 금강산국제그룹과 맺은 계약을 파기한 것은 현대그룹이 부른 액수가 워낙 커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옛 파트너를 다시 찾는다? 북한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박경윤 회장은 북한이 국제 관광단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역량을 갖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금강산국제그룹의 당초 구상은 금강산을 국제 관광특구로 개발하는 것.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어져온 금강산 관광은 이렇듯 13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올 2월 16일 방북 당시 박 회장은 김양건에게 “알아보긴 하겠는데, 원산공항을 열지 않으면 외국인이 오지 않는다. 원산공항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원산공항은 북한의 군사기지다. 국제 관광으로 돈을 벌려면 군사 요충부터 개방하라고 조언한 것이다. 박 회장은 4월 15일 김일성 생일 때 북한을 다시 찾았다. 통일전선부 관료가 평양 박 회장 집으로 찾아갔다. 그는 박 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산공항 문을 열기로 했다. 결심이 섰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군사적 요충을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손 내민 곳은 옛 파트너뿐이 아니다. 1월 23일 김정일은 오라스콤 나기브 사위리스 회장을 만났다. 김정일은 매제인 장성택, 사위리스 회장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만찬 후 찍은 사진이 흥미롭다. 조선중앙통신이 타전한 사진에서 김정일이 가운데가 아닌 오른쪽에 위치한 것은 이례적이다.

오라스콤은 이집트 기업으로 북한 휴대전화 사업을 독점한다. 평양에서 호텔도 짓고 있다. 105층 높이의 유경호텔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피라미드 형태를 한 이 건물은 한반도에서 인간이 만든 구조물 가운데 가장 높다. 북한 당국은 오라스콤에도 금강산에 투자해달라고 요구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오라스콤이 투자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안다. 주주가 존재하는 회사가 돈이 되는 않는 곳에 투자를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북한은 중국에도 추파를 던졌다. 외자 유치 기관인 대풍그룹을 통해 중국 기업과 접촉했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금강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400여 명에 그친 것으로 파악한다. 올해 금강산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월 200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에게 금강산은 매력이 가득한 관광지가 아니다.

외국인에 수요가 없는 상품?

북한은 유럽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유럽인도 금강산을 찾기는 한다. 북한 관광은 유럽에서 오지(奧地) 관광으로 취급받는다. 북한을 신기하게 여기는 모험심 많은 이가 찾는 곳이다. 금강산은 인도네시아 발리처럼 서구인 입맛에 맞는 관광지가 아니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나 금강산이 의미가 있지, 외국인이 어느 곳에 붙어 있는지 알기나 하겠는가. 물건 가치도 모르면서 비싸게 팔겠다고 나선 꼴이다. 수요가 없는 상품이 팔리겠는가.”

북한의 비즈니스 마인드가 갑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현대그룹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금강산 관광을 총괄하는 현대아산은 3년째 놀고 있다. 40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손해 봤다. 2009년 8월 현정은 회장이 김정일을 만나 합의문을 작성해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삐걱거린 남북문제를 직접 풀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현정은 회장은 역풍을 맞았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정권의 대북기조에 어긋나는 일을 한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설상가상 월간 ‘신동아’가 현정은, 원동연, 이종혁 면담 녹취록(‘신동아’ 2009년 12월호 참조)을 공개하면서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았다.

독점권을 확보하는 대가로 약속한 돈을 현대그룹이 아직껏 완납하지 않았다는 게 북한 당국이 계약 파기 명분으로 내세우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독점권을 갖는 조건으로 북한에 주기로 한 돈은 9억4200만 달러. 그중 절반가량인 4억6000만 달러가 북한으로 건너갔다. 현대그룹은 북한의 이 같은 논리가 사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현대그룹에서 대북사업을 총괄하는 현대아산에 물었다.

▼ 북한이 현대그룹의 독점권을 폐기했다. 현대아산 의견은….

“우리와 북측이 합의한 내용은 일방의 취소로 효력이 없어지거나 폐기되는 것이 아니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날로 계약이 정상화할 것으로 판단한다.”

“달러 가뭄에 죽갔시오… 금강산 관광 재개 2년만 참아봅세다”
▼ 현대아산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관광을 재개하려면 남북관계가 개선돼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 눈치를 동시에 봐야 하는 처지다. 현 국면에서 현대그룹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 북한이 금강산을 국제 관광특구로 지정했다. 이 같은 계획이 성공할 것으로 보나.

“북측의 최근 움직임은 관광 재개까지 한시적일 것으로 본다. 국제 관광사업의 성패를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금강산 관광과 관련해 남북이 깊은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

북한 속내는 금강산을 현대그룹이 아닌 다른 곳에도 팔아 달러를 벌충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현대그룹에 보낸 메시지는 간결하다.

“고생이 많다. 2년만 참아라. 신의를 잊지 않겠다.”

더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북한

현대그룹의 속사정도 북한과 비슷하다. 2012년 대선 전까지 금강산 관광 재개는 어렵다고 본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를 더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은 식언(食言)이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일은 5월 25일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의 회동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줄곧 성의를 보여왔다.”

최근 벌어진 남북 간 정상회담 논의는 미국, 중국이 남북한을 움직여 양측을 테이블에 앉게 한 측면이 적지 않다. “줄곧 성의를 보여왔다”는 김정일 표현은 과거형이다. “앞으로도 성의를 보이겠다”라는 표현과는 켜가 다르다. “우리 나름대로 노력했으니 더는 남측과 대화하라고 윽박지르지 마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남북관계가 13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은 북한의 책임이 크다. 사람이 굶어죽는데, 정책 우선순위를 체제 유지에 뒀다. 이명박 정부 잘못도 없지 않다. 아마추어처럼 행동하면서 북한 자존심만 건드렸다. 쥐도 궁지에 물리면 사람을 문다.



주간동아 791호 (p28~31)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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